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쟁사업장의 적은 ‘무관심’
장기투쟁사업장의 적은 ‘무관심’
  • 권석정 기자
  • 승인 2010.01.1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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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 넘긴 콜트 투쟁이 던지는 의미
▲ 권석정 sjkwon@laborplus.co.kr

지난 6일 서울 둔촌동 콜텍 본사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콜트-콜텍지회의 3차 해외원정투쟁 기자회견에 다녀왔습니다.

콜트-콜텍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이 시작된 것이 지난 2007년 4월이었으니, 벌써 1000여일이 흘렀더군요. 그간 콜트-콜텍노동자들은 사측의 공장 해외 이전으로 인한 폐업 및 정리 해고에 맞서 수많은 거리 집회, 송전탑 고공 투쟁, 단식 투쟁, 법정투쟁, 문화예술인들과의 연대 투쟁 등을 벌여왔습니다.

1000여일이 지난 장기투쟁. 이제는 지칠 만도 한 기간이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활발한 투쟁을 전개해왔는데요. 이번에 떠난 원정투쟁도 그 중 하나입니다. 원정투쟁단은 세계최대 규모 악기박람회 ‘남쇼(The Namm Show)’가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컨벤션센터 앞에서 캠페인 및 문화공연을 펼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남쇼는 콜트기타의 물량수주에 중요한 거점이기도 한데요. 이번 해외원정투쟁은 독일·일본 악기박람회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오랜 기간 적극적인 투쟁을 벌여올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콜트악기지회 방종운 지회장은 그 이유 중 하나로 ‘문화예술인들과의 연대’를 꼽더군요.

여기서 방종운 지회장이 말하는 문화예술인들이란 문화기획가들을 비롯해 콜트악기의 소비자들이기도 한 연주자들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콜트-콜텍노동자들의 투쟁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데에는 이들의 도움이 컸지요. 콜트-콜텍노동자들의 투쟁에 공감한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작년 이들의 투쟁을 알리기 위해 록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연은 이벤트성으로 그치지 않고 장소를 홍대 앞 라이브클럽으로 옮겨 꾸준히 진행됐지요. 약 100여개 인디밴드들이 이 공연에 참가했다고 하는군요. 즉, 콜트-콜텍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공감’이 대중과의 ‘소통’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콜트-콜텍노동자들이 활발한 투쟁을 이끌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주위의 도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콜트-콜텍지회 50여명의 노동자들은 해고 후 투쟁과 더불어 지난해 초부터 대전 변두리 밭을 개간해 농사를 지었습니다. 소액이지만 농사로 돈도 벌고, 원정투쟁에 필요한 자금에 보태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이들은 이러한 활동으로 2009년 인권단체 연석회의로부터 ‘인권소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자구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외부단체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이 와중에 이번 미국원정투쟁에서는 세계적인 록밴드 ‘레이지 어개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가 참가해 공연을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더군요.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주석을 달자면 레이지 어개인스트 더 머신은 일종의 저항가수인데요.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음악인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행보를 하고, 저항가수들도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내한공연을 한 바가 있지요.

‘탐 모렐로’라는 사람은 기타리스트이면서 사회운동가이기도 합니다.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에 따르면 탐 모렐로 본인이 자진해서 원정투쟁단 측에 공연을 제안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음악잡지 ‘롤링스톤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콜텍기타 불매운동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고 합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한국을 넘어 국제적인 문화예술인들에게까지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지요.

그런데… 위 내용은 꽤나 이슈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인데도 국내 언론은 의외로 잠잠합니다. 며칠 전 기자들끼리의 신년 술자리에서도 이 콜트-콜텍노동자들의 원정투쟁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방송에서도 충분히 기사로 다룰만한 내용인데 의외로 조용하다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장기투쟁사업장에게 지면을 내주기에는 국내 언론이 너무 각박한 탓일까요? 한 일간지의 모 기자는 그 기사를 후배에게 맡겼는데 이슈가 될 만한 이야기였는데도 조그맣게 다뤄서 아쉬웠다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방종운 지회장은 장기투쟁 사업장의 가장 힘든 점으로 ‘무관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장기투쟁사업장은 외롭죠. 특히 우리 같이 언론에 관심을 크게 받았다가, 그 관심이 한 번에 사라지면 그 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죠. 천막농성을 할 때에도 홀로 바람을 맞고 있는 심정입니다. 그런 면에서 문화연대 등 각종 연대단체의 기획력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계속해서 대중들에게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할 ‘꺼리’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권석정의 일모도원(日暮途遠)  날은 이미 저물고 갈 길도 멀지만, 가야할 길을 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