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행복하십니까?
2010년 행복하십니까?
  • 봉재석 기자
  • 승인 2010.01.2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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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지 기자의 신년 넋두리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너도 한 살 더 먹어봐. 그럼 바로 실감할거야.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그땐 몰랐습니다. 제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세월 참 빠르다는 것을.

“셋, 둘, 하나”
숫자를 세며,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0년의 첫 달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월간지 기자로 지내다보니 매 월말이면 항상 마감에 쫒깁니다. 보통 중순 이후부터를 마감이라고 치면, 마지막 2주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지나갑니다. 이때만큼은 일주일이 하루같이, 하루가 한 시간같이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러다 마감 직전에 이미 마감된 기사의 내용을 바꿔버릴 만한 중요한 일들이 터져버리면 기사를 다시 재작성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마감을 마치고 나면 어느새 또 다시 마감이 눈앞에 놓여 있고, 그러다 보면 1년에 책 12권을 만들고 나면 1년 365일이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립니다. 나이 먹기, 참 쉽죠~잉~~

이런 ‘벅찬 오늘’은 ‘내일의 기대’에 대해 점점 무뎌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2010년도 그다지 새로운 기대 없이, 특별한 바람 없이 시작한 것 같습니다.

새해가 되자마자 신문, 텔레비전에서는 원전 수주 등 경기가 점점 풀리고 있으니 백호의 기운을 이어받아 더더욱 힘내자고 하네요. 하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생활고에 목말라 있고, 더더욱 팍팍해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 뉴스인지... 거참.

이렇게 별반 다를 게 없는 2010년을 보내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아니 반갑다고 하긴 ‘거시기’ 할까요? 하여튼 개인적으로는 마음 한편의 짐을 덜어준 소식이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였습니다. 그때도 여지없이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며 날씨 확인을 위해 뉴스를 보다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건을 1년 동안 ‘용산 참사’라 불렀습니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충격이었고, 제게도 역시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사건 당일 취재 시 목격한 참사 현장은 그야말로 참혹했습니다. 이로 인해 서너 달 동안은 서울 도심에서  매주 시위-집회가 있었고, 거리에는 다시 물대포와 촛불이 맞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시간이 흐르자 바쁜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들 마음 속엔 미해결된 사건 정도로만 남은 채 1년이 흘러간 것입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이제야 정부와 유가족 간의 협상이 이루어져 장례를 치르게 됐습니다. 추운 겨울에 보낸 이들을 또 다시 겨울이 와서야 보내드립니다.

장례식이 있던 9일, 서울역 광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무대 주변엔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의 수많은 취재진들과 추운 날씨 속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애도의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함께한 광장 곳곳의 수많은 시민들로 가득했습니다. 비록 1년 전과 상황은 다르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에게는 참 힘든 싸움이고 여정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진행된 장례식에 끝까지 함께 해준 이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의지하며 버텨왔으리라 믿습니다. 장례식과 이후 1주기 추모문화제 때마다 유가족 대표로 나온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는 인사말에서 연신 머리를 숙이며, 함께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이번 장례를 치르며 이들이 흘린 눈물에는 고인에 대한 슬픔과 아픔도 있겠지만 주변인들에 대한 감사의 눈물도 있을 것입니다.  

▲ 지난 1년간 때마다 자리를 지키며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준 당신들이 있어 '용산'의 겨울은 따뜻했습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런데 새로운 걱정거리 혹은 궁금증(?)이 하나 생겼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치른 장례 이후, 1년 전 그때와 같진 않겠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유가족들의 삶은 어떨까요? 평범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 아들, 딸들이 투쟁을 외치다 다시 제 생활로 돌아갔을 때는 어떨까요? 다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금도 마감으로 인해 하루하루 정신없이 시간에 쫓기듯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먹먹함도 곧 잊혀지겠지요.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별 다른 기대 없이 시작한 2010년이지만 새해 첫 달을 돌아보며 이렇게 읊조려봅니다.

‘2010년 행복합니까?’

 

봉재석의 포토로그  못 다한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