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극한이지 사람이 극한인가?
직업이 극한이지 사람이 극한인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09.11.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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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극한 직업>, 안전보건의 현주소 그대로 드러내
고생 끝에 낙(樂)이 아닌 직업병 오는 현실 잊지 말아야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조기홍 국장

내가 노동단체에서 일을 해서일까? 노동문제 또는 노동자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중에서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도로 힘든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시청하고 있다. 바로 EBS의 <극한 직업>이다.

<극한 직업>은 극한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삶을 밀착 촬영하여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숭고한 의지와 잃어가고 있는 직업정신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으로 리얼한 삶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 <극한 직업>을 시청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일할 수 있을까’라는 감탄과 함께 가족의 행복을 위해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편이 뭉클해져 온다.

반면 <극한 직업>을 시청하는 내내 초조함과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가슴을 졸이게도 된다. 바로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목숨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극한 직업>에서 나타나는 안전보건상의 문제는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다. 프로그램 처음부터 끝날 때 까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안전보건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바로 <극한 직업>이다.

방독 마스크와 송기 마스크는 달라

지난 7월 8일, 9일 방영되었던 ‘극한 직업-탱크 청소’편을 보면, 주유소 기름탱크를 청소하는 위험한 장면이 나온다. 작업자는 방독면을 쓴 체 맨홀 직경이 40cm인 구멍을 통해 유(油)증기가 가득한 좁고 어두운 탱크 속의 기름 찌꺼기를 제거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화면 속의 작업하는 모습은 실로 힘들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작업자는 질식위험이 있는 밀폐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 방독마스크가 아닌 송기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에 임해야 한다. 또한 밀폐공간 작업 전에 산소농도 측정을 반드시 실시하여야 함에도 이러한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 않았다. 산소농도 측정도 하지 않았고 송기마스크가 아닌 방독마스크를 착용한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실로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다.

작업자 중 1명은 바깥에서 수시로 맨홀 안 쪽을 살피면서 한마디 했다. “혹시나 유증기에 의해 질식사할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요.” 작업자들도 이러한 탱크 청소 작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은 전혀 없었다. 만약 탱크 안의 작업자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맨홀 안에 있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맨홀 속으로 뛰어들었다면….

실제 밀폐작업 중에 발생하는 사망사고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예방조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 중에 내레이터는 “작업자가 송기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을 한다”라고 했으나 이는 분명히 잘못된 것으로 작업자는 송기마스크가 아닌 방독면을 착용하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만약 이 방송을 시청한 사람들 중 방독마스크를 송기마스크로 잘못 알고 같은 작업을 수행하다 사고가 발생한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송기마스크

안전구 착용 없이 유리섬유에 그대로 노출돼

7월 15일, 16일에 방영되었던 ‘극한 직업-FRP어선 조선소’편을 보면 더욱 더 심각한 안전보건 상황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업 중인 어선은 7만5천대, 이 가운데 80% 정도가 유리섬유 플라스틱 즉, FRP 어선이다. 작업의 특성상 유리섬유를 많이 취급하고 있다. 유리섬유(Fiberglass)는 독특한 냄새와 함께 동물실험 결과 발암성 의심물질로서 피부접촉에 의한 피부장애가 발생한다. 더욱이 좁은 공간 안에서 유리섬유와 유기용제, 더위와의 힘겨운 싸움을 하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산재 위험성은 매우 높은 지경이었다.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을 하고 있음에도 화면 속 작업자의 모습은 정말이지 위험 그 자체였다. 유리섬유가 피부를 찌르는 상황, 유리섬유를 배 안쪽에 부착하기 위해 접착제를 사용하는 상황임에도 작업자는 방진·방독 마스크가 아닌 일반 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 또한 단순히 입을 가린 것으로 코는 가리지 않은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유리섬유, 유기용제가 이들 작업자의 몸속을 파고들어 생명과 건강에 영향은 없을지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다.

이들 작업자 대부분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어떠한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에 임했다. 방송 중에 한 작업자가 허겁지겁 물을 찾았다. 작업자의 눈에 접착제가 들어간 것이다.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먹는 물로 눈을 씻어내는 것만으로 위기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지 못한 사업주에게 분노가 솟았으며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맺혔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용접작업을 하면서 보안경은 착용했지만 용접 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진마스크의 착용은 없었다. 또한 탱크 안 청소작업을 할 때도 많은 분진이 날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생 끝에 직업병 온다?”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경우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어렵고 힘든 일을 하지만 이들은 가족의 행복과 미래를 향한 꿈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경우 안타깝게도 고생 끝에 직업병이 올 수도 있다. 열심히 일한 대가가 직업병이 되어선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산업재해,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해 극한 직업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힘들고 어렵지만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에서 땀 흘리는 것이야 말로 직업정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주변에는 안전보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현장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정부는 인력 및 예산을 핑계로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극한 직업>은 안전보건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단순히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말고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함께 제시된다면 우리나라 산업재해 예방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극한 직업>은 계속 되어야 하며, 노·사·정 및 전문가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반성과 함께 이들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 할 수 있는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