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노동계와 대립하는 김대환·방용석·이목희
사사건건 노동계와 대립하는 김대환·방용석·이목희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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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인가?… 소신인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내 생각이 옳다” vs “오만과 독선 가득”

7월 21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이 한마디를 던졌다. “굳세어라, 대환아!” 금순이도 삼순이도 아닌 ‘대환이’는 이수호 위원장의 고등학교 동창 김대환 노동부 장관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발언은 고교 동창 간의 우정의 표현이 결코 아니었다. 이날 서울역 앞에서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벌인 행사의 공식 명칭은 ‘김대환 장관 퇴진과 비정규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한 전국단위노조대표자 결의대회’였다.


누구보다 노동계를 잘 아는, 노동계 출신 혹은 노동계를 지지했던 인사들의 최근 ‘친정’과의 관계는 악화 수준을 넘어서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있는 형국이다. 대표적으로 김대환 장관이 사퇴 요구를 받고 있고,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역시 양 노총 모두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하는 중이다. 그나마 사정이 좀 나아보이는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 역시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김대환 장관, 출발은 ‘노동자의 벗’


이중 김대환 장관과 노동계의 관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노동계 입장에서 보자면 민주노총 한 관계자의 표현대로 “영화 ‘식스 센스’를 능가하는 반전의 충격”인 셈이다. (영화 ‘식스 센스’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공포물로 막바지에 주인공인 브루스 윌리스가 사실은 유령이었다는 메가톤급 반전이 숨겨져 있어 반전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지난해 2월 김대환 장관이 취임할 때만 하더라도 노동계의 기대와 재계의 우려가 교차했다. 김대환 장관은 인하대 교수로 있으면서 그간 노동계의 각종 토론회 등에 참석해 이론적 바탕을 제공해 주곤 했다. 이른바 ‘노동이론가’였던 셈이다.


더군다나 취임 당시 이수호 위원장과 고교 동기동창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당시 김 장관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것만 알고 있던 기자들의 “누가 선배냐”는 질문에 “깡으로 말해야 되느냐, 키로 말해야 되느냐”는 농담으로 되받으며 친분을 과시했다.


이런 노동계와의 ‘허니문’ 분위기는 한동안 지속됐다. 2004년 5월에는 “노조의 경영참여는 대체적 경향”이라는 발언한 데 이어, “노동계의 사회공헌기금 조성 제의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를 시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두 사안 모두 재계가 극력 반대했던 것으로 노동계로부터는 “노사 균형을 추구하는 참여정부 각료로서 당연한 발언”이라는 찬사를, 재계로부터는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되는 언사”라는 비난을 들었다.

 

노동계 향한 독설 쏟아내


그러나 이런 ‘밀월’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공무원노조법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면서부터였다. 당시 김 장관은 공무원노조의 노동3권 요구에 대해 강경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서로 간의 관계가 복원 불가능한 지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법안이 쟁점이 되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됐다. 김 장관은 법안을 둘러싼 민주노총의 총파업 방침과 관련, 불법이라며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올해 들어 김 장관의 ‘독설’은 더욱 거침없어졌다. “민주화가 노동운동만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는 현 정부는 노동계에 빚진 것이 없으며 오히려 노동계가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인권위의 비정규직 법안 입장 표명 관련) 모르면 용감해진다고…”


결국 양 노총은 공식적으로 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고 서명운동에 들어가기에 이른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김 장관에 대한 인물평을 해 달라는 요구에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차서 반노동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인물에 대해 평은 무슨 평이냐”며 쏘아붙였다. 민주노총 관계자도 “기가 막히다”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런 노동계의 반응에 대해 “최근 노정관계 파탄의 책임이 장관에게 있다고 말하는 일부 노동단체가 있다”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안티 김대환’ 움직임에 있어 한국노총의 행보가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용득 위원장으로서는 재선 이후 강력한 개혁 노선을 추진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던 내부 비리 문제 등을 대정부 투쟁을 통해 반전시키고 있는 셈이다. 내부 개혁과 결속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김 장관이라는 ‘외부의 적’이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다.

