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되어버린 전화상담원
박제가 되어버린 전화상담원
  • 김관모 기자
  • 승인 2010.05.0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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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과 왜곡된 사회시선에 지친 콜센터 직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성과 발전 가능성”

콜센터 상담원은 회사와 고객을 직접적으로 이어주는 소통창구다. 이들은 하루에도 수천 통의 불만사항 혹은 문의사항을 체크하고 이를 해결해 준다. 그리고 회사는 이들이 모은 자료를 통해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다.

그런데 이 상담원들이 감정노동과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지쳐있다. 정작 자신의 불만은 해소할 공간조차 없고, 같은 회사 안에서조차 차별받거나 무시당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도 쉽지 않다. 직원의 대부분이 여성이며 그나마 계약직이거나 파견직이기 때문이다.

전화업무가 간단하다고?

A사 인바운드 콜센터(외부 고객으로부터 불만이나 문의를 받고 상담을 해주는 업무) 직원들은 3년 전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 당시 월급이 크게 50만 원까지 오르면서 당시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들어올 때부터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월급이 적다는 것을 감안하고 들어오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는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한 회사 안에서도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보는 잘 공개가 되지 않거든요. 업무 강도에 비해 월급을 이렇게 적게 받고 있다는 점을 이때 처음 알았어요.”

A사 콜센터 직원의 일상 업무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로 언뜻 보기에는 다른 사무직원들에 비해 일찍 퇴근하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업무강도나 포괄하는 업무범위는 다른 일반직원보다 넓다고 볼 수 있다.

콜센터 직원들의 하루는 8시 20분에 시작된다. 이들은 정식 업무시간 9시 전까지 변경된 업무나 팀 내 전달사항을 확인하고 명상체조를 하며 일과의 시작을 준비한다. 업무시간동안 하는 일은 당연히 전화 상담이 기본. 일인당 하루 평균 140콜이 보통이며 평균 통화시간은 2분 20초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업무형태로 봤을 때 이야기다. 주말동안 처리하지 못한 일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는 월요일이나 매달 결산을 하려는 고객이 몰리는 말일이면 최대 200콜 이상을 받아야 하며, 5분 이상의 통화도 늘어난다고 한다. 또한 중간에 전화량이 많아 미쳐 전화통화가 되지 못한 고객을 위해 센터에서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예약콜이라는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어 이 작업까지 마치고 나면 오후 7시를 넘기 일쑤다.

게다가 새로운 상품이나 온라인 및 스마트폰을 통한 서비스 변경에 관한 내용 등 회사 전반적인 업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매달 테마교육을 받고 있다. 이런 날에는 오후 8시를 넘기기도 한다. 콜센터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B씨는 “따로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하며 매일 처리해야 하는 업무도 많고 책임비중도 높다”며 “이 때문에 턱관절이나 후두염 같은 직업병도 자주 발생할 만큼 업무강도가 심하다”고 말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무엇보다 콜센터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전화 상담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다. 전화의 대부분이 불만 사항 접수다보니 콜센터 직원을 향한 폭언이나 횡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직원의 사소한 실수에 “집으로 찾아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고객도 있고, 목소리나 억양만으로도 꼬투리를 잡으면서 상담원의 태도나 교육문제를 들먹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솔직히 회사에 대한 불만 때문에 욕을 하는 것이지만 저한테 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많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요. 하루에 5, 6콜 정도가 들어오는 데 운이 안 좋아서 10콜 정도 그런 전화가 들어오면 그날은 일 전체를 망치게 되죠.”

