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에서조차 노동인권교육 찾을 수 없어
교육과정에서조차 노동인권교육 찾을 수 없어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02.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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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직장인 교육’ 등 다양한 노동인권교육 필요
현장_ 청소년 노동인권교육과 ‘예비직장인 교육’

ⓒ 참여와혁신 포토DB
청소년들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동부는 작년에 발표한 ‘2009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평균 시급은 2009년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4천원에 못 미치는 3997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연소자의 법정근로시간인 일일 7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했다는 응답자가 31.7%로 나타났고,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정해진 금액을 못 받은 학생들은 15.7%에 달했다. 특히 근로기준법상 연소근로자 관련 규정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에서는 청소년은 물론 사업주나 학부모까지 포함해 조사대상자의 74.8%가 ‘모른다’고 답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인권교육뿐 아니라 한국사회가 청소년 노동에 대한 인식전환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입시위주 교육, 성인중심 사회가 문제

성인들과 사업주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노동부가 2009년 여름방학 기간을 맞아 청소년들이 주로 일하는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일반음식점 등 사업장 807개소를 점검한 결과, 대상사업장의 83.5%인 674개소에서 2,179건의 노동관계법령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주지의무 미 이행(484건, 22.2%)과 근로계약 시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356건, 16.3%)가 가장 많았고 근로자명부 미 작성, 부모동의서 미 비치, 임금 체불, 최저임금 준수 위반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로 많이 일하는 주유소와 패스트푸드점의 경우 조사대상 업소 중 각각 92.6%와 71.2%가 관계법령을 위반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노동부는 지속적인 단속과 청소년들의 노동의식 함양 교육을 진행해 이러한 연소근로자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에도 별다른 방안이 제시된 것은 없었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전 사회적 무관심과 그로 인한 청소년 노동자들의 권리 침해는 근본적으로 입시위주 교육에만 매몰돼 인성교육과 사회화 교육에 대한 정책적, 사회적, 가족적 관심이 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노동계와 교육계는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학교 현장이 입시위주 교육으로 피폐화된 상황에서 노동인권에 대한 교육을 평상시에 실시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그러한 교육은 고3 학생들이 입시가 끝난 다음에야 시간 때우기의 일환으로나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청소년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미숙하고 통제받아야할 존재로 보는 성인중심적인 사고도 한 몫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의 노동은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는 하나의 단계로서 치부되어 왔고, 흔히 ‘용돈 벌이’ 정도의 업무와 임금체계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팽배해 있어 청소년을 고용하는 대부분의 사업주들이 근로기준법 상 연소자 근로에 관한 법률이나 최저임금법 등에 대한 이해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A씨(주유소 경영)는 “일하려는 애들은 많고 또 아르바이트를 지속적으로 하는 애들도 없어서 처우는 근처 다른 주유소와 비슷한 수준에서 해주고 있다”며 “핸드폰비 내고 용돈 하려고 일을 하는 애들한테 일자리를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해 일부 업주를 비롯한 어른들의 시각이 비뚤어져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교육과정 또한 청소년 노동인권 외면해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뿐 아니라 현재 한국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청소년 노동인권을 교육할 의지나 시간 자체가 없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서울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B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학교를 졸업해 대학을 진학해도 결국 사회에 나가 노동자로서 살아가야하는 아이들에게 노동자로서 알아야 할 구체적 문제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개념 정도”라며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과정에서 피해를 입더라도 몰라서 대처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좀 더 체계적인 노동인권 교육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현재 7차 교육과정 중 고등학교 사회 분야에서 노동인권 교육에 해당하는 내용은 근로자의 권리와 의무, 노동법, 사회보장제도 등에 국한되어 있다. 이 또한 사회과목이 입시에서 중요한 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정성들여 배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심화된 토론이나 구체적 현실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현장 교사들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외국은 과연 어떨까? 외국의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에 대한 국내 연구자료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지난 2004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에 용역 의뢰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개선방안 연구’가 가장 최근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학교노동교육에 노동자의 기본 권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일반계와 실업계 고교 공통과정인 시민-법률-사회교육이라는 교과에서 가난과 시민권, 일할 권리와 시민권, 근로계약서, 임금, 어린이의 노동, 여성의 노동, 위생, 안전, 근로조건, 불법노동, 노동조합과 임금노동자의 대표, 시민권과 기업, 임금노동자들의 행위와 집단적 조직, 파업, 사회운동, 파업의 정치적 사회적 역할, 노동조합과 사회운동, 분배적 정의의 주요 개념, 다양한 인권선언 등을 3년간 교육하도록 했다.

