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청춘들의 잿빛 알바 이야기
푸른 청춘들의 잿빛 알바 이야기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03.0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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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조차 쌓기 힘든 팍팍한 생활
만성적인 불안감 속 청년들의 희망 찾기

▲ 인터뷰 참여자 왼쪽부터 김민수, 한지혜, 김지윤, 김형근, 김민수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젊은이들을 ‘청춘’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푸르기 때문이다. 인생의 봄날을 살아가는 그들은 따뜻한 햇살 속에 힘차게 움을 틔우는 새싹처럼 역동적이며 싱그러워야 하며,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권리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청춘의 색은 ‘잿빛’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꿈을 잠식했고 반복되는 팍팍한 삶이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거둬갔다. 낭만이 사라진 캠퍼스를 전쟁터 통과하듯 지나고 나면 어느덧 엄혹한 현실이 기다린다. 치솟는 등록금과 생계비용 속에 ‘알바’라는 이름 아래 매서운 경제 한파의 위기를 감내하고 있는, 또 ‘청년실업’이라는 공포로 인해 그들의 삶은 분명 ‘잿빛’이다.

하지만 ‘잿빛’ 현실 속에 갇혀 있다고 해서 그 속에서 죽어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그들은 ‘청춘’이며 젊은이답게 역동적이고 세상을 향해 깨어 있다. <참여와혁신>은 ‘잿빛’의 현재를 살아가는 발랄한 ‘푸른 빛’의 청춘을 만나봤다.

‘알바생’, 그들의 삶의 이야기

‘대학졸업을 앞둔 대학생 10명 중 7명이 학자금 대출 등으로 빚을 지고 있으며 1인 평균 부채 규모는 1125만 원에 달하고 있다’, ‘청년인턴으로 취업했던 청년들이 다시 백수로 U턴하고 있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국가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각종 매체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관련된 통계자료와 대책도 쏟아진다.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었을 이야기들이고, 한 번쯤은 혀를 찼을 내용들이다.

이곳저곳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바람에 어느 순간 구태의연해져 버린 이야기 속에서 ‘아르바이트’로 온몸을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청춘’들에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자신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된다.

한 달 꼬박 40만 원 짜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야 하고, 등록금을 갚기 위해 밤새 뛰어다니며 불확실한 미래로 만성적인 불안감에 떨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확실히 청춘은 청춘이었다. 그들은 발랄하고 당당했으며 세상을 향해 거리낌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참여와혁신>이 ‘청년유니온’의 일일호프를 찾은 것도 지겹도록(?) 반복되는 청년 일자리 관련 이슈 속에 갇힌 그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월 27일, 을지로의 한 호프집에서 열렸던 ‘청년유니온’의 일일호프는 시민사회단체, 청년유니온 소속 많은 이들이 자리를 함께하며 성황을 이뤘다.

일일호프 진행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을 잡아 이야기를 나누는 ‘민폐’를 끼쳤지만, 그들은 흔쾌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즐겁게 꺼내줬다. 그럼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인터뷰 참여자★
 한지혜(27) - 방과 후 교사, 행정인턴 경험  
김지윤(27) - 취업 준비 중, 학원 강사, 논술 과외 경험
 김형근(25) - 졸업 준비 중, 과외 경험  
 조소나(25) - 대학 재학 중, 편의점, 인턴, 학원 강사 등 경험
 김민수(20) - 대학 새내기, 편의점, 음식점 아르바이트 경험

 Q1 ‘알바생’의 삶은 어떤가?

스펙? 배부른 소리 마라

▲ 김지윤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김지윤 집이 어렵다보니 과외를 해서 등록금을 대거나 생활비를 벌려고 하는데, 학원의 경우는 내내 수업만 해야 해요. 그러면 다른 친구들 공부할 때 영어학원 다닐 시간도 나오지 않죠. 게다가 학교에 강사일까지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피곤해요. 출퇴근 시간에 책 보는 정도로는 감당하기 힘들죠.

반면 부모님께 용돈타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졸업하고 취업하려면 불리할 수밖에요. 취업이 확정되면 당당히 졸업하겠지만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지 못하면 취업 시에도 불리하잖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학교 다니는 시간은 길어지죠. 지금 저도 7년째에요.

조소나 어쨌거나 알바로는 생활이 안돼요. 사람의 삶이 아니죠. 학교를 다니니까 밤에 일을 해야 하는데 밤에 일하고 학교를 가면 공부가 되겠어요? 몸이 절대 따라주지를 않죠.

김지윤 학자금 대출을 받는 학생들은 말도 못하죠. 논문도 쓰기 힘든 상황이에요. 다른 빚을 져야 할 때도 있죠. 대한민국에 취업준비생이 많은 이유가 있어요.

대부분 비정규직에 열악한 일자리들이 많아요. 그나마 잘된 아이들이 월급 150만 원 정도인데, 학자금 대출 갚는데 수십만 원을 쓰는 마당에 집 구하고, 결혼준비 하는데 생활이 감당이 되나요? 결국엔 투잡을 하게 되는 친구들이 늘게 되죠.

김형근 저 같은 경우도 과외를 했어요. 1년 동안은 부모님이 학비를 대주셨지만 나머지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죠. 그런데 이 대출이 이자가 높고 바로 갚아야 하다보니 피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취업 후 학자금상환대출도 있다지만 이자도 5%가 넘는 고이자고 대출 자격도 학점으로 끊는 상황에서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친구들은 학점에 걸려 대출을 못 받는 친구들도 있죠.