부당한 요구를 하는 고객도 많다. B씨는 “회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며 자신의 건의사항을 회사에 이야기하고 그 증거를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고객도 있다”며 “이를 하지 않을 경우 민원실이나 센터장에게 직접 전화해 상담 직원을 문제 삼아 항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소한 대거리를 이유로 피해보상을 운운하는 블랙슈머(Black Summer 악질 민원제기 소비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처음 콜센터가 생기던 시절에는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어요. 상담원이 실수를 해도 사과하면 오히려 괜찮다고 하고 고객들도 친절했어요. 그런데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상담원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꼬투리가 잡히면 물고 늘어지면서 상급자 바꾸라고 하면서 보상을 받아내려는 사람들도 많이 늘고 있어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강도도 심해지고 있죠.”

그렇다고 고객과 함부로 대거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회사에서 상시 상담내용과 민원 유무를 확인하고 업무평가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노동이 심해질수록 콜센터 직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해지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대인기피증마저 보이는 정도라고 한다. B씨는 “회사 내 고충처리반이 있기는 하지만 직원들이 실제 찾아갈 여건은 아니다”라며 “편하게 정신 상담을 담당하는 시설을 갖춰줬으면 하는 직원들도 많다”고 말했다.

가족도 제가 전화상담원인 거 몰라요

또 하나 콜센터 직원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다. 콜센터 업무를 전화 응대와 같은 단순 업무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시스템의 전반적인 과정을 아우르는 직업이 콜센터죠. 그런데 회사 내에서도 전화상담원을 마치 자신보다 낮은 직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아요. 사회적으로도 전화상담원이라고 하면 마치 못 배운 여성들이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 콜센터 같은 경우는 전부 대졸이거든요.”

콜센터의 전화상담원도 전문지식과 경력이 중요한 직종이다. 하지만 전화상담원이라는 일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다른 직업을 구하고자 할 때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직원들 중에는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콜센터 직원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이들도 있다.

“저도 처음 들어올 때는 잠깐 돈 벌다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와서 힘들게 일하고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하다 보니 ‘이렇게 공부하면 진작 서울대는 문제 없었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해요. 결코 쉬운 직종도 아니고 만만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전화상담원에 대한 편견으로 상담원 스스로도 이 일에 회의를 느끼는 경향이 큰 것 같아요.”

업무 만족도는 낮고 비전 키울 기회도 없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직을 생각하는 직원들도 많다. 전화상담 일을 오래 한다고 해서 큰 경력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규직이라고 하지만 막상 콜센터 직원 외에 다른 직무로 옮길 수 있는 기회도 좁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고 사람과 직접 대하는 일인 만큼 일처리능력이나 순발력도 빨라야 하기 때문에 평생직장으로 삼기도 힘들다. 따라서 B씨도 “이 일을 40세 넘어서까지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며 “기회가 된다면 다른 일을 준비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A사 콜센터 직원들의 실제 이직률은 낮다.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면서 다른 콜센터에 비해 임금이나 복리후생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화상담 경력은 전화 상담업계에서만 인정되기 때문에 지금 있는 콜센터를 나가도 결국 다른 회사의 콜센터로 들어가기 일쑤다. 비정규직 콜센터 직원들 같은 경우는 더 심해서 계약기간이나 대행업체의 사정으로 2,3년을 주기로 이직을 하는 일이 빈번하다.

“콜센터 업무를 ‘수렁 같다’고 해요. 다른 업무를 찾으려고 전화업무 경력이 전부이고 다른 기술이 없다보니 경리로 들어가기도 힘들어요. 게다가 저처럼 8년 이상 일해서 이미 나이가 차버린 여성직원들은 다른 일을 찾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있죠.”

B씨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전화상담원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서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지 콜센터 직원의 어려움을 단순한 감정노동이나 차별로만 접근하지 말고 자신들의 일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다른 미디어에서 콜센터 이야기를 다룰 때 비정규직이나 감정노동 차원에서만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직업 안정성이나 복리혜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직원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 지 아는 거예요. 하지만 회사에서 그런 것을 해주는 것은 부족하잖아요. 물론 직원들도 스스로 노력하지 못하는 면도 있지만 사회에서든 회사내부에서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만 열어준다면 자기 일에 대한 괴리감도 줄어들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