독일의 경우 일반계와 실업계 고교의 공통 사회계열 과목은 없는 대신 일반계는 인간과 정치, 사회의 이해와 행동, 사회라는 교과목을 통해, 실업계는 시대문제, 함께 행동이라는 교과목을 통해 노동인권을 배우고 있다. 독일의 노동인권 관련 교과목이 일반계와 실업계로 분리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다르지는 않다. 다만 실업계 고교 학생들이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한다는 점에 착안해 일반계 고교 학생보다 더 많이,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반계와 실업계 고교 교육과정 중 노동인권 관련 내용을 보면 노동세계, 단결의 자유, 노사관계, 노동유연화에 따른 사회적 결과, 정규고용과 비정규고용 관계, 용역노동, 단체협약법, 모의 노사관계, 노사관계 관련 법률, 노동법, 노동과 관련된 소송, 청소년 노동보호법, 노동 과정의 건강 친화성, 헌법과 인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외국의 사례를 비춰봤을 때 한국의 노동인권 교육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예비직장인 교육의 성과

이런 상황에서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이 매년 진행하고 있는 ‘예비직장인 교육’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이 교육기관인 학교에서조차 외면당하고 있을 때 비록 노동단체에서 진행하는 교육이지만 조금이나마 청소년들이 현실 사회에서, 그리고 앞으로 직장인으로서 알아야 할 여러 노동교육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지난 2004년부터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경기지역 5개 지역법률상담소가 실업계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예비직장인 교육’은 지난 2008년, 각 지역 교육청 및 학교의 호응이 높아지자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산하 19개 지역법률상담소 전체가 참여하는 전국 사업으로 확대 시행됐다. 2008년, 약 2만4천여 명의 학생들에게 노동기본권 교육에서부터 노동자로서의 자세 및 직장생활의 유의점 등을 알려줬던 ‘예비직장인 교육’은 2009년 전국 136개 고등학교와 1개 대학교에서 2008년보다 약 80%가 증가된 3만844명의 학생들에게 무료 교육을 진행했다.

시행 초기 각 지역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서는 노동단체가 진행하는 노동법률 교육에 난색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격하게 표현됐던 노동운동에 대한 반감도 있겠지만 청소년 노동법률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 부족과도 연결된다. 지역에서 ‘예비직장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성남지역노동법률상담소 이정익 부장은 “처음에는 일선 학교에서 노동단체가 주관하는 교육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과격한 노동운동의 이미지가 떠올랐는지 안 된다고만 했다”며 “여러 차례 만나서 사회진출을 앞둔 졸업반 학생들과 방학기간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재학생들이 노동기본권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설득해 교육이 이루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2008년 전국적으로 시행한 ‘예비직장인 교육’이 일선 학교에서 호응이 잇따르고 교육이 진행됐던 학교에서는 교육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하며 지속적으로 교육이 진행되는 것을 원해 2008년 120개교에서 2009년 137개교로 교육을 희망하는 학교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2009년에 ‘예비직장인 교육’을 진행한 한 학교 관계자는 “교육과정에서 정작 간과하고 지나게 되는 건전한 노동의 가치와 개인의 권리 및 기본권 인식을 강화하고 나아가 사회진출 이후 민주시민으로서의 알아야 할 권리와 책임의식을 심어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기존 실업계 고3 학생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예비직장인 교육이 2009년에는 일반계 고교까지 확대 실시되고 있으며 부산의 경우 고등학교를 넘어 일반 대학생까지 교육을 진행하게 됐다. 여기에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은 교육의 질을 더욱 높이기 위해 기존 강의식 교육에서 벗어나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통해 더욱 쉽고 친절하게 교육을 시행했으며, 1회성 집단 교육이 아닌 상시적인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위해 교육내용과 동일한 동영상 CD 3천부를 제작해 각 학교에서 상시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교재로서 제공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지정희 국장은 “현재 ‘예비직장인 교육’은 고3학생들의 수능이 끝난 이후 남는 시간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어 몰입도에서 떨어질 수 있다”며 “청소년 노동교육은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CD제작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정작 사회와 국가가 해야 할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노동단체가 진행한다는 점에서 씁쓸함은 있지만 그나마 이러한 교육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사회분야 교과 과목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입시위주의 교육과 성인중심주의 사고가 하루 아침에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현실에 맞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는 강사 양성 등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계속해서 청소년들에 대한 부당노동행위가 지속된다면 이는 노동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뿐 아니라 사업주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해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발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 한국노총 중앙법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