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앞두고 불신만 커졌다
정리해고 앞두고 불신만 커졌다
  • 박석모 기자·정우성 기자
  • 승인 2010.03.0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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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불안, 피폐해진 삶,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위기 극복해도 불신의 늪 깊어
Special Report 노동자 삶 뒤덮은 정리해고의 그림자 ① 불안의 시작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해 77일간의 옥쇄파업으로 기억되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의 경험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올해 또다시 정리해고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각 지방의 대표기업으로 자리매김하던 기업들이 경제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위기를 맞고 있다. 부산의 한진중공업과 광주의 금호타이어가 그들이다. 정리해고의 바람 앞에 선 한진중공업과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역사와 전통의 기업, 위기에 빠지다

‘대한민국 조선1번지’
부산 영도에 위치한 한진중공업 작업장에는 이런 비석이 세워져 있다. 조선업계 세계 1, 2위를 다투는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에 비해 건조나 수주 규모는 작지만, 한진중공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소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조선 산업의 불황으로 한진중공업은 경영위기 극복과 차후를 대비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진중공업은 조선부문 인력을 30%가량 줄이고 기술본부의 상선·해양 설계조직, 선박해양연구팀 등을 별도 법인으로 분사시키는 ‘인력조정 기본계획안’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지회장 채길용)에 통보했다. 지난 연말에는 350여 명의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정리해고를 둘러싼 갈등은 지난달 26일 노사가 정리해고 추진 중단에 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광주 소촌동에 위치한 금호타이어의 정리해고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금호타이어 역시 한진중공업과 마찬가지로 역사가 오래된 기업이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 상황에 처하면서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12월 급여가 체불되더니, 급기야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워크아웃 신청 이후 회사는 지난 2월 초에 열린 임·단협 상견례에서 371명 정리해고와 1,006명 아웃소싱 등을 포함한 구조조정 계획을 제시했다. 이 계획에는 기본급 20% 삭감과 각종 복지혜택의 중단·축소도 포함됐다.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지회장 고광석)는 경영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긴다며 정리해고 만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어진 교섭에서 회사는 정리해고 대신 상여금 300% 삭감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회사는 명예퇴직 신청을 받아 모두 178명이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정리해고와 상여금 삭감 중 하나를 받아들이라는 회사와 정리해고는 수용할 수 없다는 지회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지회는 지난달 26일, 진통 끝에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대신 한시적인 상여금 100% 반납 등을 담은 자구안을 제시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억지로 웃으려 해도 안 된다


설 연휴가 지난 직후 찾은 한진중공업 앞은 썰렁했다. 맞은편에 위치한 사원아파트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정문 앞에 위치한 농성 천막과 주위의 플래카드, 취재를 막아서는 한진중공업 경비인력들만이 여기가 구조조정을 앞둔 사업장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점심시간, 삼삼오오 공장 문을 나선 일반직 노동자들과 생산직 노동자들은 정문 앞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연희(여, 45)씨는 “이곳의 식당들은 대부분 공장 내 식당에 자리가 없어서 나오는 직원들로 점심장사를 했었다”며 “사람도 줄고, 뒤숭숭하니까 공장을 나오는 직원들이 여름에 비해 1/5로 줄어 문 닫는 식당이 늘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식당 주인도 가게 문 닫고 지금 파출부로 나가고 있다”며 “24시간 운영하는 우리 편의점도 상당히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정리해고 신고서 제출 이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이미 지난해부터 주말 특근이 없어져 연봉의 10% 정도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직장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공장 전체를 휘감았다.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앞으로의 생계 문제였다. 한진중공업에서 만난 김재열(35) 씨는 현재 의장파트에서 근무하고 있고 경력은 9년차다. 김 씨는 부모님과 아내, 4살배기 아들 등 다섯 식구의 가장이다. 김 씨는 “1월 월급 실수령액이 세금, 사내 신협 대출금 변제액을 제외하고 140만 원 정도다. 다섯 식구 평균 생활비가 70만 원 정도고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을 위해 보험 등에 들어가는 돈이 30만 원 정도다보니 아이 책 사주는 것도 벅차다”고 말한다. 결국 김 씨는 은행에 1천5백만 원 대출신청을 했다. 둘째를 가지려던 계획도 포기했다.

한진중공업에서 25년을 근무한 김상돈(48) 씨도 걱정이 태산이다. 김 씨는 아내와 대학교 2학년과 고3 자녀를 두고 있다. 연봉이 5천만 원 정도로 김재열 씨보다는 경력이 높아 연봉은 높지만 내년에 막내가 대학을 입학하면 2명의 자녀에게 들어가는 돈이 연간 2천만 원 넘게 들어간다는 사실에 눈앞이 깜깜한 상황이다.

