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사회성 점수는 몇 점?
우리 아이 사회성 점수는 몇 점?
  • 조진표
  • 승인 2010.05.0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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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의 불행, 강남 키즈
돈과 일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가르쳐야
조진표 와이즈멘토 대표이사
교육컨설팅 관련 강연과 방송
진행일간지 교육칼럼 기고

한국에서 손꼽히는 고급 아파트 단지의 대명사로 꼽히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들어선지 30년이 넘어섰다. 그 사이 이 지역의 교육과 문화에도 커다란 변화들이 소용돌이 쳤다. 80년대 후반~90년대에 해외로 조기유학을 떠났던 ‘압구정 키드’들이 모여들면서 이곳은 젊은이들이 소비를 만끽하는 욕망의 해방구가 됐으며, 명품 거리의 시초인 로데오 거리가 형성되고 이른바 ‘오렌지족’이라는 유행어를 남기기도 했다. 이제는 압구정동은 ‘성형외과’의 거리로 탈바꿈했고, 명품 거리는 청담동으로, 학원가는 대치동으로 이동했지만 말이다.

오렌지족, 사회인이 되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압구정동과 청담동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 그 아이들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데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압구정 세대’라는 말로 대변되는 원조 강남아이들의 사회생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증언들이 적지 않다. 자란 환경과 실제 사회와의 차이가 현격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전폭적인 관심과 물질적 뒷받침 아래 어려움 없이 자란 아이들. 대학 때 이미 풍족한 용돈을 받으며 청담동 카페에서 1만 5천 원짜리 치즈케이크에 9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놀던 아이들. 아빠의 도움으로 소형차라도 몰고 다니며 대학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드디어 사회에 나간 것이다. 제 아무리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해도 대기업에 취직하면 연봉 2천만~3천만 원 초반대의 급여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각종 세금에 4대 보험을 떼고 나면 한 달에 2백여 만 원의 돈을 손에 쥐게 된다. 압구정 세대 아이들에게는 한 달을 살아가기에 빠듯한 돈이다. 그 돈으로 주택청약저축을 들거나 장기적인 재정플랜을 세울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이 월급을 그냥 용돈으로 써버린다. 어차피 본인들이 취업 전에 사용하던 돈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생활에 만족할 리가 없다.

학업성취 능력과 사회성은 별개의 문제

이때부터 ‘샐러던트’의 생활이 시작된다. 샐러던트는 샐러리맨(회사원)과 스튜던트(학생)의 합성어이다. 뭔가 현실에 대한 불만이 큰 상태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부모로부터 많은 것이 지원되던 것에 대한 향수가 크기 때문에 직장의 하루 일과가 끝나면 ‘MBA준비다, 전문대학원 준비다, 고시준비다’ 하여 학원으로 몰려드는 현상을 말한다. 물론,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 속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 열심히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샐러던트도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는 압구정 세대와는 그 취지가 다르다.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공부가 압구정 세대의 목적이라면 다른 하나는 현실에 충실하기 위한 공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명문대 출신이면서 압구정 세대일 경우 사회생활에 대한 불만족의 정도가 더 크다.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것은 학업성취능력을 뜻하는 것이지 사회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입사를 하였으나 회사 내에서의 평가와 대우는 대학을 다닐 때까지의 평가와 다를 수 있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공부까지 잘했으니 많은 사랑과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자라왔는데 막상 사회에 나가서 현실과 부딪혀보니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때 현실로부터 떠나고 싶은 생각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 ‘과거 공부 잘한 것’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에 한 번 더 참아보지 않고 쉽게 떠날 결정을 내린다. 이때부터 새로운 방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는 거의 30세의 나이임에도 스스로 경제적인 독립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다시 학생시절로 회귀하려 한다. 이 와중에도 결혼은 해야 하고, 모든 비용은 또 고스란히 부모가 떠안는다. 압구정 세대 아이들은 속된 말로 ‘폼’나는 것을 굉장히 중시한다. 그래서 자립 못한 결혼하는 자녀를 위해 서울 외곽 쪽에 집이라도 얻어 준다고 하면 강남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오히려 불만을 표시하는 자녀들이 많다. 강남 아니면 ‘폼’이 안 난다면서 말이다. 다행히 부모가 아주 돈이 많아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적 상류층이라고 구분되는 사람 중에서도 다 큰 자녀의 가족까지 호사스러운 생활을 시켜줄 만한 여력을 가진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설령 그러한 여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자칫 잘못하면 부모의 자산에 기대어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만드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되기 쉽다.

돈과 일의 가치 함께 알려줘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어린 나이부터 경제관념을 확립해 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생각하는 '돈'에 대한 개념은 전혀 자율적이고 못하고 부모에게 완전히 의존적이니 이를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녀가 “돈 많이 버는 일 하고 싶어요” 라고 한다면 우선 돈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임금이 높다는 직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과연 자녀의 적성에 어울릴 수 있는 일이 있는지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그래야 그저 일확천금을 바라며 배금주의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독립에 대한 진지한 계획 없이 그저 막연히 마음 가는 대로 지내다가 부모의 재산을 야금야금 축내며 온통 겉치레에만 신경을 쓰는 실속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아이가 태어나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공적인 진입을 할 때까지 준비를 시키는 과정이다. 아이의 타고난 그릇을 파악하고, 그 그릇이 진열되었을 때 잘 어울릴 찬장을 찾아주는 것이 교육이다. 화려하지 않은 그릇일지라도 고풍스런 찬장을 만나 멋지게 진열될 수 있음에도 큰 그릇에 분에 넘치는 비싼 찬장만을 고집한 우리 교육의 결과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성공적으로 진입함으로써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 자립을 스스로 해 나갈 수 있도록 장기적인 목표설정과 그에 따른 진로지도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