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것을 멈추지 마라
배우는 것을 멈추지 마라
  • 김관모 기자
  • 승인 2009.11.1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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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하고, 나태와 교만 경계해야
공부하고 깨닫는 순간이 인생의 행복
커피 명인 ‘압구정커피집’ 허형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직장에서 고된 일을 하다가, 혹은 상사에게 호되게 한소리 듣고 잠시 사무실 밖으로 나와 담배 한 개비와 함께 마시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은 때로 술보다 진하다. 비록 도라지 위스키는 없을 지라도 마담이 설탕 두 스푼, 프림 두 스푼을 섞어 휘휘 저어주는 ‘다방 커피’는 때로 인생보다 깊다.

하지만 이제 커피도 달라졌다. 즐기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아직은 낯설지만 핸드메이드니 로스팅이니 하는 단어들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 원두커피의 역사는 60년대부터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일상에서 지친 사람들이 좋은 커피와 편안한 공간에 관심을 지니기 시작하면서 원두커피는 각광받는 기호식품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의 대중화된 커피가 아닌, 색다르고 질 좋은 커피에 매료된 커피명장들은 한국의 커피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일명 ‘단아한 커피’를 꿈꾸며 27년 동안 커피를 다뤄온 ‘압구정커피집’의 허형만 선생(52)도 이들 중 하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즐길 줄 알아야 다 잘 한다


압구정커피집은 커피를 마시는 카페라기보다 원두를 파는 가게에 가깝다. 일반 커피숍보다 작은 가게 안은 원두를 갈고 볶는 소리로 시끄럽다. 어찌 보면 ‘여기서 어떻게 커피를 마시나’ 싶지만 이곳은 커피 마니아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찾아가본 유명한 가게다. 최근 많은 언론사들도 드나들며 허형만 선생에게 커피에 대한 자문을 구하거나 취재를 하기도 했다.

허형만이 만들어내는 커피는 무엇을 첫째로 두는 걸까. 의외로 허형만 선생에게 처음 들은 이야기는 ‘노는 것’에 대해서였다. 그는 자기가 가장 잘 하는 것이 노는 것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에도 1만2000피트에서 떨어지는 스카이다이빙을 했다고 한다. 시속 190km로 낙하하는 데 너무 재미있어서 조교에게 한 번 더 하자고 요청해 상대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고. 이외에도 번지점프나 수영을 즐긴다는 말에 나이 50을 넘긴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을 즐기기’ 위한 그의 철학이었다.

“저는 취미생활이 많습니다. 수영, 등산, 번지점프 같은 동적인 취미부터 영화관람, 사진촬영, 좋은 음식점 찾기 같은 정적인 취미도 즐기죠. 좋은 산에 가서 좋은 경치를 보고 유산소운동도 하면서 좋은 맛집까지 발견해 즐긴다면 일석이조, 삼조가 되죠. 이렇게 주말을 보내면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월요병도 자연스레 없어집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의 다양한 취미는 커피회사 영업직에 근무하며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기도 하다. 1980년대부터 포맥스라는 커피회사에서 근무했던 그는 그동안 커피개발과 제조공정만을 담당하다 1990년대에 영업일을 맡아보게 됐다.

처음 영업직을 맡았을 때 일에 대한 갈등과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당시 영업모델 케이스인 보험회사 영업왕들의 사례가 담긴 책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고객 유치 방법을 익혀갔다.

매일 만난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그들이 무슨 취미가 있고 무엇에 관심을 지니고 있는지 메모하고 일반상식과 다양한 분야의 지식도 열심히 공부했다. 전라도 해남부터 강원도 화천까지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으며 서울지하철 어느 역을 가야 한다고 하면 어느새 머릿속에 노선도가 그려질 정도였다고 한다.

