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노동자의 가슴에 다시 태어나다
전태일, 노동자의 가슴에 다시 태어나다
  • 안형진 기자
  • 승인 2010.05.0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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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지부, 전태일재단에 업무용 승합차 기증
이소선 어머니 “조합원 하나 돼 40주기 기념해줘 고맙다”
현장_ 현대차지부, 전태일 재단 차량 기증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전태일’이라는 세 글자 이름은 이 땅의 노동운동가들에게는 ‘첫사랑’과 같다. 1970년 스물 두 살의 청년은 노동운동의 존재 이유를 온 몸으로 설명했고, 그를 사랑하게 된 많은 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전태일이 마저 이루지 못한 일들은 남은 이들의 ‘숙명적 과제’가 됐다.

그렇게 강산이 4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노동운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지만 첫사랑이 기억 속에 박제되듯 사람들은 조금씩 전태일을 잊어갔다.

그런데 지난 4월 27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지부장 이경훈, 이하 현대차지부) 조합원들의 가슴 속에 잊혀졌던 ‘첫사랑’ 전태일의 이름이 되살아났다. 그날은 현대차지부가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기념해 전태일재단에 업무용 승합차를 기증한 날이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두 사람의 뜨거운 포옹
 

승합차 전달식이 있기 전날 짧은 낮잠을 자고 일어난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어둑해지는 하늘을 밝아오는 새벽하늘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전태일재단의 오도엽 기획실장이 저녁 문안차 들렀을 때 어머니는 이미 울산에 가는 길에 입을 옷을 걸어놓고 머리를 감은 뒤 정갈하게 빗고 있었다.

오도엽 실장이 “어머니, 차 기증식은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에요. 내일 새벽에 일찍 나서야 하니 오늘 저녁은 일찍 주무세요”라고 일렀지만 어머니는 한 번 깬 잠을 쉽게 다시 이루지 못했다. 결국 전태일평전을 다시 읽으며 꼬박 밤을 세우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울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시각, 이경훈 지부장도 서울에 있었다. 자정에야 끝난 금속노조 중앙쟁의대책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차량 전달식을 위해서 첫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그 또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다시 울산으로 돌아왔다.

전달식을 앞둔 현대차지부의 분위기는 한껏 들떴다. 지부 사무실에 모여 있던 집행 간부들의 얼굴은 마치 첫사랑을 만나는 사람들처럼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공항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걸려오자 그들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지부 사무실 앞에 2열로 도열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현대차지부 김수식 영상1부장은 그들의 소중한 선물인 승합차를 닦기에 바빴다. 갓 출고된 새 차가 더러워질리 만무하건만 그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채운 채 닦고 또 닦았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도열한 현대차지부 간부들은 어머니를 모시러 간 차량과 비슷한 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금방 술렁거렸다.

어머니를 태운 차가 나타나자 도열한 간부들은 일제히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차에서 내린 어머니는 제일 먼저 이경훈 지부장을 안았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똑같이 밤을 세운 두 사람은 이전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서로를 뜨겁게 안아주었다. 

 

전태일재단에 승합차가 생기게 된 과정은?
 
<참여와혁신>은 지난해 연말,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맞이해 신년특집으로 이소선 어머니의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 때 <참여와혁신>은 ‘재단 상근자들이 타고 다닐 중고 승합차를 알아봐 달라’고 하는 어머니의 통화내용을 우연히 듣게 됐다.

동행했던 기자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모두가 당연히 ‘차 한 대 정도는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동안 어머님은 택시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노동현장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마침 그 즈음 <참여와혁신>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이경훈 지부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참여와혁신>이 사정을 전하자 이경훈 지부장은 “그동안 말로는 전태일 열사 정신을 따르겠다고 외치면서 어머님께는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며 “어떻게든 차량이 지원될 수 있도록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화답했다. 4월 27일은 이 일련의 이야기들이 빛을 보게 된 날이었다. 2500만원 상당의 승합차 스타렉스를 전태일재단에 기증한 것이다.

