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전임자가 놀고 먹는다구요?
노조전임자가 놀고 먹는다구요?
  • 권석정 기자
  • 승인 2010.02.0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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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처리와 교섭 준비로 보내는 하루
ⓒ 권석정 기자 sjkwon@laborplus.co.kr

노조전임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조전임자에 대해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노조전임자 수는 2008년 현재 조합원 149명당 1명, 일본은 조합원 500∼600명당 1명, 미국은 800∼1000명당 1명, 유럽연합(EU)은 1500명당 1명꼴이라고 한다. 척 보기에도 유럽과는 10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노조전임자를 만악의 근원으로 만들었다. 특히 작년 노조법 개정 과정에서 노조전임자는 노사관계 선진화의 발목을 잡는, 노조 이기주의의 산물이었다. 총리에서부터 노동부장관까지 ‘일은 안하고 월급 타박타박 받는 못된’ 노조전임자를 혼내주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셨다. 궁금한 것은 이러쿵 저러쿵 말은 많은데 정작 그들이 도대체 하루동안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들이 없다. 늦었지만 그들의 일상을 따라 노조전임자는 뭘 하는 사람인지 의문을 풀어보자.

AM 8:30 출근

전 직원 137명 중 생산직 80명, 생산직 중 노조가입자는 51명. 전임자는 노조위원장 1명. 이것이 오늘 취재에 나선 오공노동조합의 현재다. 인천남동공업단지에 위치한 (주)오공은 산업용, 건축용 접착제를 비롯해 주택, 의류, 서적, 자동차, 전자제품 분야 등에 쓰이는 다양한 접착제를 생산하는 국내 굴지의 접착제 제조업체다. 오공본드하면 다들 아실 듯.

오전 8시 30분, 직원들이 아침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면 오공노조 권오화(42) 위원장의 하루도 시작된다. 기자의 오늘 하루도 이 시간부터 시작이다. 공장 바로 옆에 위치한 노조사무실 안으로 기계 돌아가는 굉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권 위원장은 겸연쩍은 얼굴로 “평소 조합원들하고 카풀로 출근하는데 오늘은 차가 밀려서 8시 반이 다 돼서 왔네요. 아침에 특별한 외부 스케줄이 없으면 보통 8시쯤 출근을 해요”라고 말한다. 기자한테 미안할 것은 없는데 말이다.

출근 후 가볍게 사무실을 청소하던 권 위원장이 때가 낀 바닥을 가리키며 “많이 지저분하죠? 평소에 조합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다 보니 매일 청소를 해도 이 모양에요. 가끔 조합원들하고 대청소를 한다고 하는데 쉽게 깨끗해지지가 않네요”라고 못내 부끄러운 듯 말했다. 접착제 회사의 노동자들이 신발 밑창 닳듯 돌아다니는데 깨끗한 것이 더 이상할 것 같다.

권 위원장은 청소 후 그날 스케줄과 뉴스를 체크했다. 뉴스를 꼼꼼히 챙기는 이유는 현장순회 시 조합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다. 노조법 시행령과 관련해 노동계가 시끄러운 요즘, 뉴스를 보는 권 위원장이 답답한 듯 혀를 끌끌 찬다. 마음은 답답하지만 그만 잊고 내일 있을 임금교섭 상견례를 준비한다.

“저희는 임금교섭 준비기간이 한 달 정도 걸려요. 회사 감사보고서에 나온 재무제표와 한국노총에서 산출한 기본생계비 등을 통해 임금기준을 잡고 그것을 토대로 조합원들에게 설문지를 돌리죠. 이후 조합원 공청회를 여러 번 거친 다음 임금인상 요구액 등을 결정해요.”

교섭요구안은 이미 만들어놓은 상태지만 지난 주말 상집간부들과의 간부수련회에서 보완된 내용들을 손봐야 했다. 오전에 있을 현장 순회에서 조합원들의 질문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요구안 문구들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 권석정 기자 sjkwon@laborplus.co.kr

AM 9:30 1공장 순회

권 위원장은 본사의 1공장을 순회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오공 공장은 본사의 1공장과 본사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2공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오전에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날은 보통 이 시간에 현장 순회를 시작한다. 1공장에는 40여 명의 생산직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다.

“사무실에 있다가 머리가 복잡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리면 수시로 현장에 가요. 오전에는 주로 조합원들 안부를 묻죠. 업무이야기만 하면 딱딱하니까 개인적인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회사 규모가 크지 않다보니 다들 형님, 누님, 동생같이 지내요.”

권 위원장과 조합원들 사이에 날씨나 가족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권 위원장이 입사한 1998년부터 그를 쭉 지켜봐온 나인훈(54)씨가 누나처럼 권 위원장을 챙긴다.

