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개혁 노사정 갈등, 기로에 서다
농협 개혁 노사정 갈등, 기로에 서다
  • 김관모 기자
  • 승인 2009.12.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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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분리 논쟁, 농협 둘러싼 기싸움
경제·기득권·고용 논쟁 속 농업정책 어디로

ⓒ <참여와 혁신> 포토DB

농림수산식품부(장관 장태평, 이하 농식품부)는 지난 10월 28일 ‘농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개정안의 주요골자는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농협 ‘개혁’이란 이정표를 향해 노·사·정이란 3대의 열차가 마주본 채 달려오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기세와 달리 열차 내부는 혼란하다. 서로가 해답과 대안을 내밀지만 선뜻 다른 이의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는 없었다.

왜 농협법 개정 문제는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에서 농민들은 과연 농협 개혁과 농촌 사회 발전이란 희망을 싣고 있을까.


농협중앙회 신경분리, 왜

1961년 농협협동조합과 농업은행 통합으로 출범한 농협중앙회는 신용·경제·교육지원 사업을 맡아왔다. 신용사업은 일반 시중은행처럼 일반금융업을 다루며, 경제사업은 농산물 생산과 유통, 가공, 소비 등을 다루고 있다. 교육지원사업은 농민들에게 농축산 관련 기술훈련과 품종 개발사업 등을 제공한다.

하지만 농협중앙회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경영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용사업은 지난해 6700억 원의 수익을 냈다. 하지만 수익보다 조합원 지원이 목적이기 때문에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경제사업은 지난해에도 9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교육지원 사업비도 적자폭이 3000억 원에 이르고 있어 신용사업이 경제와 교육지원의 적자를 메우고 있는 구조다.

이러한 불균형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1990년대부터 각 사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이익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농협 신경분리(신용사업-경제사업 분리)는 농협 개혁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 <참여와 혁신> 포토DB

이후 1999년 국민의정부가 ‘신경분리추진협의회’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농협중앙회가 ‘농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세부 추진계획 논의가 계속 됐다. 결국 2006~2007년, 참여정부는 학계와 농민단체, 농협관계자 등과 함께 ‘신경분리위원회’를 구성해 회의와 연구용역 발표를 수렴했다. 그 결과 2017년까지 농협중앙회가 재정을 마련할 수 있는 준비기간을 거쳐 3개 사업을 분리하는 ‘농협중앙회 신용·경제사업 분리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금융위기와 경제침체를 이유로 농협법 개정안 문제는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은 농협 부정비리를 질타하고 농협 개혁을 언급하고 나섰다.

그러자 농식품부는 민관합동기구인 ‘농협개혁위원회(농개위)’를 구성하고 농협법 개정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이후 올해 2월 농협중앙회의 자회사인 농협경제연구소가 맥킨지에 연구 용역을 의뢰한 용역보고서에서 “2011년까지 인력 구조조정과 지주회사 전환을 실행하지 않을 시 경영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결과가 발표되면서 신경분리 논의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또한 농개위가 올해 3월 이와 거의 동일한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논쟁이 본격화됐고, 농식품부는 10월 농협중앙회와 농개위 의견을 절충한 입법예고안 발표에 이르렀다.

말뿐인 ‘합의’, 속내는 “양보 없다”

이번 농협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지주회사체계 신경분리 ▲농협법 개정 기간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농식품부는 농협중앙회를 ‘농협연합회’로 개명하고 교육지원사업과 조합원 지원 위주로 기능을 재정립하며 NH금융과 NH경제에 출자해 주주로서 감시 및 통제를 담당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신용사업을 ‘NH금융’(농협금융지주회사)으로, 경제사업을 ‘NH경제’(농협경제지주회사)로 독립 전환해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입장이다.

