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의 다람쥐’ 마케팅 명장이 되다
‘코트의 다람쥐’ 마케팅 명장이 되다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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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선수 출신 정재섭 지행장의 인생 드리블 이야기
기업은행 풍납동 지점 정재섭 지행장

기업은행 풍납동 지점 정재섭(42) 지행장은 특이한 이력을 여럿 가지고 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은행원, 국책은행 최연소 지점장, 여기에 최근에는 기업은행 최초의 ‘마케팅 명장(名匠)’ 칭호까지 얻었다.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끈 영업점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열린 기업은행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경진대회’에서 그간의 영업성과를 인정받아 기은 명장으로 선정된 것.

 

 

주전 가드에서 최연소 지점장으로


농구팬이라면 정재섭 지행장(시중은행의 지점장)의 얼굴이나 이름이 낯설지 않다. 그가 선수로 활약하던 80년대 중반까지 고려대 농구팀은 가드 정재섭, 포워드 최철권의 진용에 특유의 투지를 앞세워 대학농구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85년 졸업과 동시에 기업은행 농구팀에 입단했는데, 당시 현대, 삼성의 양강 구도 속에서 기업은행이 금융권팀으로는 드물게 선전을 펼쳤다. 정 지행장은 91년 기은 농구팀이 해체되면서 ‘선수’에서 ‘은행원’의 길로 접어든다.


10년 여의 은행원 생활 끝에 지난 2002년 점포장 공모에 출사표를 던졌고 30대 과장급으로는 처음으로 점포장에 발탁됐다. 하지만 야심찬 꿈을 품었던 그에게 배정된 점포는 당시만 해도 기업은행 내에서 ‘만년 꼴찌’로 유명하던 풍납동 지점이었다.


“와서 보니 직원들이 목표의식도 없이 시간만 때우고 있었어요. 당장 실적을 내는 것보다 동기부여가 우선이라고 생각했죠. 안 되는 점포는 다 이유가 있어요. 가장 큰 것이 직원들이 패배의식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의 사기진작과 자신감 회복을 위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만년 꼴찌’를 우량지점으로 만들기까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직원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퇴근 후에 과일을 한 박스씩 사들고 무작정 직원들의 집을 찾아갔다. 여직원의 집일 경우에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직접 인사를 드리고 “앞으로 00씨가 저를 좀 많이 도와줘야겠습니다, 우리 은행에서 아주 유능한 인재이니 집에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라고 정중히 부탁을 하고 다녔다.


처음에는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직원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 지행장은 조직의 리더가 구성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서 성공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어느 조직이든 리더는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성과는 그 다음이죠.”


직원들이 조금씩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 지행장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도록 했다. 지점의 전 직원에게 책임자 자격시험(4급 이상, 대리 승진을 위해 거쳐야 하는 시험)에 응시해 통과하도록 한 것.


지점의 모습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1년간의 노력 끝에 풍납동 지점은 2003년 경영성과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성과를 내지 못해 폐쇄 직전에 있었던 작은 점포가 1년 만에 이룬 것으로는 믿기 어려운 결과였다.

 

‘코치’와 ‘주장’이 있는 은행, 그리고 팀워크


하지만 정 지행장은 이런 성과의 중심에는 자신이 아니라 전 직원이 함께 있었다고 말한다. 스포츠에서 팀플레이가 중요하듯이 기업 성과에서도 ‘팀워크’가 필수라는 것이다. “저 혼자서 모든 고객을 다 응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성과도 오르지 않고요, 우리 지점 직원들은 평사원부터 대리급까지 모두 지점장만큼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실제로 풍납동 지점의 직원들은 지점장과 같이 중요 고객을 응대하거나 직접 만나 중요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등의 ‘활약’을 한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 지행장은 은행에 교통카드와 법인카드를 비치해 둔다.


풍납동 지점에는 ‘특별한’ 지행장만 눈에 띄는 게 아니다. 전체 직원 8명 규모의 작은 점포지만 스포츠 팀과 같이 여자 주장과 남자 주장, 어시스턴트 코치 등이 있다. 연승을 올리고 있는 풍납동 지점의 감독이 정 지행장이라면 어시스턴트 코치는 은행 문 앞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청원경찰이다.


“청원경찰은 계약직이지만 그 분이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은 참 소중한 겁니다. 늘 창구 바깥에 서 있기 때문에 창구 안팎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어요. 고객들이 어떨 때 만족해하는지, 어떨 때 불만을 갖는지, 또 직원들의 태도는 어떤지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죠. 그래서 코치의 역할을 하기로는 딱 적당한 분이라는 겁니다.”

청원경찰에서부터 평사원, 중간급 사원까지 ‘일당 백’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마케팅명장 비결은 ‘무빙’과 ‘스피킹’


지점장으로서의 리더십 외에도 그에게는 발군의 마케팅 노하우가 있다. 지난 2000년에는 800억 원이나 되는 개인 예금을 유치해 전국 지점에서 1위를 차지했고 풍납동 지점으로 온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수신 실적을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머리를 굴린 결과가 아니라 몸으로 뛴 결과’라고 말한다. “저만큼의 머리는 누구나 다 굴리지 않겠습니까? 저보다 더 많은 학식과 더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은 수도 없죠. 직원들에게도 항상 말합니다. 서서 생각하지 말고 움직이면서 생각하라고요. 성공의 핵심은 ‘무빙’입니다.”


정 지행장이 ‘무빙’ 다음으로 강조하는 것은 ‘스피킹’이다.
“지난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대화하는 축구’를 주장했잖아요. 원리는 간단해요. 게임을 할 때 입을 꾹 다물고 뛰지 말고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문제점을 바로바로 개선하라는 겁니다. 이 커뮤니케이션이 12번째 선수가 되는 거죠. 영업도 똑같습니다. 첫째는 고객과 얘기를 많이 해야 하고 다음으로 동료와 대화를 많이 해야 하죠.”

 

최악의 조건에서 다져진 승부욕


정 지행장은 지금의 성과가 있기 까지, 운동선수의 경험이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말한다. ‘공’이 ‘페이퍼’로, ‘승리’가 ‘성과’로 바뀌었을 뿐이지 전략과 팀플레이의 중요성만큼은 농구와 영업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제 키가 173cm인데 농구선수 치고는 너무나 작은 키였어요. 선수로서 가장 나쁜 조건을 가지고 농구를 시작한 거죠. 그래서 어려울 때면 늘 지금 닥친 시련이 최악의 것이라고 해도 나의 일을 좌절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업은행이 ‘얕은 꾀를 안 쓰는 진솔한 은행’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정재섭 지행장. 새로운 꿈을 향한 그의 드리블은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