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울려 퍼진 노동자들의 외침
미국에 울려 퍼진 노동자들의 외침
  • 참여와혁신
  • 승인 2010.02.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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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투쟁, 그들이 미국으로 간 사연
전 세계 음악인들, 콜트-콜텍 투쟁 지원 약속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미국원정투쟁기 Ⅰ

편집자 주
2007년부터 부당해고와 노조탄압, 위장폐업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콜트악기-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1000일을 훌쩍 넘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창문 하나 없는 공장에서 세계적인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은 법원판결에서 승소했음에도 아직까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기타 생산의 1/3을 생산했던 노동자들은 전 세계 고객들에게 만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일본 요코하마 악기 박람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뮤직메세 등에서 원정투쟁을 진행했었다. 이들은 또 다시 올해 1월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린 악기 박람회인 남쇼(The NAMM Show 2010)로 날아가 콜트악기-콜텍의 노동자 탄압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이 이번 원정투쟁기를 <참여와혁신>에 보내왔다. 원문의 분량이 상당한 관계로 온라인 상에서는 2번에 걸쳐 나간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린다.

또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싣고

8일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새벽 4시,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나기 위해 가족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인천의 콜트 악기지회로 출발했다. 처음 떠나는 원정투쟁도 아니건만 가슴은 많은 부담감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아니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얼굴색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까지 가서 투쟁을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위로하듯 저 멀리 여명이 밝아온다.

9시 인천국제공항. 이미 많은 사람들이 넓은 공항 대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로 한국을 떠나 외국을 향해 떠나는 것일까? 설마 우리와 같이 투쟁을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니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더 이상 우리와 같은 노동자들이 생기지 않길 마음속으로 살며시 기도하며 출국 검사대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간단한 출국 심사를 마치고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은 원정투쟁에 대한 부담감이 더욱 더 가중되는 시간이었다. 그러한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시냇물 흐르듯 흘러 탑승시간이 되었다. 이제 하늘을 나는 거대한 철재로 이루어진 새의 좁디좁은 의자에 육체를 의지 한 채 미국원정투쟁의 성공을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을 때 쇠덩이로 된 거대한 새는 굉음을 내며 태평양의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태평양의 창공을 힘차게 날아 오른 거대한 새는 일본의 나리타국제공항을 거쳐 어느덧 미국 LA 국제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 먼 비행의 고단함으로 기진맥진 해 있을 때 우리는 입국심사를 위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입국심사대 앞. 이럴 줄 알았으면 학창시절 영어 좀 잘 배워 놓을 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전 어느새 나의 차례가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심사관 앞에 서니 심사관이 묻는다. “can you speak to english!" 나는 대답했다. “can’t english!" 그러니 심사관은 어딘가 전화를 했고 잠시 후 한국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를 통해 심사관의 질문이 이어졌다. 왜 왔냐? 얼마나 있을거냐? 등등 간단한 것을 묻고는 지문 날인을 하고 눈을 찍고 난 후에야 통과 할 수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미국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세관을 통과하고 마침내 LA땅을 밟았다. 마중 나온 현지분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LA교민들의 생활과 현지 사정을 간단히 들을 수 있었다. LA의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이상한 것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단다(우리나라도 고속도로를 무료로 이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서로간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원정단을 태운 차는 어느덧 숙소(KIWA)에 도착했다.

KIWA(한인타운 이주노동자연대)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하루 먼저 이곳에 도착 한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과 뉴욕의 노둣돌에서 활동하는 홍석종(참고로 여성임)씨와 KIWA분들, 그리고 교민들이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는 그 분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KIWA사무실 한 쪽에 짐을 풀고 조금의 휴식을 취한 후 상황실을 꾸리고, 원정투쟁의 힘찬 첫 발을 내 딛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첫 공식일정으로 KIWA분들과의 간담회 진행에 앞서 “기타이야기”를 감상하고 콜트, 콜텍의 노동자들이 머나먼 미국 땅까지 원정투쟁을 온 배경과 지난 3년 동안의 눈물어린 투쟁을 설명했고, KIWA분들과 교민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호소했다. 이에 KIWA의 대니 박 선생님은 KIWA가 하는 일에 대한 설명과 콜트, 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연대 할 것이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씀과 더불어 원정투쟁단을 환영하였다. 간담회를 마치고 곧 바로 원정투쟁단 환영만찬이 이뤄졌고 이렇게 원정투쟁 첫 날 밤은 환영과 감사가 뒤범벅이 되어 무르익어 갔다. 