▲ 한지혜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지혜
취업 준비라고 뭘 할 틈이 없었어요.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그걸 갚기 위해 바로 알바하고 졸업하고 다시 알바하고 전전긍긍하면서 지냈어요. 그러다보니 생계를 위해서 일을 계속했죠. 지금도 학자금 대출 갚고 생활비도 벌어야 하는데 계속 아르바이트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한 언니는 정규직이었고 나머지는 파견직이었어요. 그 언니는 같은 일 하지만 안정적이고 일을 하면서 불안감이 없어 보였죠. 나는 재계약을 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어요.

김지윤 저는 논술시즌에 급하게 인력을 충원하거나 선생님들을 임시 모집하는 학원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당시는 큰 문제로 생각 안했는데 계약할 때 잔업이나 수업을 더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6시간 계약한 상황에서 보충한다고 9~10시간을 잡아두는 일이 일주일에 3~4차례 일어났어요.

게다가 후불제라 중간에 못 한다고 나와 월급을 못 받기도 하죠.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정말 직업적으로 갈 수밖에 없어서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니 학교일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죠.

Q2 청년실업, 무엇이 문제인가?

불안감 조장하는 팍팍한 현실

▲ 김형근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김형근
청년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미래 보장이 안 되는 것이 정말 큰 문제라고 봐요. 인턴도 그냥 하는 일 없이 별다른 경력도 아닌 거쳐 가는 형태라는 게 문제죠. 취업준비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때우는 건 정말 큰 문제에요. 정해진 ‘미래’가 없다는 심리적 압박도 크죠.

대학 때 공부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학생들이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을 했을 텐데, 취업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밖에 없고 꿈을 위해 산다기보다는 안정적인 직장만 찾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요.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꿈을 바꾸고 현실에 맞추며 살고 있는 것이죠. 안타까워요.

조소나 솔직히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다들 스펙 쌓는다고 하는데 저는 솔직히 그게 싫었어요. 어차피 일할 때는 쌓아놓은 스펙 다 필요 없잖아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죠. 정말 ‘미칠 듯이’ 불안해요. 다들 “자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지요.

김민수 ‘스펙을 쌓는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스펙을 쌓는 것은 ‘자기 계발’을 한다는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학생들이 졸업 후 ‘생존’의 문제로 스펙을 쌓다보니 자신이 원하는 자기 계발을 할 수 없고 억지로 ‘스펙’ 쌓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죠. 소위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소나 청년들이 눈을 낮추면 일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하는데 제 주위에도 중소기업 다니다 퇴사한 친구들이 많아요. 중소기업은 안정되어 있지 못하고 비전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이걸 가지고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돼요.

김형근 학교에는 취업캠프가 있어서 이력서, 프리젠테이션, 면접 잘하는 법 정도를 가르쳐요. 내 공부가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 발표기술이나 자기소개서 쓰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다보니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한 과정을 배우는 거죠. 학교 나온 것은 이름표 다는 정도에 불과해요.

Q3 ‘인턴’들의 삶은?

이력서 한 줄 더 쓰기 위한 몸부림

▲ 조소나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소나
요즘은 학교에서 인턴을 장려해서 여기저기 알선해 줘요. 그런데 그 인턴이라는 것이 이력서에 한줄 더 들어가는 경력 이상의 의미는 없어요. 하는 업무는 단순하고 항상 똑같은데다 임금도 적죠. 게다가 학교에서 전달해주는 정보가 너무 한정적이라서 내가 무슨 일을 하기 위해 그 회사에 가는지도 잘 몰라요. 가보고 나서야 후회하는 경우도 많죠.

한지혜 사무보조로 인턴 했던 사람들이 모인 적이 있어요. 허울 좋게 인턴이지 “복사꾼, 파쇄꾼이냐”는 이야기도 했어요. 대사관에서 인턴한 사람도 교통비 밖에 없었죠. 경력 한 줄 더 쓰려고 하는 것이지 다른 생계를 꾸릴 수 없어요. 대기업 인턴 역시 마찬가지죠. 들어가자마자 “너희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쪽 대학교는 정규직으로 뽑지 않는다’는 소문도 들었죠.

조소나 저는 집이 지방인데 제 동생이 호텔 쪽 전공을 하고 있어서 호텔에 인턴으로 나가 있어요. 인턴해서 받는 돈이 한 달에 40만원이죠. 그런데 기숙사비가 40만원이에요. 그만두고 싶어도 알선해준 학교에 누가 될 것 같고 또 그쪽 바닥이 좁아서 좋지 않은 소문이 나면 취업되지 못할 것 같아서 계속 하고 있어요.

결국엔 인턴으로 정해진 시간에 더해서 일을 해야 기숙사비 내고 생활비를 조금 감당해 낼 수 있죠. 밤새워 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에요.

Q4 청년 일자리 문제,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개념’이 사라져야

▲ 김민수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지혜
노동시간이 단축됐으면 해요. 또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나뉘는 것이 심각한데 그런 구분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봐요. 모두들 안정된 일자리, 정규직만 찾다보니 결국 자신의 꿈을 좇는 친구들이 없어지게 돼 버렸으니까요.

김지윤 불안정한 직장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봐요. 과외도 그렇고 정리해고도 그렇고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직장을 통한 자아실현이나 이런 문제가 아니고 완벽한 ‘생존’의 문제가 되어 있는 것이죠. 중소기업이 살아나서 노동조건이 개선되고 중소기업에 취직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고용환경도 나아질 것 같아요.

조소나 청년실업 문제에 정작 당사자인 20대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20대의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 심각해도 알려지지 않고 있으니 아무 소용없잖아요.

김민수 우리 모두가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청년들이 함께 모여 일자리나 등록금 문제에 고민하든요. 그렇게 힘이 모이면 이 사회에 주도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해결하고자 함께 노력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