 

방용석 이사장, 양 노총 모두로부터 집중포화


노동계와의 갈등에 있어서는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도 뒤지지 않는 모습이다. 방 이사장은 특히 노정관계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노동부 산하 공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양 노총 모두로부터 집중공격을 당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우선 근로복지공단 노동조합과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노조는 3월부터 ‘낙하산 인사 반대’를 내걸고 공단을 압박해 왔지만, 방 이사장은 예정된 인사를 단행했다.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노조 관계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징계하고 노조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 강수를 뒀다. 이에 맞서 노조에서는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하면서 사태의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도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한다며 방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방 이사장은 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을 상징하는 원풍모방노조 지부장 출신으로, 84년에는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국민회의 출범 당시 노동계 영입케이스로 입당해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 지난 2002년에는 노동부 장관에 임명되기도 했다. 방 이사장이 노동부 장관에 임명됐을 당시 노동계는 무난한 인사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방 이사장은 산재 불승인 결정 철회를 요구하던 노동자들을 향해 “니들이 깡패집단이지 노동운동하는 인간들이냐, 나도 노동운동 30년 했는데 니들처럼 그러지 않았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사실 방 이사장의 ‘설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2년 노동부 장관 재임 시절 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한 의원의 “노동계는 심지어 주5일 정부입법안에 대해 쓰레기 악법이라고 한다”는 질의에 “지난 2년간 논의해서 합의한 내용을 쓰레기라고 한다면 당사자도 쓰레기다”라고 대답해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산 바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양 노총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감사는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지낸 김영대씨다.

 

이목희 의원, 엇갈린 평가 받아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의 경우 앞선 두 사람과 차이는 있지만 노동계와 썩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목희 의원은 섬유노조에서 일한 바 있고 한국노동연구소장을 지냈다. 현재 이목희 의원에 대한 평가는 노동계 내부에서도 나뉜다. 그것은 이 의원이 비정규직 법안 관련 협상 당사자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제도권 의원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준 것은 높이 평가한다”고 평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다고 욕할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민주노총에서는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한 관계자는 “그래도 나름대로 노동계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내용도 없으면서 노동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이비”라고 혹평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협상의 파트너이기 때문에 서로 직접적인 공격은 없지만, 향후 협상이 결렬되거나 할 때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한쪽은 감정 긁고, 다른 쪽은 변절자 낙인

 

노동계 출신이거나 노동운동 진영과 가까운 관계였던 인사들은 이들 외에도 많다.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비롯,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 열린우리당 김영주 의원 등이 있고, 향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예전 여야에 노동계 영입케이스로 들어간 인사들이 다수 있고, 민주노동당도 그 외연을 계속 확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좀더 폭넓게 보자면 노무현 대통령도 이른바 ‘친노동계 인사’로 분류됐었고, 이제는 대표적 우익인사로 꼽히는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도 노동운동을 했다.


따라서 ‘동지’와 맞서는 일은 더 잦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부 민주노동당 자치단체장도 당이나 당원들과 갈등을 빚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노동계의 한 인사는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리가 주는 현실적 한계가 있는데 너무 친노동자적일 것으로 기대하면 결국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출신의 정부 인사는 “노동계로서도 불만이 있겠지만, 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도 지나친 편가르기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친노동계 인사로 ‘낙인 찍혀’ 있는데, 노동계의 요구가 오히려 행동을 제약한다는 것. 현 정부에서 일했던 또다른 노동계 출신 인사는 “대한민국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공직자가 과연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변절’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고 ‘소신’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김대환 장관의 경우 취임식에서 “노동부는 노동자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 문제를 고려해 노사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 자리에서 이임사를 한 권기홍 전 장관이 “노동부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말한 직후였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참여정부 들어 노정관계가 자꾸 엇박자로 악화되는데 이는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고 믿는 노동계 출신 인사와 과거의 타성에 젖어 전투적 비타협주의를 고집하는 노동계가 서로 탄력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전략과 리더십이 부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태도 교섭’의 예를 들면서 “한쪽에서는 노동계의 감정을 긁고, 다른 쪽에서는 변절자로 낙인 찍어버리면 내용과는 무관한 감정 싸움이 된다”고 우려했다.


그런 측면에서 금속노련 이정석 사무처장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처장은 “위원장을 할 때는 내가 가장 잘 알고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까 너무 좁게 보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꼭 그런 형국”이라고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