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뒷모습'
그의 '뒷모습'
  • 봉재석 기자
  • 승인 2010.05.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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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위원장의 쓸쓸한 뒷모습에 담긴 아련함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대부분 ‘뒷모습’을 제목으로 한 유행가의 가사가 그렇듯이 ‘뒷모습’은 ‘쓸쓸함’, ‘고독’ 혹은 ‘이별’ 등의 단어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낱말 중 하나이다. 퇴근길 아버지의 노을 진 뒷모습, 방과 후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진 학생의 뒷모습, 이별한 이의 뒷모습이 바로 그렇다.  

기억하는가? 지난 달 <참여와혁신> 4월호의 표지를. 혹자는 그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얼른 달려가 큰 팔로 뒤에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단다. 이렇듯 누구나의 ‘뒷모습’에는 쓸쓸함이 남아있다.

현재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는 ‘타임오프’이다. 지난달 30일까지였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이하 근심위)의 의결이 법정 시한을 넘긴 5월 1일에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물리적 힘을 가해 처리했기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노동계의 주장과 ‘그렇지 않다’라는 정반대인 공익위원들의 주장이 상충되면서 ‘날치기 처리’, ‘노동절 새벽의 폭거’, ‘막장 드라마’ 등의 표현이 오가며 근심위 의결 논란이 매우 뜨겁다.

이로 인해 현재 가장 큰 소란을 겪고 있는 곳은 한국노총일 것이다. 최근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근심위 의결을 막지 못한 지도부의 책임 추궁과 함께 무용지물인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선언하고 나선 연맹 산하 조직들이 나타나고 있다. 마치 작년 말 노조법 처리 사태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는 듯하다.

이번 근심위에서 의결된 타임오프가 실시될 경우 한국노총 산하 조직 중 타격이 가장 크다는 금융노조는 지난 3일에 한국노총을 항의방문 해 근심위 의결을 규탄하며 회의실 점거에 나서며 이튿날까지 노숙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4일에는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을 포함한 노총 지도부와 금융노조와의 간담회가 있었다. 당시 분노에 찬 금융노조 조합원들은 울분을 터트리며 거세게 항의했고, 지도부 사퇴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재차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노총 지도부와 금융노조 간의 여러 차례 실랑이가 벌어지고 쉽지 않은 상황들이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장 위원장의 사퇴 여부가 여러 번 거론되기도 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결국 현 상태를 유지한 채 총력투쟁에 나서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당시 현장에서 뷰파인더를 통해 시작부터 끝까지 지켜본 본 기자는 누구의 말이 맞는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 인간된 개개인들의 모습 속에서 심정적 이해를 느꼈다. 저마다의 이유로 인해 모두에게 절박한 문제였기에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부담을 안고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일 것이다. 간담회를 하는 동안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무겁게 한두 마디씩만 내뱉는, 아니 내뱉을 수밖에 없는 모습 속에서 그의 깊은 고뇌가 그대로 드러났다. 간담회를 마치고 일어나 혼자서 위원장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 속에서는 그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상당함을 느꼈다. 축 쳐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  

▲ 크기만 하던 평소 그의 모습과는 달리 혼자 걷던 그의 뒷모습에서 그 어느 때보다 쓸쓸하고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이 비춰진다. 이 사진을 찍던 당시 그는 문이 살짝 열린 것을 알고는 뒤를 돌아보곤 멋쩍은 미소를 힘없이 보이며 문을 좀 닫아 달라고 양해를 구하며 다시 돌아섰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무엇이 그를 그렇게 붙들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시기에 훌훌 털어버린다면 오히려 더 홀가분할 텐데 말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는 차치하고 한 인간으로서 접근했을 때 돌아선 장 위원장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서두에서 표지를 보고 느꼈다는 누군가의 그 마음이 내게도 들었다. 아마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얘기가 나와서 말이니 지난 1일 민주노총 노동절범국민대회에서 오래간만에 봤던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떠오른다. 지난 해 민주노총이 정부로부터 받은 극심한 압박과 탄압으로 인해 진퇴양난에 빠져있을 때 임 전 위원장 역시 그 자리가 극심한 부담이고 압력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임 전 위원장은 그러한 심정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러 차례 나타낸 적이 있다.

그리고는 지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당시 ‘통합 후보’로 추대를 받았던 그가 돌연 후보 사퇴 후 잠적했다. 그리고 근 5개월 만인 지금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래간만이었기에 그의 등장이 개인적으로 반갑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전의 모습과 달리 한층 밝아진 모습에 더욱 반가웠다.

다시 한 번 되물어본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붙들고 있는가? 더군다나 온갖 모욕과 수치까지 당하면서도 참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력? 자존심? 주변의 시선? 대의명분? 이런 것도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말 못할 개인적 사정? 이 질문은 특정 인물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지금은 단지 우리에겐 그만한 환경과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에 잠시 피해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풀어야할 숙제다.

이 글을 보는 내내 어느 한 곳에도 동의하지 못하고 분노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글은 한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시 현장에서 본 느낌을 기술한 것뿐이다. 오해 없으시길……. 

 

    봉재석의 포토로그  못 다한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