이경훈 지부장은 당초 “3개월 정도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같은 차를 기증하더라도 노동조합의 중지를 모아 노동조합의 예산으로 기증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차를 구입하기까지 부족한 예산은 지부장 이하 임원들의 십시일반으로 채워졌다. 현대차지부 판매위원회는 최상의 차량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정비위원회는 상시적인 정비를 약속했다.

이렇게 전태일 재단은 40주기 행사 진행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닐 재단 식구들을 위한 ‘발’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가슴 속에 다시 태어난 ‘전태일’

기증식이 진행되는 동안 어머니는 이경훈 지부장의 손을 꼭 붙들고 거듭해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 밤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도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란다.

“차 줬다고 고맙다 하기 전에 차보다 마음이 더 고맙습니다. 그래도 40주기라고 조합원이 하나 돼서… 제일 먼저 현대차노조가 태일이 40주기 테이프 끊어줘서. 조합원 한사람이라도 반대했으면 이리 못했을 텐데 하나 되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우리 태일이가 지하에서 얼마나 기뻐할까.”

어머니가 너무 고맙고 감사했던 것은 현대차지부가 차를 기증한 사실이 아니었다. 조합원 모두가 뜻을 모아 하나가 되어 준 것, 그것이 감사했고, 그것이 자신의 아들이 가장 기뻐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어머니가 지난 밤 잠을 이루지 못했던 진짜 이유였다.

기증식이 끝난 뒤 현대차지부는 어머니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어머니는 밥상 위에 놓인 여러 반찬들에 눈길을 자주 보내지 않았다. 다만 식당에 미역국을 하나 따로 부탁하더니 밥 한 공기를 말아 그릇을 몽땅 비웠다.

이를 본 오도엽 실장이 “어머니, 오늘 웬 일로 밥 한 공기를 다 드셨어?”라고 말을 붙이자 어머니는 빙긋 웃으며 비워진 그릇을 자랑스럽게 오도엽 실장 앞에 내놓는다. 오도엽 실장은 “오늘 어머니 기분이 정말 좋으신 것 같다”고 말하더니 “오늘은 저러셔도 내일은 피곤에 지쳐 쓰러지시는 것 아니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현대차지부 집행 간부 중 한 사람은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알고만 있었던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그대로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고 밝혔다. 그 날은 그렇게 현대차지부의 가슴 속에 ‘전태일 열사’가 다시 태어나는 날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특별히 ‘미역국’을 부탁했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어머니의 선물보따리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머니가 서울에서 준비해 이경훈 지부장에게 전한 ‘선물 보따리’ 이야기가 나왔다. 전태일재단 박계현 사무총장이 ‘보따리 안에 든 것이 뭐냐’며 열어보려 했지만 어머니는 보따리를 품에 안고는 절대 보여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 왜 그걸 굳이 네가 열어보려고 그러나?” 어머니는 말끝을 흐렸다.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어머니는 이날 재단에 전달된 차에 올랐다. 차에 오르기 전까지 어머니는 거듭해서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머니를 보낸 뒤 이경훈 지부장은 노조 사무실로 돌아와 어머니의 ‘보따리 선물’을 열었다. 어머니의 선물은 노란색 보자기로 단단히 묶인 채 옷핀으로 고정돼 있었다. 옷핀을 풀어내고 단단히 말린 보자기를 풀자 또 한 겹 헝겊주머니가 나온다. 화려하지 않은 ‘어머니 식’ 보따리 포장에는 정성이 묻어 있었다. 두 번째 헝겊 주머니를 풀어낸 이경훈 지부장은 내용물을 본 뒤 잠시 멈칫했다. 그는 “정말 귀한 것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뒤 내용물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꺼냈다.