▲ 농협 사업구조개편 조직체계(현행) ⓒ 농림수산식품부

▲ 농협 사업구조개편 조직체계(개편후) ⓒ 농림수산식품부

이는 농협중앙회도 중앙회 명칭을 유지하고, 신용사업 부문 중 독립이 거론됐던 상호신용부문을 분리하되 중앙회 내 존치한다는 조건으로 찬성했던 부분이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과 일부 농민단체들은 농민에게 혜택을 주고자 하는 협동조합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농협중앙회노조 이영초 위원장은 “한국은 대부분 중소규모 농가이기 때문에 이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지주회사방식 신경분리는 농업의 해체와 양극화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경제사업은 적자를 보더라도 농민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지원사업”이라며 “이를 지주회사로 만들면 농민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라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개정 기간과 관련해서도 서로의 안에 대해 물고 물리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2011년까지 신경분리를 완료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협중앙회는 제반 여건을 마련할 수 있도록 신용사업은 2012년까지, 경제사업은 2015년까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조와 농민단체는 정부안은 물론 농협중앙회 주장도 반대하고 있다. 지주회사식 신경분리를 반대하거나 2017년까지 분리하자는 원안을 지키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김관대 정책실장은 “농협중앙회가 경제사업이 아닌 신용사업을 먼저 정상화하겠다는 데 농민들이 격앙돼 있다”며 “신용사업을 이 정도로 성장시킨 지역농협과 조합원의 노력은 무시하고 자신만의 공인양 생각하며 경제사업을 외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런 복잡한 의견충돌 속에서 정부와 농협중앙회는 각기 농민단체 및 학계와 의견을 조율할 것임을 밝혔다. 농협중앙회 김진국 구조개혁추진단장은 “이번 정부안에 대해 노조와 농민단체 등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공동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입법예고안대로 12월 국회에 농협법을 상정할 예정이다.

ⓒ <참여와 혁신> 포토DB

신경분리 논쟁, 농촌은 어디 갔나

하지만 실제 농협중앙회 개혁의 중심축이었던 지역농협 활성화와 농민 생활 발전은 등한시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위기와 농촌경제 활성화를 위한 농협 개혁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 농협중앙회의 부족자본금이나 지원규모조차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자 농협노조와 농민단체들은 다른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전국농협노조 임기웅 정책기획국장은 “신경분리 문제는 의견충돌이 심해 기존 정권에서 풀지 못한 숙제였는데 이를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여 성과물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다른 지주회사 통폐합을 통해 세계금융시장에 나설 대형지주회사를 만들려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금융노조 농협중앙회지부 남기용 위원장은 “농협 신경분리를 통해 신용사업을 외국 자본에 매각하려는 음모”라며 “농축산업 문제 원인을 농협에게만 씌워 협동조합의 본질을 무시하고 자율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농협중앙회란 이름을 살리고 상호금융을 중앙회에 존치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농협중앙회의 개정안도 비판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전국농민회 이창한 정책위원장은 “현재 농협중앙회 안은 중앙회가 감시와 관리를 같이 하려는 것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생각”이라며 “지금처럼 농협중앙회가 금융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지도사업을 중심으로 총연합체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 현실과 이상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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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의 대응방법도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농협 내에는 5개의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내에는 정규직 직원으로 구성된 금융노조 농협중앙회지부(위원장 남기용), 2000년 농·축협중앙회 통합 당시 축협중앙회노조였던 사무금융연맹 산하 농협중앙회노동조합(위원장 이영초),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사무연대노조 농협중앙회지부(지부장 배삼영)가 존재한다. 이외에 전국농협노조(비대위원장 주훈석)와 전국축협노조(위원장 이윤경)가 각 지역 농·축산업 사업장을 담당하고 있다.

이 중 전국농협노조를 제외한 4개 노조는 ‘반농협·반협동조합 신경분리 저지 공동투쟁본부’(이하 공투본)를 출범시키고 지주회사방식의 신경분리를 반대했다. 공투본은 2007년 합의됐던 개정안 원안(2017년 분리)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공투본의 주장에 대해 ‘이는 대안이 아니라 노조의 고용보장을 위한 싸움일 뿐’이란 반대의견도 있다.

한농연 김관대 정책실장은 “노조에서 구조조정을 우려해 2017년까지 연착륙하기 위한 논의로 보인다”며 “선거 국면도 있는 만큼 신경분리 문제를 그때까지 끌고 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농 이창한 정책위원장도 “노동조합에게 고용문제가 민감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는 있지만 농협의 원칙과 가치를 중심으로 두었을 때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영초 위원장은 “현재 입법예고안은 경제사업을 지배구조로 가자는 내용만 있고 활성화 방안은 없다”며 “2017년까지 가면서 협동조합 경제사업의 중요성이 활발히 논의되면 보다 좋은 방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전국농협노조와 전농 등은 농협중앙회를 비사업적 연합체로 전환하고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지주회사가 아닌 연합회 방식으로의 분리를 주장했다. 즉 지역조합이 사업연합회 당연회원으로 가입하는 규정을 만들어 연합회 주체를 지주사가 아닌 각 사업 연합회와 지역농협 조합으로 두자는 것. 전국농협노조와 일부 농민단체들은 이를 통해 지역조합은 사업의 내용과 추진 결정방법에 있어 좀 더 지역조합원의 실질 생활에 집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노조나 시민단체들도 이 안을 지지하고 있지만 정부나 농협중앙회에서 고려하지 않고 있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영초 위원장은 “현재 이 문제에 대해 정작 농민들은 쌀 문제로 큰 관심이 없다”며 “중요한 것은 제도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얼마나 실질적 이익을 줄 수 있느냐가 논의되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