“영업에서 중요한 것이 수금도 돼야 하지만 재구매가 제일 중요해요. 그러려면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커피 사러 온 사람들에게 커피 이야기만 하면 절대 재미없어요. 일상사나 공통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10%만 커피 이야기를 해야 성공할 수 있죠. 그래서 상식을 많이 넓혀야 하고 취미생활도 다양하게 익혀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것을 알고 익히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면 결코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으리라. 그런 일을 하느라 힘들었냐는 말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일터가 놀이터가 돼서 일을 즐겨야 한다”는 것.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아는 것이 행복


허형만 선생은 1981년에 경기도 안양에 있던 엠제이씨라는 커피회사의 개발실 연구소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커피와 연을 맺었다. 당시 엠제이씨는 동서식품과 경쟁구도에 있었다.

하지만 회사가 작은 편이라 허형만 선생은 품질관리부터 원자재 입고와 생산물 처리까지 일일이 점검해야 했다. 이곳에서 4년을 일하면서 커피생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정통하고 치밀한 성격을 지니게 된 것도 이때였다고 한다.

가장 일이 고됐던 시절 중 하나였지만 그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큰 회사에 있었다면 하나의 톱니바퀴로 존재했을 뿐이지만 작은 회사에 있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도전해보기도 하고 공부도 많이 할 수 있었다는 것.

지적 호기심도 강해서 회사에 신문이 6개가 들어오면 퇴근할 때마다 스크랩해서 일반 상식과 세상 트렌드를 익히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이런 습관은 지금도 이어져 허형만 선생의 생활을 지탱하고 있다.

“손자병법에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나옵니다. 나를 알고 남을 알면 백번 싸워서 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절대 위태롭지 않다는 겁니다. 공부를 잘 해야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게 되고 행동과 습관을 바꿔 운명과 팔자를 바꿉니다. 개천에서 용 나거나 가난 탈출하는 것도 공부 아닙니까.”

허형만 선생은 자신의 좌우명을 ‘지언행합일치(知言行合一致)’라고 소개했다. 지식과 말과 행동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을 알고 경험을 통해 익혀 지혜를 얻을 때 삶은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래서 많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물리, 생물, 수학 등 자연과학이란 씨줄과 예술과 음악, 문학 등 문화란 날줄’이 함께 짜여야 인생을 멋지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자면 시간 관리도 필수다. 항상 짬을 잘 활용하고 읽을거리를 자기 곁에서 멀리 두는 법도 없었다. 자꾸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하고 시간을 쪼개 조금씩이라도 읽고 배우면 나중에 많은 지식들이 내공 쌓이듯 저절로 쌓인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통해 외공을 쌓으면 그 순간 큰 행복감을 맛 볼 수 있다.

“예전에 본 ‘미스터 초밥왕’이란 만화책을 보면 좋은 초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재료가 70, 요리가 30이라고 하더군요.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고객을 감동시키는 요리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진인사대천명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그 결과는 그냥 수긍하는 겁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서 내 자신을 바꿀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지금 제가 <참여와혁신> 기자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오늘의 허형만은 어제의 허형만이 아닌 거잖아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나침 없이 항상 평행선


그렇다고 허형만 선생이 일벌레인 것은 아니다. 그는 여러 방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열심히 즐기면서 일은 하되 지나침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01년 처음 압구정커피집을 운영했을 때 1년 동안 고객층을 분석하고 일의 기틀을 잡고자 설날을 뺀 364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밤 10시까지 일했다. 그 이후 첫째, 셋째 일요일을 쉬기 시작했고 2년이 더 지나서 일요일을 다 쉬고 있다. 커피숍 문을 닫는 시간도 밤 10시에서 저녁 7시까지 앞당겼다.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자신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였다.

고객과의 관계도 매한가지다. 커피를 파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판촉인데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멀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너무 지나친 것보다 덜 한 게 나을 때가 많아요. 커피도 과다추출된 것보다 덜 추출된 것이 낫죠.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고쳐갑니다. 저에게 그런 사람이 제 집사람이죠. 항상 기울어지지 않고 평행선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겁니다.”