어머님의 선물은 책 보따리였다. 자신의 이야기가 쓰인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오도엽 기획실장이 밤새워 비워내도 비워지지 않던 자신의 이야기를 옮겨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재단에서 펴낸 듯 보이는 몇 권의 간행물들이 나왔다. 이경훈 지부장은 그 책들을 소중히 꺼내 자신의 사무실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그리고 그가 주머니에서 마지막으로 꺼낸 책은 다름 아닌 ‘전태일 평전’이었다. 어머니 선물 속 전태일 평전은 근래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예쁘게’ 제본된 것이 아니었다. 별다른 무늬도 없는 하얀 표지로 제본된 책장 하나하나에는 누런 세월의 빛이 묻어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살고 있는 그 작은 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지난 밤 잠을 이루지 못하며 읽어내셨던 바로 그 전태일 평전이었으리라.

이 소중한 선물이 어째서 부끄러웠는지, 어머니는 보따리를 풀어 보여달라는 박계현 총장의 채근에도 자신의 선물을 품에 꼬옥 안은 채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고맙다’고 말했고, 이경훈 지부장은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쉼 없이 ‘전태일 정신’을 외쳤지만 정작 여든이 넘은 어머니가 택시를 이용해 노동현장을 돌아보고 있는 현실은 보지 못했다.

이제 어머니에게 새로운 발이 생겼다. 어머니는 이제 택시를 잡기 위해 재단 사무실에서 동대문 큰 길까지 먼 길을 지팡이를 짚고 걷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새로운 ‘발’을 제공한 현대차지부의 가슴 속에는 전태일이 다시 태어났다.

전태일재단은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 와중에 여러 사정으로 인해 노동계의 실질적 참여가 아직까지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전태일재단의 박계현 사무총장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심어줄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찾아가는 40주기 행사를 기획 중”이라고 말한다. 올해는 ‘전태일 정신’을 구호로만 외치는 노동계가 아니라 함께 ‘전태일 정신’을 더욱 널리 알려내는데 노동계가 큰 힘을 냈으면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슴 속에 자고 있던 첫사랑 ‘전태일’의 이름이 다시 깨어난다면 더욱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조에서 마련한 승합차를 전달하고 어머니를 서울로 올려 보낸 이경훈 지부장은 오히려 어머니께 더 많은 것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그는 어머니가 전해준 선물을 탁자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음은 이경훈 지부장과의 일문일답.

Q1 어머님을 모시고 뜻 깊은 행사를 가졌는데, 소감은 어떤가?

<참여와혁신>이 전태일재단에 자동차를 기증하는 일을 제안했을 때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요즘 차가 없는 단체가 어디 있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 없었다면 현재의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숭고한 정신이 퇴색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 전태일 열사의 가장 소중한 가르침을 현장의 우리들이 지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어머님을 뵙는 것은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물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그마한 선물을 전할 수 있어 기뻤다.

그 흔한 자동차 한 대 없이 고령의 어머니가 고생하신 것을 노동계 그 누구도 돌보지 못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외치며 정치에 입문하신 분들도 있는데 세상이 너무 각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노총, 민주노총 할 것 없이 노동자가 모두 단결하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싶다. 오늘 어머니를 만난 일은 내 생애 두고두고 가슴깊이 간직할 것이다.

Q2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맞이해 노동계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아까도 강조했듯 무엇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장에서도 가장 유효한 것이 바로 전태일 정신과 같은 노동운동의 초심이다. 오늘 아침 조합원 교육을 실시하면서 조합원들에게 박수를 세 번 받았다. 나는 우리의 조합비로 전태일재단에 차를 기증했고, 이를 위해 어머님이 지부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자신에게 이로운 노동운동을 하고 노동운동 했다고 뱃지 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수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모두 전태일 정신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모두 어디 있나?

전태일재단이 전태일 열사 40주기 기념사업을 양 노총에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시점이 계기가 돼서 뜻이 맞는 사업장들이 함께 모여 재단에 어려운 재정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나 역시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자 한다. <참여와혁신>에서도 좋은 제안을 많이 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