“위원장이 조합원들 불평 듣는 자리잖아. 처음에 노조 막 만들었을 때 젊고 일 잘하는 사람(권 위원장)을 위원장 시킨다고 하길래 내가 권 위원장한테 하지 말라고 했어. 힘들까봐서. 우리 때문에 바빠서 여태 장가도 못가고… 지금도 그냥 착한 동생 같아서 가슴이 아파.”

옆에 있던 조합원도 거든다.

“우리가 많이 괴롭히니까 위원장이 수고가 많지. 그냥 현장에 있었으면 장가가서 애도 낳고 했을 텐데. 노조 덕에 조합원들은 혜택 받았는데 위원장은 그동안 살만 쪘어.”

권 위원장은 ‘살만 쪘다’는 소리에 크게 웃어본다. 그러면서 2000년 노조 설립 당시를 잠깐 떠올린다.

“우리 회사는 IMF 때 다른 경쟁사들이 넘어지는 사이 매출이 많이 늘었어요. 그런데도 정리해고와 휴업이 이어지자 그간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던 선배들과 함께 대응방안을 논의했는데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이 노조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노조를 만들게 됐는데, 다들 노조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노조를 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간다’는 말이 있어서인지 위원장 자리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당시 다른 선배들은 결혼해서 가정이 있었는데 저는 젊었고 총각이어서 얼떨결에 제가 위원장을 맡게 됐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하, 지금도 총각이고요.”

2000년에 ‘등 떠밀려’ 오공노조 초대위원장이 된 권 위원장은 그렇게 4대째 집행부를 이끌고 있다.

AM 10:30 연말정산

오전 현장 순회가 끝나고 사무실에 돌아오자 10시 반이 조금 넘었다. 김경섭(51) 씨를 비롯한 몇 명의 조합원들이 노조사무실로 줄줄이 따라 들어온다. 연말정산 때문이다.

“이거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 예, 형님 여기서 발급돼요. 인터넷 뱅킹 들어가서 여기다 저장하시고, 그러면 바탕에 떠요. 간소화서비스로 하면 돼요.”

갑자기 노조사무실이 ‘민원실’로 둔갑했다. 나이가 지긋한 조합원들의 경우 공공문건작성 등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으레’ 권 위원장을 찾는다. 조합원들은 자연스럽게 권 위원장의 도움을 받아 노조사무실에 있는 조합원용 PC로 일을 처리한다. 권 위원장은 출타 중에도 노조사무실 문을 항상 열어놓는다. 연말정산을 하려는 발길이 뜸해지고 벽시계가 11시 반을 가리키자 갑자기 조합원을 찾는 전화가 걸려온다.

“아, 형수님. 영석 형님이요? 예, 전해드릴게요.”

조합원 가족에게서 온 전화다. 현장에서 조합원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핸드폰을 못 받을 경우 급한 일은 간혹 노조사무실로 전화가 오기도 한다.

“조합원들이 노조사무실 번호를 가족들에게도 알려주시더라고요. 방금 전화 온 조합원 가족 분은 영석 형님 손가락이 기계에 눌려서 산재판정 받았을 때 병원에서 인사를 했었어요.”

산재가 발생했을 때의 업무처리도 역시 권 위원장 차지다. 상집간부 중에 산업안전부장이 있지만 전임자가 아닌 터라 조합원 상담부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하러 가는 것까지 권 위원장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산재처리가 쉽지 않았죠. 노조 생기고 1~2년 사이에 근골격계 질환 산재가 단체로 발생했어요. 이제는 조합원들이 산재가 의심되면 일단 저에게 찾아옵니다.”

수많은 조합원들이 노조사무실에 다녀간 후 권 위원장은 담배를 한 대 입에 문다.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 권석정 기자 sjkwon@laborplus.co.kr

PM 1:00 임단협 대책회의

점심 식사 후 노조사무실에 수석부위원장과 사무국장 등 상집간부 등이 모였다. 내일 있을 상견례에 대한 점검을 하기 위해서다. 오공노조는 간부회의를 보통 일과가 끝난 후 진행하지만 임금교섭 기간에는 수시로 모인다. 회의 사이사이 권 위원장은 올해 받게 될 성과급과 관련해 타 사업장노조 실태조사를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건다.

“예, 오공위원장인데요. 거기 성과급이 단협에 어떻게 되어있다고 했죠? 경상이익의 몇 퍼센트?”