그는 “혼자 벌어서는 간신히 애들 공부는 시킬 수 있지만 만약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학교에 보내기는 힘들 것”이라며 “대학 나와도 취직하기 어려운 세상인데 학교마저 보내지 못한다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생각 때문에 밤에 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 가정의 가장에게, 그리고 그 가족에게 정리해고란 단어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정리해고를 앞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가정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김재열 씨는 “집안 분위기가 하도 안 좋아서 가족끼리 돈이 안 드는 광안리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웃음이 안 나오는 거다. 아이에게 억지로 웃으려고 하는데 잘 안 되서 괴로웠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김상돈 씨도 “가족 중 누구도 정리해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모두들 불안감에 싸여 있다. 부산 지역 뉴스에서 연일 한진중공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알고 있지만 내 앞에서는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그것이 더 괴로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새로운 직장을 찾아보려는 시도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조선업계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비정규직뿐이며 이마저도 인맥을 동원해 들어가기 일쑤다. 비정규직이라고 안 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지만, 또다시 언제 잘릴지 몰라 자신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선뜻 그런 자리라도 가야한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앞 둔 노동자들의 마음은 더 타들어가기만 할 뿐이다.

무엇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는 부산 최대 사업장인 한진중공업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자랑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믿음이 사라졌다. 김재열 씨는 “한진중공업 명찰을 달고 부산을 돌아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며 “35세에 정리해고라는 소리를 들으니 이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겠다는 희망도 없어졌고, 회사 프라이드를 지키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는 생산직 노동자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한진중공업에서 일반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A 씨는 “작년 경영위기 당시 일반직은 연봉 10%를 자진 삭감했는데도 정리해고 대상에 일반직도 포함됐다”며 “현재 일반직들의 분노는 대단하다. 회사에 충성하면 뭐 하냐,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미국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정리해고는 조직문화를 파괴하고, 기업에 대한 충성심을 떨어뜨리며, 퇴직자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면 남아 있는 직원들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업을 불신하게 된다”면서 “이는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 실적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조상님 뵐 낯이 없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12일, 금호타이어 공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순조롭게 가동되고 있었다. 이날 금호타이어지회는 단협에 명시된 조합원교육시간을 이용해 임·단협에서 회사가 제시한 안을 설명하고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조별로 실시했다.

조합원교육시간은 2시간이지만 집회는 1시간도 안 돼 끝났고,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 중 일부는 다시 작업장으로 향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자녀를 둔 오 모씨는 “지난 12월 급여부터 1월 급여, 1월 상여, 구정 상여까지 모두 4회분의 임금이 체불됐다”며 “가사만 하던 집사람이 지난주부터 L마트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오 씨는 “1년 중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연말 연초에 임금이 체불돼 집안 사정이 말이 아니다”면서 “그나마 회사에서 금호생명에 들었던 단체보험이 만기가 돼 조금 숨통이 트이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회사 내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인 노동자들도 화제는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감이다. 휴게실에 있던 김 모씨는 “조상님 뵐 낯이 없다”며 이틀 앞으로 다가온 설 명절을 걱정했다. 그는 “올해는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며 “지금까지는 그나마 단체보험 나오고 적금 깨서 생활했지만, 3월 넘어가면 답이 안 나올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쉰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은 아이들 교육비부터 줄였고, 집안에서는 가장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 오 씨는 “아이들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아이들도 알고 있는 눈치다”면서 “우리 아이들은 학원에 안 보냈지만, 많은 집에서 애들 학원을 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금융기관에서도 금호타이어에서 일한다고 하면 손사래부터 친다. 김 씨는 “많은 노동자들이 은행에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고 기간을 연장해야 할 처지”지만 “금융기관에서는 금호타이어 직원들에게는 연장을 해주지 않아 조만간 신용불량자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은행 신규대출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의 일이다. 오 씨는 “지금 당장 일시적인 고통분담은 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회사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당장 자고 일어나면 깎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회사를 믿을 수 있겠느냐”며 “노동자들이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것은 지금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회사에 정나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금호타이어지회 대의원인 김 모씨도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것은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라면서 “기존에 기본급 20% 삭감에 복지 축소, 상여금 300% 삭감까지 합하면 전체적으로 44% 정도의 임금이 삭감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젊음을 바쳐 일해 왔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으로 근속이 높을수록 마음이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면서, “오늘 조합원교육시간 중 남은 1시간 동안 일했던 사람들은 회사를 살리려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이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될까봐 관리자들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생각이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호타이어에서는 워크아웃이 결정된 이후, 정리해고를 예상한 노동자들이 주어진 목표량보다 더 많은 물량을 생산해내고 있다. 하지만 김 모 대의원은 “이런 행동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아닌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불안감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리해고를 앞둔 한진중공업과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한 불안감, 피폐해진 가정, 그리고 회사에 대한 불신이다. 무엇보다도 정리해고를 앞둔 노동자들에게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한진중공업에서는 정리해고가 철회됐지만, 한 번 깨진 믿음을 다시 회복할 때까지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 당장의 위기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기를 벗어난 이후의 상황이 더욱 우려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