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의 렌즈 통해 감성·정치행위 걷어내자
‘참여’의 렌즈 통해 감성·정치행위 걷어내자
  • 박송호 전문기자
  • 승인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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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in Issue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풀것인가
반성과 평가 속에 경쟁력과 고용안정 ‘새길’ 찾아야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은 기업의 경쟁력과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문제해결 능력의 바로미터이자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구조조정과 사회양극화에 따라 사용자는 고비용과 고용경직성 해소의 도피처로, 대기업 노동자는 고용문제와 노동강도의 완충지대로 비정규직의 사용을 암묵적으로 동의해왔다. 하지만 이제 ‘비정규직의 확산과 양극화 문제’는 노사 모두에게 부메랑이 되어 노동의 유연성과 사회적 차별해소라는 새로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1999년 3월 26일, 제조업 최초로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이 설립된 이래 캐리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학습지 및 골프장 경기보조원으로 지칭되는 특수고용직 문제, 금호타이어로 이어지는 비정규직노조의 설립과 이를 둘러싼 노사갈등은 많은 고민거리를 던지고 시사점을 남겼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비정규직 및 영세중소기업 소속 노동자의 열악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여론화하며 사회적 의제로 제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인격적 차별의 이슈화로부터 시작된 비정규직의 문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숙련의 차이가 없음’으로 인한 정규직의 교육과 훈련의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감성적, 도덕적, 사회적 이슈화뿐 아니라 제조업 전반의 산업구조와 생산방식에 대한 문제다. 총고용보장을 위한 ‘참여와 협력’의 다양한 인식과 고민, 그리고 방향성을 제시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비정규직 투쟁이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의 문제를 이슈화하기는 했지만 사회적 해결에 있어서는 상당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오히려 캐리어의 경우처럼 구속과 해고를 무릅쓰고 비정규직을 지원했던 당사자들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 표현할 만큼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L사 노무담당 임원 P씨는 “(정규직은) 고임금에 비해 충성도는 올라가지 않아 비정규직을 선택한 것”이라며 “비정규직의 매력을 노사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제거하지 않는 이상 비정규직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 상근간부 L씨는 “가만 내버려 두면 고용은 보장될 것인데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오히려 비정규직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우려하기도 한다. 현재의 비정규직문제와 관련해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간부는 “고용의 경직성을 이유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관철시키려 한다”며 “정규직의 양보를 압박하는 정치적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국내 완성차업계 노사는 아직 ‘늪지대’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2003년 7월,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이 결성됐으며 2004년 금속연맹 차원의 불법파견 진정과 2005년 1월, 127개 업체 9234명에 대한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이후 6개월을 넘기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 제조업분야에서 기업별 내부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유형설정자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사내하도급 사용에 대한 사용자성 여부가 쟁점인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해고구제신청에 대한 2차 심판회의가 있었다. 물론 심판결과는 원하청 노사뿐 아니라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줄 것이며 한국노동시장의 핵심적인 문제인 유휴인력의 광범위한 존재와 내부노동시장의 심각한 격차의 상징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전환점인 동시에 풀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고민은 깊어가고…


여기에 현대자동차 내부의 상황은 좀 심각하다. 우선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의 조합원수가 2000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쟁의행위까지 가결된 상태다. 또한 원하청연대회의 명의로 현대자동차에 여섯 차례의 교섭을 요청했지만 현대자동차측은 “불법파견은 교섭대상이 아니다” “비정규직노동조합은 교섭단위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교섭석상에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현대자동차노동조합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책임론으로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의 김태곤 수석부위원장은 “분명 불파 비정규직 문제는 운동적 관점에서 책임은 진다. 그러나 현 상황에 대해 원하청 노조가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논의가 급선무인데 지금은 욕만 얻어먹고 책임만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히고 “이런 상황에서 대리교섭은 나갈 생각도, 할 생각도 없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또 다른 현대자동차노조의 핵심 간부는 “논쟁에서는 비정규직이 이기고 정규직은 대신 싸우고, 교섭해도 책임지고 욕먹는 건 정규직 노조”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노조의 한 간부는 “노동자연대의 기본적인 역할이라도 제대로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정규직노조의 무성의와 무원칙을 비판하는 등 비정규직을 둘러싼 현장의 혼란과 갈등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 내 정책개발연구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조합원들은 해외공장 가동, 모듈화 증가로 인한 여유인력의 발생과 비정규직의 불법파견 판정으로 인한 정규직화 투쟁 등 정규직의 고용을 둘러싸고 불안한 심리가 누적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지난 3월 울산매일신문의 설문에는 조합원의 65%가 비정규직은 필요하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의 고용문제에 대해 현대자동차노조 정책개발연구위원인 박유기 전 노동조합 사무국장은 “6개월의 교육을 통해 인식전환을 상당부분 시켰으며 조직화에 있어서도 정규직 활동가와 비정규직 활동가가 연대해 대중적으로 조직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중적으로 조직했다는 것 자체가 정규직노동자의 불만이 누그러졌다는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고용불안심리는 비정규직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쌍용차·GM대우도 논란 속으로


이렇듯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인식과 접근방식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이는 다시 개별사업장은 노-노간, 노-사간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비단 현대자동차 뿐만 아니다.


우선 쌍용자동차 노-사간 라인합리화조치에 따른 전화배치의 진성도급 여부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아직 수그러들기는커녕 재점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 대해 노동조합 집행부는 투자유치와 비정규직을 정리해고 하지 않기 위해 라인 재배치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과 (바로 진성도급을 의미하지 않지만) 불법파견을 집행부가 용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핵심쟁점이다.


GM대우 창원공장 역시 비정규직노조의 설립 후 난항을 겪고 있다. GM대우창원공장의 경우 노동조합 지부차원의 주도적인 지원으로 비정규직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나 비정규직노조의 사업방향을 두고 노-노간, 노-사간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개별기업의 노-사간 노-노간 갈등이 심해지는 만큼 상급단체인 금속산업연맹과 민주노총에 대한 기대는 불만과 불신으로 변하고 있다.


서쌍용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 사무국장은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연맹이나 민주노총의 역할은 0%로 전혀 한 게 없다”면서 “각 단위의 역할이 분명함에도 역할은 없고 회의 몇 번에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다는 말만 있다”고 혹평했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의 김태곤 수석부위원장도 “일정박기식 투쟁과 생색내기식 현장방문, 기자회견을 통한 무책임한 공약과 선명성 경쟁은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조건준 금속산업연맹 조직국장은 “불법파견 중심의 투쟁에 대해 평가가 있어야 한다”면서 “임금이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투쟁도 필요하지만 산업 내 차별축소를 위해 산업구조 전체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비롯한 우리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과 방향을 잡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당사자가 진솔하게 자신의 이해관계를 드러내고 서로 간에 공유하는 과정을 도외시한다면 또다시 상황에 내몰려 최악의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당의와 명분의 정파적 대결을 떠나 아닌 합의할 수 있는 것부터, 롯데알미늄이나 부산은행노사처럼 소리 소문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지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