오공노조는 2010년에 처음으로 성과급을 지급받게 된다. 오공 정도의 지명도 있는 사업체가 이제까지 성과급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이제까지 임금협상을 열두 번 했는데 두 해 빼놓고 모두 인천지방노동위원회를 갈 정도로 노사 간 갈등이 잦은 편이었어요. 작년 같은 경우 회사에서 매출액 감소를 이유로 조합원 10명에 대해서 휴업을 강행했어요. 그래서 휴업자 복직 관련돼서 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하고 파업까지 갈 뻔 했죠. 결국 승소하고 올해 3월까지 전원 복직시키기로 했어요.”

오공노조가 성과급을 받기까지도 힘겨운 투쟁이 있었다.

“이제까지 교섭에서 꾸준히 성과급을 요구했는데 그동안 회사는 구두 상으로만 약속을 하고 명절 떡값 수준의 성과급을 임의대로 지급해왔어요. 작년 교섭에서야 겨우 성과급 지급 항목을 정식으로 단협에 넣을 수 있었어요.”

PM 2:30 2공장 순회

회의가 끝나자 권 위원장은 남동공단 55블록 10로트에 위치한 2공장 순회를 위해 자동차에 오른다. 2공장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담배를 피던 한 직원이 권 위원장을 반긴다. 2공장 생산팀장. 조합원 대상자가 아니다.

“저기 위원장님, 항암치료 모금이야기 좀 의논하려고…”

현재 오공노조는 항암치료를 받게 될 상황에 처한 한 조합원을 위해 모금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그 조합원은 방금 인사를 건넨 생산팀장의 부서 직원. 생산팀장은 노조에서 모금을 진행할 경우 자기 부서의 비조합원들도 모금에 동참할 의사가 있음을 전달한다.

“오공노조 차원에서 병환중인 조합원을 위해 모금을 논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지금 조합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중인데 통과가 되면 회사 차원에서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생산팀장을 뒤로 하고 2공장 1층에 있는 물류창고에 들어서자 제품을 포장하던 조합원들이 인사를 한다. 한 조합원이 포장하던 상자를 잠시 내려놓고 병환 중인 조합원의 거취문제에 대해 위원장과 상의를 한다.

“걔는 치료가 끝나고 복귀하면 여기 물류창고처럼 공기 좋은 곳으로 배치를 해야 돼. 생산 쪽으로 가면 위험해. 수월한데로 보내야지.”

건너편에서 일하는 50대 초반의 유윤자 씨가 권 위원장을 무척 다정하게 반긴다. 유 씨는 작년 휴업처리 된 후 5개월 동안 현장을 떠났다가 복귀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다. 유 씨는 작년 부서 통폐합 이후 타 부서로 발령이 났다가 곧바로 휴업을 당했다. 지금은 원래 일하던 부서로 돌아온 유 씨. 그녀는 오공노조 여성부장을 맡고 있다.

2공장을 도는 내내 임금교섭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진다. 나이, 성별에 따라 조합원들의 의견이 각각 다르다. “임금인상 요구안이 너무 낮다”는 조합원들부터 “적정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위험이 적지 않겠냐”는 조합원들. “무조건 싸우려고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말만 앞서는 사람들은 뭐냐”라고 불만을 드러내는 조합원들도 있다. 오공노조는 조합원 전원이 모인 두 번의 공청회를 거쳐 임금요구안을 결정했지만 100% 만족하는 조합원은 없는 듯하다. 권 위원장은 “요구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여러 번 점검을 해도 체크 못하는 부분이 꼭 나타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 권석정 기자 sjkwon@laborplus.co.kr

PM 4:00 투쟁 기획안 짜기

오후 4시가 가까이 되서 노조사무실에 돌아온 권 위원장은 5시 30분인 퇴근시간이 얼마 안 남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 2010년 조합 활동방안에 대한 조합원 설문지 정리와 함께 교섭기간 동안 투쟁기획안도 만들어야 한다. 권 위원장은 “그나마 오늘은 외부 일정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귀띔한다.

PM 6:00 진짜 업무 시작?

오후 6시 경, 잔업이 없는 조합원들이 “뭡니까? 아직도 일합니까? 빨리 한 잔 하러 갑시다”라며 노조사무실로 들어온다. 최근 술자리의 화젯거리는 당연 성과급. 처음 받는 정식 성과급이기에 조합원은 물론 전 직원이 기대에 차있다. 오늘은 상견례 전날이므로 권 위원장은 최대한 술을 자제할 생각이지만 맘대로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게 권 위원장은 노조사무실을 나선다. 조합원들을 솔직하게 만나는 지금부터가 진짜 권 위원장의 업무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글로만 보면 ‘설렁설렁 놀러다녀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실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만나는 일이 어찌 쉽던가. 항상 긴장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 사람이라, 특히 조합원들을 만나는 자리는 더더욱 긴장의 연속이다. 현장 순회를 돌고 사무실에서 털썩 앉는 권 위원장을 보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나마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래도 권 위원장님, 올해는 장가가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