이는 폭넓은 시야와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허형만 선생은 그 예로 1983년도에 유행했던 국산차 마시기 운동을 이야기했다. 당시 한국에 외채가 많다보니 전량 수입해야 하는 커피를 마시지 말고 유자차 등 국산차를 애용하자는 ‘커피 안 마시기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부작용은 금방 나타나고 말았다. 한국 남해 부근에만 자라는 유자가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다보니 일본에서 쓰다 남은 것을 밀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결국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는 게 허형만 선생의 이야기다.

“당시 회사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볼 때 지원자들에게 ‘국산차 마시기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한 친구가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히 수입해야한다’고 답했어요. 우리가 받아들일 것은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우리가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수출하면 된다는 거죠. 아니면 쇄국주의나 다름없는 거잖아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프로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앞으로 허형만 선생의 목표와 전망은 무엇일까. 그가 생각하는 최상의 커피는 ‘단아함’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먼저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는 것이 허형만 선생의 신념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충실해야 할 것과 경계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그에게 충실할 것은 건강과 기본기다. 항상 자기 몸을 챙기고 자기 일의 순서와 이치, 의미를 되새긴다. 나태함과 교만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자기 일에 싫증을 내고 자신만이 최고인 줄 착각하는 사람은 정신을 맑게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커피 기호는 연한 걸 좋아하느냐 진한 것을 좋아하느냐, 아니면 신맛을 좋아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맛과 향은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으면 되는 거죠. 하지만 커피는 꼭 이래야 한다, 여기는 유명하고 오래된 곳이니까 무조건 좋다는 생각은 버려야 하는 거죠.”

허형만 선생이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커피스쿨을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커피에 ‘까칠한’ 고객층을 형성해 프로 앞에서 당당하게 커피를 논하고 평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는 과정에서 좋고 나쁜 카페 구별이 쉬워지고 카페들도 더 노력하거나 스스로 그만 두는 등 발전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게 허형만 선생의 생각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렇다면 허형만 선생이 생각하는 프로는 무엇일까. 그는 가만 내버려 두어도 스스로 불이 붙어서 자기 일을 스스로 찾아가는 자연인(自然人)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능력이 되지 않아도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있기 때문에 대기업 회장에 올라간 몇몇 인물들처럼 주변을 거느릴 수 있는 스케일이 된다고 보았다.

“프로는 달라야 합니다. 직업정신이 있어야 하죠. 직장이란 일에 대해 지지 않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전문가가 되는 장소입니다. 내가 회사에서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하죠. 그건 아집이에요. 피고용자와 사용자가 있다면 사용자는 직장인들에게 아낌없이 투자를 해주어야 하고, 피고용자들은 교육이나 여행을 통해서 견문도 넓히고 사용자가 투자하는 것에 고마워하고 성심성의껏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윈윈하는 길이죠.”

허형만 커피의 3대 노하우 신공
◆접수신공(接水神功) Blending 추출
커피를 뽑을 때 물을 어떻게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 커피의 맛이 우러나는 차이가 생긴다. 물을 붓고 우려내는 시간에 따라 커피의 성격도 달라진다. 한 예로 가장 진하다고 느껴지는 에스프레소는 커피와 물이 닿는 시간이 20초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 카페인 함유량이 가장 적다.

화조신공(火調神功) Roasting 배전
커피를 볶는 방법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불의 화력과 커피의 볶아진 정도에 따라 커피의 맛과 향이 결정된다. 허형만 선생은 이 노하우만큼은 비밀로 간직해 후계자에게만 알려주겠다는 소신이다.

교학신공(敎學神功) Teaching is twice learning 상장
허형만 커피교실을 여는 이유 중 하나는 가르치는 것도 있지만 교육을 통해 가르치는 사람도 공부하고 배운다는 것. 사람들은 허형만 선생을 통해 커피를 배우게 되고 허형만 선생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고객층과 커피 트렌드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