대학 개혁이 최우선 숙제다
대학 개혁이 최우선 숙제다
  • 조진표
  • 승인 2009.10.0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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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만 세계 최고 달리는 저질 대학들
상위권 대학 카피, 대학생 경쟁력 좀 먹는다

조진표 와이즈멘토 대표이사
지난해 발표된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을 보니 84%를 육박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학력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고등교육 강국’의 타이틀이 자랑스럽기만 한 것인지 따져보면,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아우성치는 인력시장, 느긋한 대학들

불필요한 고학력자의 양산은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해 600만~1,00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내면서 대학을 졸업한 청년 구직자들 입장에서는 첫 직장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취업 준비생 수도 늘고 있는 반면, 해당 관문을 통과하는 비율은 오히려 하락 추세다.

이 와중에 중소기업들은 기술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더욱이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국내 실물경제에 본격적인 여파를 미치면서 수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전락할 마당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느긋해 보이는 곳이 있다. 바로 대학들이다.

한국의 대학 경쟁력은 전 세계 대학 평가 결과가 공개될 때마다 가십거리가 되곤 한다. 국내 최고 대학으로 손꼽히는 서울대가 최근에야 50위대 순위에 들었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진입을 눈앞에 둔 나라의 발목을 붙잡는 게 대학 교육이라는 말도 있다.

역설적으로, 조롱거리가 돼버린 한국 대학들이 세계 최고에 도달한 분야가 있다. 바로 등록금 수준이다. 최근 공개된 ‘2009 OECD 교육지표’를 보니, 한국의 대학 등록금이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007년 우리나라 국공립대의 연평균 등록금(구매력 환산 지수 기준)은 4717달러다. 2006년 3883달러로 세 번째였던 것이 1년 사이에 더 나빠졌다. 사립대 등록금 역시 7406달러로 4위였던 것이 8519달러로 2위로 치솟았다.

반면, 대학생에 대한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등 정부의 재정지원은 여전히 바닥이다. OECD 평균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27%인데, 우리나라는 0.09%에 불과하다. 등록금은 많은데 학생 부담으로 전가되기만 하는 최악의 경우다.

질 낮은 대학들의 몹쓸 관행

그렇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질 낮은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등교육 정부예산 확대라는 오랜 숙제를 차치하자면, 대학들의 몇 가지 몹쓸 관행들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중 하나가 ‘상위권대학교 따라하기’다.

학습능력이 좋은 아이들이 가는 수능성적 상위권대학과 학습능력보다는 다른 능력이 많은 수능성적 중하위권 대학의 교육과정은 마땅히 달라야 한다. 그러나 모든 대학들이 상위권대학과 유사한 학과를 보유하고 있고 교육과정도 비슷해 정작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대학사회를 견제하는 집단이 없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대학들은 늘 자율을 달라고 보채지만, 부여된 자율만큼 자신의 책무를 과연 얼마나 다했는지 의심스럽다. 이른바 ‘명문대학교’에서조차 연례행사처럼 입시부정과 입시의혹이 일어나고, 부정에 연루된 사실이 확인되어도, 기껏 보직해임이나 감봉 같은 가벼운 징계를 하는 게 대부분이다. 투명성과 부패방지를 향해 가는 사회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처사다.

그 이유는 이미 엄청난 기득권 집단이 되어버린 대학을 견제할 사회적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그 비싼 등록금을 받고도 학습능력이 좋은 학생들에게 능력 발현도 시켜주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적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들조차 전무하다.

묻지마 진학보다 경쟁력 갖출 수 있는 체험 필요

따라서 대한민국 교육의 많은 문제점은 초, 중, 고등학교보다는 대학에 있다고 봐야 한다. 대학이 차별화가 없고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나마 조금 나아보이는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많은 사교육비를 쓰거나, 차라리 해외로 떠나버린다.

기업들은 교육의 질을 믿을 수 없다며, 중하위권 대학 출신들을 외면한다. 이 같은 현실이라면, 학부모들은 투자 대비 효과 측면에서 접근을 하는 게 낫다. 대학진학은 우리 아이를 위해 4년간 5~6천만 원 이상을 쏟아 부어야 하는 교육비의 최대투자처이다. 백수를 만드는 학교에 무조건 진학을 시킬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 아이를 위해서 그 대학이 과연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경쟁력 없는 대학에 보내느니 차라리 그 비용으로 젊은 시절에 보다 넓은 세상을 체험시키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나라 대학등록금은 OECD국가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예전과 달리 그 정도 돈이면 공부할 수 있는 해외대학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은 하루빨리 서울대 커리큘럼 ‘카피’를 멈추고, 사회가 필요하고 아이들의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대학 졸업생 스스로가 졸업 이후 삶의 질에 만족할 때, 우리 사회는 기꺼이 전폭적인 자율을 대학에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