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놀이, 또 하나의 노동인가?
가족놀이, 또 하나의 노동인가?
  • 송종대_ 놀이전문가
  • 승인 2005.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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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이여, ‘만능맨’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자

얼마 전 필자가 일하는 체험학교에 모 사회단체에서 주최한 ‘아빠랑 캠프’가 진행되었다.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는 아빠와 아이가 프로그램 속에서 함께 움직였지만 정작 아빠와 아이만의 시간이 허락되는 시간에는 아이는 아이대로 놀고, 아빠는 아빠대로 나무 그늘에 쉬고 있었다.


자녀들에 대한 긴장은 놓을 수 없기에 아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멀리 가지 마라’, ‘위험하다’라며 입으로 안전을 경고하는 정도이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캠프장에서의 모습이 이러할진대 가정에서의 모습이야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가족들과 잘 놀고 싶지만 잘 놀지 못하는 아빠들의 고민, 아이들의 아빠로서 아니면 가장으로서 ‘잘해야 한다’는 아빠들이 ‘만능맨’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자책하며 이 고민을 ‘뚝딱’ 해결해 줄 ‘도깨비 방망이’를 찾아 헤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고민의 실천으로 주말이 되면 ‘놀이공원’, ‘가족체험’, ‘가족캠프’ 등에 참여하여 가족 앨범 속에 추억으로 끼워두기는 하지만 이런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을 계속 지출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고생을 감수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족의 여가문화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뭔가 알맹이가 빠진 허전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어디에 가면’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녀를 둔 어른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어디에 가면 재미있을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라는 고민이다. 먼저, 한참 놀기를 좋아하는 자녀를 둔 30~40대 아빠들이 가족놀이문화를 주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기보단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답이 될 수 없는 2가지의 변명이 있다.
첫째, 우리는 아버지로부터 ‘가족놀이’를 전혀 학습 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아빠 같이 놀아 주세요’라는 말을 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설사 용기를 내어 말을 했다고 치자. ‘야 이놈아 공부나 해라’며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 당시 아버지는 감히 함께 자리할 수 없는 근엄한 ‘절대자’셨다.


둘째, 우리는 우리끼리 잘 놀았다는 사실이다. 걸음마를 시작하여 골목길이나 동네 공터에 첫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놀이세계의 ‘구경꾼’이 되어 ‘연습생’ - ‘전투병’ - ‘놀이대장’으로 이어지는 10여 년의 긴 시간을 어른들의 개입과 간섭 없이 잘 놀았다.


눈을 살며시 감고 그 시절로 돌아가 보면 ‘술래잡기’, ‘진놀이’, ‘비석치기’, ‘8자놀이’, ‘자치기’, ‘딱지치기’ 등 수백 가지의 놀이들이 솔솔 되살아나고 같이 놀았던 친구들의 재잘거림이 귓가에 들려온다.

 

가족만의 놀이문화를 만들자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못 노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요즘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잘 논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이들끼리 만의 시간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학교’나 ‘학원’과 같이 관리의 기능을 벗어난 아이들만의 세계를 사회의 여러 위협적 요소로 인해 허용해 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의 ‘놀이세계’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고 그 빈 공간과 부담을 가정이 떠안게 되었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에서 보호하고 가능한 가정 안에 ‘놀이배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컴퓨터’라는 친구를 만들어 주었지만 이제는 컴퓨터라는 내부의 더 큰 위협 속에 아이들이 노출되고 말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의 놀이세계를 회복시켜주는 것이지만 그것은 사회적 공론과 합의를 통한 합리적인 시스템이 나오기 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므로 먼저 가족 단위 내에서의 시도를 우리 스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시대적 대세이다.


위에서처럼 시대적 요구에 떠밀릴 것 없이 ‘즐거운 가족놀이문화를 만들어 보자’라는 적극적인 생각이면 더 좋겠다.

구체적 시도에 앞서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1. 지나친 목표와 기대감을 가지지 않는다.
2. 가족 모두의 과제로 공론화 한다.
3.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리드를 하지 않는다.
4. ‘규칙’을 정한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올해를 시작하면서 가족회의를 통해서 서로에게 원하는 것과 지켜야 할 것, 그리고 벌칙을 정했다.


이 지면을 빌어 필자에게 해당되는 것을 소개하면 9살 된 아들과 5살 된 딸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많이 놀아 달라는 것이었고, 특히 지켜야 할 것은 집에서 방귀를 함부로 뀌지 말라는 것이었다. 규칙을 어기면 벽에 5분간 붙어있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방귀를 뀌다가 아이들에게 적발되어 벽에 붙어 벌을 받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끝으로 어제 인터넷으로 본 이현세의 ‘동녘하늘은 밝았는가’ 만화 첫 장에 이런 글이 적혀있어 옮겨본다.


「언젠가 날기를 배우려는 자는 우선 서고 걷고 달리고 오르고 춤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곧바로 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