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 갈등에 대한 단상
법원-검찰 갈등에 대한 단상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01.20 23:3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리한 기소로 패소 자초한 검찰
그래도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
박석모 smpark@laborplus.co.kr
오늘은 개인적인 푸념 몇 마디 하려고 합니다.

최근 사법부가 내린 몇 건의 판결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좌편향 판결이라는 겁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사법부를 강하게 성토하고 나서기까지 하는 모양입니다.

판결 내용을 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전교조 관련 판결 3건,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 대한 판결, ‘PD수첩’에 대한 판결들이 해당됩니다. 그동안 온갖 매체를 동원해서 빨갛게 색칠한 사건들이군요.

우선 전교조 관련 판결을 볼까요? 지난해 마지막 날, 서울행정법원은 일제고사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7명의 교사들이 낸 해임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교사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다른 징계와 비교해 해임처분은 지나치게 무겁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일제고사 자체에 대해서는 불법이 아니라고 판결했지요.

전교조와 관련된 두 번째 판결은 지난 1월 14일에 있었습니다. 북한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것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교사들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지요. 사실 이 사건은 기소할 당시부터 혐의가 안 되는 것을 무리하게 기소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세 번째 판결은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무죄선고입니다. 지난 19일 전주지법이 시국선언을 주도해 공무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교조 전북지부 간부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지요. 아직 1심이기는 하지만 교사의 시국선언을 위법행위로 몰아간 검찰의 기소가 무리했다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합니다.

공중부양 강달프, 무죄선고 받다

지난해 국회에서의 물리적 충돌과 관련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 대해 서울남부지법이 지난 14일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법원과 검찰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의 모 의원께서는 ‘기교사법(技巧司法)’이라는 한자어까지 동원해가며 맹비난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리 결론을 내놓고 거기에 짜 맞춘 판결이라는 겁니다.

헌데, 강 대표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법원이 검찰에게 공소사실을 공무집행방해가 아닌 폭력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는 후문입니다. 공무집행방해는 혐의 입증이 어렵지만 폭력은 처벌 가능하다는 뜻이었겠지요.

결국 이 사건도 검찰이 무리하게 법 적용을 강행하다가 패소한 경우에 해당될 겁니다.

검찰의 체면을 구긴 판결 중 압권은 아무래도 PD수첩 제작진 5명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기소했다가 무죄가 선고된 서울중앙지법의 20일자 판결일 겁니다. 사실 지난해 서울고법 민사공판에서는 정정보도를 결정한 바도 있어, 이 사건은 유죄가 될 거라고 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이 사건에 대해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는 허위사실을 전제로 성립할 수 있는데, 보도내용이 과장은 있지만 허위사실이라고 보기 어려워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라고 선고했습니다.

검찰은 펄쩍 뛰고 한나라당은 “법원이 정치에 나섰다”고 성토했습니다. 연이은 판결들에 좌편향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이 우려하는 이들도 상당수군요.

물론 가장 강력한 반발은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인 만큼 즉각 항소하겠다고 하는군요. 법원과 검찰의 사이가 요즘 들어 부쩍 불편해진 것도 눈에 띕니다. 용산참사와 관련된 수사기록을 공개한 것에서부터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지요.

강기갑 대표에 대한 선고가 내려지던 날, 검찰은 “강기갑 의원을 처벌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처벌할 수 있느냐”며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건 아닐까?

헌데 말입니다. 판결 몇 건에 왜 이리 광분들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판결 몇 건이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제 눈에는 검찰과 법원이 저렇듯 서로 다투는 꼴이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번 판결들은 제가 보기엔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하면서 자초한 측면이 큰 것 같습니다. 전교조가 눈엣가시처럼 걸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웹사이트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혐의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것부터가 무리라는 겁니다.

강기갑 대표에 대해서도 폭력혐의로 공소사실을 변경하라고 힌트를 줬음에도 공무집행방해로 밀어붙인 건 검찰이었습니다. 뭐 저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국회 안에서의 행위를 이유로 현직 국회의원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처벌하는 것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검찰이 자초했으면서 저렇게 방방 뛰는 모양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하나 더,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요? 예전에 소위 운동권들은 법원에서 무슨 판결만 나면 방방 뛰곤 했습니다. 운동권들에 유리한 판결은 눈을 씻고 봐도 보기 힘든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이른바 오른쪽에 계시는 분들이 하는 모양을 보니 예전에 운동권들의 모습과 어찌 그리 닮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보고 배우신 건가요?

어쨌든, 개인적인 믿음을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이번 판결 몇 건으로 나라가 망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발, 나라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신건강에 해롭거든요.

나라는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굴러갈 겁니다. 높은 곳에 앉아 삽질 예찬론을 펴시는 분이나, 낮은 곳에서 힘들게 삽질을 해야 하는 민초들이나 변할 건 없을 겁니다. 다시 한 번, 그러니, 제발, 호들갑 떨지 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조그만 소원이 있다면,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을 아예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건 제 욕심이겠지요.

어쨌거나 시끄러웠던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가네요.

 

 박석모의 우공이산
 시련도 많고 좌절도 많지만, 희망이 있기에 오늘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