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파업에 나섰나
그들은 왜 파업에 나섰나
  • 안형진 기자
  • 승인 2009.12.0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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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협 해지가 노사관계 전환점 될까
핵심은 ‘노정교섭’…앞날은 가시밭길
불붙은 가스공사 노사관계
ⓒ 공공노조 가스공사지부

지난 11월 28일 과천에서는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한자리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공기업 선진화를 둘러싼 공공부문 노동계의 절박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날 모인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노정교섭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12월 중순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계의 공조로 인해 노정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이지만 민주노총 산하 철도노조, 가스공사지부, 발전노조, 노동연구원지부 등 공기업노조들은 파업을 통해 이미 치열한 국지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체협약 결렬로 인한 사측의 단체협약 해지 통고를 받은 사업장이라는 점이다. 이들 중 11월 6일 파업에 돌입한 가스공사지부를 통해 공기업 노사의 단체협약 해지 속사정을 알아봤다.

단협해지 = 노사관계의 전환점?

공공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지부장 황재도, 이하 가스공사지부)의 파업이 촉발된 것은 단체교섭 결렬이 주요한 이유다.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20차례(본 교섭 6회, 실무교섭 14회) 진행된 단체교섭은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사측은 단체협약 해지라는 강수를 뒀다.

가스공사는 요청 언론사에만 제한적으로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단협 해지의 사유로 “2008년 주주총회 원천봉쇄 및 사장 출근 저지에 이어 2009년 정치파업을 강행하는 등 투쟁 만능주의 노사관계 악순환 고리를 차단하고 원칙과 상생에 기반한 노사관계 정립의 새로운 전환점 마련을 위해 단체협약 해지가 불가피 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노동조합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의지의 완곡한 표현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가스공사 노사협력팀 최충식 차장은 “외부기관에서 단체협약이 불합리하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수차례에 걸쳐 지적이 이뤄졌기 때문에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이에 의견접근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단체협약 해지 배경을 설명했다.

노조법 제32조에 따르면 노·사 당사자 중 일방은 6개월 전에 상대방에게 해지 통고 의사를 전달하고 단체협약을 해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즉 11월 단체협약 해지 통고를 받은 가스공사지부는 내년 5월까지 단체협약을 갱신하지 않으면 무단협 상태가 된다.

지침이 단체협약에 우선한다?

ⓒ 공공노조 가스공사지부
그러나 실제 단협 해지의 시발점은 정부에 있었다. 지난 2009년 1월 2일, 정부는 감사원 내 ‘공공기관 감사국’을 설치하고 각 공기업의 단협 사항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노동부가 수족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는 공기업의 단협 사항을 체크해 근로기준법과 공무원의 노동조건을 토대로 그보다 넘치는 부분을 잘라낼 것을 ‘지침’ 형식으로 기관장에게 시달했다고 복수의 관계자가 전했다.

물론 이러한 지침은 법률상 단체협약보다 아래에 있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용된 것은 바로 경영평가제도다.

특히 이번 경평에서는 기관장을 평가할 때 선진화·경영효율화 항목에 50%의 배점을 차지하도록 했다. 이 안에는 ‘노사관계’에 대한 세부항목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고 이에 따라 소비자보호원 등 4개소의 기관장이 옷을 벗어야 했던 것이 크게 기사화되기도 했다.

결국 기관장들은 정부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됐고 이는 노조의 운신폭을 제한하려는 정부의 속셈이라는 것이 공공부문 노동계의 중론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공공연맹 한정애 수석부위원장은 “감사와 경평을 통해 단체협약을 수정하라는 권고는 사상초유의 일”이라며 “노정교섭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부문 노동계는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노조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이뤄온 ‘단체협약’이라는 결과물을 정부의 ‘지침’ 때문에 포기하는 것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되고 단체협약 해지 상황까지 발생한 것이다.

사측 “정부지침 따를 뿐”

가스공사지부가 단체협약 해지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기까지 단체협약상 몇 가지 쟁점사안이 있었다. 가스공사 지부는 올해 임금 4.6% 인상을 요구했다. 호봉승급분과 경제성장률, 물가 상승률 등을 토대로 만들어낸 숫자라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가스공사지부 민정태 사무처장은 “원하는 만큼 임금인상을 받아내지는 못해도 새롭게 추진되는 사업에 필요한 인력 정도는 추가 확보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조합형태 변경이나 조합원범위 축소, 복지축소 요구도 노조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요구다.

민 사무처장은 “3급 이하 인원은 팀장 이하 지시를 받는 직원들인데, 범위를 축소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 순직직원 자녀 채용 조항이 순직직원이 많아 경영상의 문제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도 아니고, 순직 직원 가족의 생존권을 회사가 책임진다는 인식으로 만들어진 조항을 없애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사협력팀의 최충식 차장은 “감사원과 국회가 단체협약이 불합리하다며 지적했고, 이에 공공기관으로서 개선노력을 하는 것”이라며 정부 지침을 따를 뿐이라고 해명했다.

ⓒ 공공노조 가스공사지부

‘노정교섭’ 성사될 수 있을까?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 곽태형 정책의장은 “공기업 경영진은 임금이건 복지건 오직 깎는 것만 가능하다”고 불평했다. 경영진은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해 교섭을 진행해도 아무런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노사관계의 평행선을 만들고 단체협상 결렬, 단체협약 해지에 이르게 했다는 주장이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은 지난 11월 28일 열린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서 공기업 기관장들을 앞에 두고 파업 중인 철도노조를 향해 “적당히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결국 공공부문 노정갈등의 향방은 공공부문 노동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노정교섭’의 성사 여부에 달려있다.

하지만 원만한 해결까지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다. 지금까지 공공부문 노사관계 뒤에 숨어 있던 정부가 노정교섭에 나설지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수차례에 걸쳐 공전을 거듭했던 노사정 6자 대표자회의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