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공동화 대안 언제 나오나
제조업 공동화 대안 언제 나오나
  • 위성수 기자
  • 승인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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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위 논의 더디지만 토질 좋아 ‘대풍 예감’

지난 5월 초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출발한 노사정위원회 제조업발전특별위원회(이하 특위)가 활동 2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6개월 한시적 기구로 시작된 특위 활동은 이제 논의의 가닥을 잡고 있는 수준이다. 장기 내수 침체와 국제 경쟁 심화에 따른 국내 기업 해외 진출 가속화는 제조업 공동화라는 화두를 국민경제에게 던졌고 이에 화답한 노사 대표가 지난해 11월 특위 구성을 제안한 지 반년이 지난 시점이다.

 

특위 5대 의제 선정…노사정 역할에 ‘희망’ 보여


특위는 지난 6월23일 2차 본회의에서 향후 특위가 논의해야 할 5가지 의제 선정을 마친 상태다.

 

제조업발전특위 선정 5대 의제
1. 제조업 공동화의 실태 파악 및 원인 분석
2. 외국의 공동화 대응사례 연구 및 분석
3.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원 방안
4. 대기업·중소기업 협력 방안(원·하청 간 불공정거래 시정,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이전 문제 등)
5. 제조업 근로자에 대한 직업교육 및 재취업지원 강화 대책


이날 회의에서 특위 위원들은 의제 선정에 맞춰 제조업 공동화 실태 파악을 위한 현장 방문과 연구용역 과제 선정,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설문조사 등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특위는 7월 12일과 13일 노·사·정·공익 대표가 모두 참여, 2개팀을 구성해 모두 12개 업체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갑작스런 해외이전으로 문제가 됐던 월드텔레콤, 이미 공동화를 넘어 붕괴돼 버렸다고 평가되는 대구지역 섬유·의류 업체 등 대구·구미·충북 지역과 경인 지역을 중심으로 기업과 산업차원의 공동화 진행 실태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기반으로 ‘제조업 경쟁력 강화 및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노사정위원회 이덕재 전문위원은 “설문조사는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사 양쪽의 의견을 모으는 작업”이라며 “이는 향후 정부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 경쟁력과 고용유지 및 창출을 위한 노사 담당자들의 현실감 있는 아이디어를 모아내겠다는 것이다.


특위는 이와 함께 ‘해외 공동화 및 대응 사례’에 대한 연구용역도 추진한다. 해외 사례를 통해 우리 토양에 맞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다.


지난 2차 본회의에서는 ‘수도권 공장증설 규제의 영향에 관한 연구-고용증진 관련’을 또 다른 연구주제로 잠정 선정하고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수도권 개발억제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국내 기업의 해외이전을 부추기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과 제조업 공동화와 관련해 분석한 자료가 없다는 점에 대부분 위원들이 공감한 것이다.


이와 함께 대기업·중소기업 협력 방안과 제조업 근로자에 대한 직업교육 및 재취업지원 강화 대책을 위한 산업자원부와 노동부의 관련 정책보고도 진행됐다. 산자부 보고에는 대기업의 출자총액제한 폐지 등 민감한 문제들도 포함되어 있어 위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어쨌든 이로써 특위는 제조산업 발전을 위한 노사정 고민의 공통 분모를 마련한 셈. 중소기업연구원 홍순용 선임연구원은 특위 진행사항에 대해 “출발치고는 괜찮은 편”이라고 평가한다. “제조업 공동화가 시급한 문제이지만 섣부른 대책을 내올 사안이 아니다”며 “실태조사 등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탄력이 붙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논의 주제와 실천 과제들이 확정되면서 특위도 생동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덕재 전문위원은 “초기에 위원들이 ‘오긴 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는 입장이 많았지만 이번 2차 본회의에서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오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틀은 잡혔지만 재계는 아직…


하지만 재계는 제조산업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쉽게 입을 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제조업 발전 전략이라는 것이 결국 정부 정책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계로선 섣부른 대응이 기업의 자율 경영을 침해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연맹 김정태 상무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단기대책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문제도 실태조사 이후에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산자부가 마련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강화방안’ 보고서 내용을 넘어서는 색다른 내용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위 관계자는 “제조업 발전 정책은 산자부가 지난 5월에 청와대에 보고한 자료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조급하게 성과 내려고 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노동계, 응급조치부터 하자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특위 활동이 너무 중장기적인 대안에만 집착하면서 시급히 처리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등한시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정문주 정책국장은 “수많은 상처로 출혈이 심한 환자에게 응급조치는 하지 않고 CT촬영하고 종합검사를 하는 식”이라며 “먼저 피를 멈추게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주장이다.