9일
“거꾸로 메달아 놓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했던가. 우리의 피곤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정 둘째 날의 아침 햇살은 어느덧 우리들 깊숙이 들어와 빨리 투쟁하러 나가라고 우리를 떠밀었다. 오늘은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답사와 애너하임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모임인 가주생협, 좋은 세상을 가꾸는 사람들(좋가사)과의 점심식사와 간담회 일정이 있었다.

이번 원정투쟁의 중심 거점인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를 찾아 캠페인 및 공연할 장소를 정하고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노조의 조직담당자와 짧은 미팅을 통해 원정 목적을 설명하고 지지와 연대를 요청한 후 간담회 장소인 가주생협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분들이 손수 준비한 음식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은 후 간담회가 이어졌다. 간담회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3년여 간의 투쟁을 전해들은 그분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감탄하며 그 동안 어떻게 생활했냐며 용기 잃지 말고 반드시 승리하기를 기원한다는 말과 함께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그분들의 지지와 응원을 뒤로 한 채 콜트기타를 판매하는 Westwood라는 악기점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 사장아저씨에게 콜트기타가 그동안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을 하니 노동자들이 뭉쳐 기타를 만들어 콜트사장에 대항하라는 말과 함께 “마틴기타”의 마틴사장을 잘 알고 있으니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에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그곳을 나와 숙소로 향하는 내내 마틴사장과의 만남이 성사되길 기도하며 사뭇 설레는 마음은 숙소까지 이어졌다. 숙소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하고 평가와 다음날 일정을 공유하는 사이 거리의 불빛들은 우리를 포근한 꿈나라로 인도하고 있었다.

Tom Morello의 등장

10일
원정 3일째인 오늘은 일요일이다. 오늘은 헐리우드의 화머스마켓 답사와 한민족교회분들이 준비한 점심식사와 간담회와 캠페인을 위한 물품제작 및 장비점검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일정에 따라 화머스 마켓 답사를 마치고 한민족교회의 목사님과 신도 분들이 준비해 오신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그 동안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이 살아온 역경의 세월과 투쟁하면서 격어 온 어려움들을 설명하며 이번 원정투쟁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자 한민족교회의 목사님과 신도님들은 경영자의 잘못 된 생각으로 인해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그리고 이번 미국원정투쟁의 성공과 하루빨리 승리해서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거리 캠페인이 시작되므로 캠페인에 사용 할 물품들을 제작하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반드시 승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가운데 원정 3일째의 붉은 태양도 서서히 모습을 감추며 LA의 하늘은 점점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11일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의 아침 햇살은 상큼하고 포근함으로 원정단을 맞아주었다. 이제 원정투쟁 4일째다. 오늘부터 남쇼(NAMM SHOW)가 개막하는 13일(수요일)까지는 거리 캠페인과 함께 미국 내 노동조합들과의 간담회를 병행하며 진행한다. 거리 캠페인을 위해 물품들을 차에 싣고 비교적 인파가 많이 붐비는 헐리우드 거리를 향해 출발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과연 이곳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하는 고민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인도에 현수막을 펴고 캠페인 준비를 마치고 캠페인의 목적을 설명하고 기타공연을 시작으로 거리캠페인을 시작하였다.

