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설 자리’ 만들면 ‘좋은 일자리’ 생긴다
산업 ‘설 자리’ 만들면 ‘좋은 일자리’ 생긴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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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

그간 꾸준히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을 통한 총체적 유연성의 확보, 이를 기반으로 한 제3의 길을 주창해 온 김영호 교수(경북대 경제통상학부)는 현재의 한국경제 상황을 ‘태풍이 불어오고 있는데 보지 못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또한 산업의 ‘설 자리’를 찾지 못하면 위기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교수는 특히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사회협약과 중국의 활용이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호 교수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으로 현재 뉴패러다임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멀리 못 보거나 큰 꿈이 없거나

 

현재의 경제상황을 놓고 일부에서는 위기를 정부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하고, 또 정부에서는 일부 세력이 위기를 지나치게 부추기고 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


▷“어디까지를 보고 걱정하느냐에 따라서 위기라고 보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 보기도 한다. ‘당장 한국에는 태풍이 불어오지 않지 않느냐’ 하면 위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저 아래 오키나와에 태풍이 왔다’는 점을 들어 위험하다고 말한다.

 

 ‘불어와 봤자 한국의 빌딩이 날아가겠느냐, 좀 타격이 있는 정도지’ 이렇게 생각하면 위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빌딩이 날아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빌딩을 새로 짓지 못한다는 것이 위기다.

위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둘 중 하나다. 멀리 못 보거나 아니면 한국경제에 대한 큰 꿈이 없거나.”

 

 

그렇다면 지금 한국경제는 태풍영향권에 들어왔다는 뜻인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가까이 왔는데도 안 보인다. 특히 중국이 그렇다. 한국에 중국이라고 하는 큰 호랑이가 나타났다. 잘하면 올라타고 잘못하면 잡아먹힌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호랑이를 올라탈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일본은 호랑이를 올라탈 체제를 이미 갖췄다. 우리가 호랑이를 올라타면 천리를 갈 수 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위기상황이 있지만 그 중 중국이라는 큰 호랑이를 올라타느냐 못 타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중국을 단순한 생산기지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기업가들과 함께 중국 금형단지를 둘러봤다. 지금은 중국보다 한국이 3~4년 정도 기술이 앞선다. 그렇다고 3~4년 여유가 있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보다 3~4년 앞선 일본이나 유럽이 중국과 손을 잡으면 한국은 낄 자리가 없다. 이미 몇몇 산업을 제외하고는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다.


한국의 기업이 중국으로 옮기다 보니까 설비가 간다. 그게 수출로 계산된다. 또 3년 간은 한국부품과 소재를 쓰게 하니까 그게 대부분 흑자로 잡힌다. 그게 지금 끝나가고 있다. 중국의 대미수출은 우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


미국의 1/4분기 무역적자가 1600억 달러였다. 그걸 1년 계산하면 6400억이다. 문제는 이 때문에 우리가 못 견딘다는 거다. 무역적자는 곧 재정적자로 연결되고, 두 개의 대적자 앞에서 미국이 어떻게 나오겠나. 개방주의의 이름을 빌린 보호주의, 예를 들면 반덤핑 같은 걸로 간다. 그러면 거기서 제일 박살나는 게 한국일텐데 우리가 어떻게 견디나.

지난번에 한 조찬강연회에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를 했더니 모 경제연구소장이 너무 비관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해서 화를 낸 적이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2~3년 후를 내다보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했는데 그게 비관론이 아니다. 위기론과 비관론을 혼돈하지 말라. 오히려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처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그게 도요타의 위기경영이다. 한국에 위기경영이 정말 필요하다.”

 

지금은 ‘위기경영’필요 동북아 공동발전 모색을

중국을 활용하면서, 또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전략이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순신이 배 12척을 가지고 일본배 120척을 깰 수 있는 전략도 있었는데 왜 방법이 없겠는가. 문제는 정부나 기업이 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문제의식과 각오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예전부터 동북아 협력의 틀로 ‘안중근 플랜’을 제시해 오셨는데요. 그렇다면 ‘안중근 플랜’을 통한 동북아 공동 발전의 길이 대안인가요?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 이후 쓰다가 미완성으로 남은 ‘동양평화론’에서 동북아 공동의 국제적 접근을 중시하고, 공동개발은행, 공동화폐발행,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강조하고 공동안보체제 혹은 국제평화군의 유지와 연결시킨 바 있다.


특정 국가가 중심축이 되는 ‘허브’(Hub)가 아니라 각 국가가 공동 번영을 위한 협력과 교류의 통로로 역할을 맡는 ‘코리도’(Corridor)가 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지나치게 IT에 집중하면서 전통산업의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출판사가 책을 만들어서 소비자가 살 때까지 중간에 서점이 하던 일을 지금은 ‘아마존’이 하고 있다. 따라서 서점에 관계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실업자가 된다.
지금 IT가 하는 역할이 중간배제라고 할 수 있다. 생산의 직접적인 역할보다 중간이 하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용 문제가 생긴다.


IT가 고용을 만드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벤처, 소호, 인터넷닷컴 기업 등이 그렇다. 그런데 고용을 만들어 내는 기능보다는 없애 버리는, 대체해 버리는 측면이 크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IT가 발전하면 고용을 만들어 내는 기능이 커진다. 지금까지 상상을 못했던 직업, 일자리가 생긴다. 그게 본격화되는 시기가 언제냐의 문제이다.”

 

노사정 대타협 통한 사회 협약 필요

최근에는 노사갈등이 사회갈등으로 확산되면서 심각한 문제로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일전에 노대통령이 안을 하나 달라길래 탄핵문제가 끝나자마자 노사정 대타협 사회 협약에 전력을 다해서 그것만은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가 자꾸 기회를 놓치고 있다. 노사정 지도자 대여섯 명이 앉아서 차 마시면 타협이 될 거 같나. 절대 안 된다.

국민적 압력이 필요하다. 또 대타협은 위기 없이는 안 된다. 네덜란드도 경제위기 속에서 대타협 이뤄냈다. 그런데 정부가 위기가 아니라고 하니까 해결책이 없다.
DJ 정부 때도 주5일 근무제, 고용허가제 등 정부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다 주고 노동자로부터 양보받을 건 다 받고 하는 식의 노사정 대타협의 계기로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여러 번 강조했는데 그게 안 됐다. 현정부도 결국 못 만들어 내지 않나.”

 

일자리 창출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일자리 창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일자리 창출이 아니고 한국산업의 ‘설 자리’ 창출, 설 자리 만들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이 설 자리를 만들어 나가면 그에 따라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