지난 4월 산자부 조사에서도 수급기업의 84%가 납품단가 인하를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최근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상생협력 움직임이 확대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단기성과에 집착한 관행들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송장준 박사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협력문제는 아직까지 구색갖추기 정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특정 대기업과의 전속적 거래를 요구하는 관행도 여전해 자동차부품업체의 경우 일본은 모기업 단독거래가 전체 17%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3배가 넘는 58% 수준에 이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동계는 대기업·중소협력업체 간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 공정거래위원회 권한 강화 등은 지금 시점에서도 노사간 공감대를 마련, 정부 요구안을 제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한 노사간 공동선언문 작성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 정책 사각지대는 노사간 협력이 대안


하지만 현재 제조산업의 해외이전과 이에 따른 고용불안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노사정위원회라는 것에 노사간 이견이 없다.


금속노련 이병균 위원장은 “노사정위원회가 제조업 공동화 문제를 논의하는 유일무이한 공간”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생각은 문제”라며 “생산성 향상과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은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현장에서 노사가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의 다각적인 지원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특위에 참여하는 다른 위원도 “제조업 공동화 대책은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처럼 노사간 이견이 크지 않은 문제지만 노사가 결정이 필요한 시기에는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노사정위원회의 중요성을 재차 거론했다.


국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제조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 공익 담당자들의 솔로몬의 지혜가 어떻게 발현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산자부 견해 동의하지만 중요한 건 실천의지”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이병균 위원장

- 최근 정부에서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하는 중소기업 지원 방안이나 노동계가 보는 관점은 비슷하다. 87%에 이르는 중소제조업 육성이 없는 고용안정은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국내로) 들어오는 (해외)기업에게만 혜택을 주지 말고 나가려는 기업들을 잡기 위한 혜택이 있어야 한다.”

-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있다면?

“대·중소기업 관계에서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친 상태다. 대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남기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대·중소기업 관계가 수직종속적 관계가 아닌, 동반자적 관계로 전환돼야 한다. 대·중소기업이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정위가 룰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대기업도 핵심역량을 중소기업에 이양해 장기적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산자부가 마련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강화방안’을 평가한다면?

“산자부 내용을 대부분 동감한다. 대안 또한 나무랄 데가 없다. 노동계보다 더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파악한 자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천의지이다.”

- 제조업발전특별위원회의 역할은?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대안을 창출하는 공간이다. 제조업 공동화를 논의하는 곳이 노사정 말고 어디 있나. 논의의 유일무이한 공간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문제는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생각에 있다. 생산성 향상과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은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현장에서 노사가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하는 부분이다.

 

최근 공공특위의 노정 합의처럼 제조업발전특위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 대안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노사 대타협도 가능하다. 노동계는 임금자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양보와 협력이 가능하다. 특위 위원들이 여러가지 아이디어 내놓고 있어 기대할만한 내용들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모양 갖추는 데만 급급하면 실패한다”
중소기업연구원 홍순영 선임연구원

- 최근 산자부가 제시한 대기업-중소기업 협력방안을 평가한다면?

“기업의 목적이 이윤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 자발적 참여 유도가 바람직하다. 대·중소기업 서로 이득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진행하면 서로 상처만 남을 것이다. 기업 목적이 최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지만 대·중소기업 간 이익을 공유해야 대기업들도 장기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중소기업도 품질과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기업들이 과도하게 중소기업을 압박하는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과도한 단가인하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을 막고 근로환경을 저해, 양질의 인력풀 확보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과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지원이 가능했을 때 대기업도 경쟁력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규제와 협박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협력과 공생의 의식이 필요한 부분이다.”

- 산자부가 대기업의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을텐데.

“총액제한을 푼다는 것은 지배구조 개선, 윤리경영, 경영형태 변경 등이 선행돼야 함을 전제한다는 의미이다.


대기업이 상호지급보증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부실화를 초래하거는 것을 막을 장치가 도입되고 대·중소기업간 상호 협력관계로 가는 것이라고 본다. 대기업 마음대로 중소기업이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중소기업과 협력, 동반성장의 인식이 확산될 때 가능하다. 제도가 바뀌어도 사람의 사고와 형태가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것 아니겠나.”

-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노사간에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모양 갖추는 데만 급급, 정책과 제도가 실패한 경우가 많다. 벌써 결론 내릴 수 있다면 특위가 필요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