거리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 차 안에서 했던 나의 고민이 괜한 고민이었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들이 건네주는 선전지를 꼼꼼히 읽어보며 질문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이며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 주는가하면, 가던 길에 시간이 좀 남는다며 선전지를 같이 배포 해 주면서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도 있었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지지 속에 공연이 무르익어 갈 즈음 즐거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미국의 락 그룹인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의 Tom Morello가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무료로 공연을 해 주겠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원정투쟁을 출발하기 전 이러한 큰 성과를 얻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음 일정을 위해 캠페인을 마무리하고 숙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숙소에 도착해 보니 이민자 단체와 노동단체에서 원정투쟁단을 환영하는 문화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문화제가 시작되기 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기타이야기”를 상영하고, 원정투쟁의 성공을 비는 고사를 지냈다. 비록 돼지머리 대신 기타를 올려놓고 지내는 고사였지만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표정은 진지했다. 고사가 끝난 후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상황과 원정투쟁의 목적을 간략하게 설명 한 후 문화제 시작되었다. 우리문화 나눔회의 사물놀이와 필리핀 여성의 아카펠라 공연, 그리고 멕시코의 전통 춤이 인상적이었으며, 이렇게 세계의 노동자들은 하나가 되어갔으며 그 하나됨 속에 LA의 밤은 깊어 갔다.

12일
원정 5일째의 아침이 힘차게 밝아왔지만 원정단의 몸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그래도 한국에서 영하의 추위를 온 몸으로 참아내며 본사 앞에서 집회 및 1인 시위를 진행하는 조합원들을 생각하면 조금의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정신을 가다듬고 11시부터 있을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기자회견은 LA주재 한국 언론들이 많이 참여 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 기자회견을 통해 그 동안 투쟁과정과 반인간적이고, 폭력적인 노동탄압, 그리고 반사회적인 콜트자본의 실상을 설명하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원정단은 거리 캠페인과 UCLA Labor Center간담회를 진행하기 위해 2팀으로 나누어 각 자의 장소로 출발했다. 거리 캠페인은 전날과 같이 뜨거운 반응 속에 진행되었으며, UCLA Labor Center와의 간담회에서도 콜트, 콜텍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는 성명을 내며 이후에도 콜트, 콜텍노동자투쟁을 지지하는 모임과 함께 지속적으로 홍보하며 행동을 취하겠다는 말과 함께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또 하나의 희소식이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적인 기타메이커이자 콜트악기에 제일 많은 오더를 발주하는 FENDER사에서 면담을 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온 것이다. 날자는 17일 일요일 13시 애너하임 켄벤션 센터 옆에 있는 힐튼호텔 로비에서다.

13일
크고 작은 성과들과 함께 원정 5일이 지나고 6일째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로서 LA거리에서의 캠페인은 끝이 난다. 오늘은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운동단체인 MCTF, SEIU Local 1877과의 점심식사와 간담회와 AFL-CIO United Steelworkers Union간담회, 그리고 콜트, 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기타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MCTF와의 간담회는 약 6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점심식사와 함께 진행되었다. 거의 대부분이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세차원과 버스운전기사, 청소원들이었다. 이들은 사회자가 한국에서 온 노동자들을 소개하자 기립 박수로 환영해 주었으며, 노동자에게도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서로 궁금한 것에 대해 약간의 질문이 오가는 가운데 노동자는 역시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음 간담회 장소로 이동했다.

United Steelworkers Union사무실에 도착하니 Dave Campbell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원정단과 인사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합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였다. 조합원이 약 50여명이 모이자 Dave Campbell씨가 원정단을 소개하자 큰 박수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이어 원정단의 인사와 콜트-콜텍 노동자의 투쟁경과와 작업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앞으로 많은 지지와 연대를 당부 드리며 남쇼(NAMM SHOW)기간 중에도 많이 찾아 줄 것을 요청하고 몇 몇 조합원의 질문을 받고서야 간담회는 마무리되었다. 조합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기타콘서트>준비를 위해 원정단은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KIWA분들이 콘서트준비가 한창이었다. 강당을 콘서트공간으로 꾸미는 동안 많은 관객이 도착하고 우리문화 나눔회 풍물패의 사물놀이를 시작으로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LA지역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David Tran, SKim, Shin Kawasaki, Mary Rose Goem등의 공연으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Tom Morello, Boots Riley, Wayne Kramer가 공연 할 때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 자리에서 Tom Morello는 “기타는 착취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 곡으로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해 만든 “Worldwide Rebel Song”을 불렀다. 그리고 이어 콜트-콜텍 노동자와 짧은 간담회를 갖고 이 자리에서 Tom Morello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끝날 때 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지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이렇게 힘들고 즐거운 원정 6일째도 지나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