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실용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북아트
예술과 실용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북아트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0.07.0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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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등장하는 북아트 작업실…실용에만 착목
젊은 북아티스트들의 예술적 활동 더욱 확장돼야
[젊은리더] 북아티스트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북아트(Book Art)? 책 예술? 도대체 이것이 뭐하는 ‘예술’인지 생소한 독자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언뜻 봐서는 책을 갖고 뭘 하는 것 같은데… 맞다. 책을 갖고 뭘 하는 것이 바로 북아트다. 더 정확한 정의로는 문학과 미술의 결합이라고 해야겠다. 과거 북아트는 책의 내용을 미술가들이 삽화나 그림으로 옮긴 것을 말했다고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고등학교 축제 주요 레퍼터리 중 하나인 시화전이 우리는 잘 몰랐지만 바로 한국 북아트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놀랍지 않은가?

현재 한국에서 북아트는 책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을 작가의 개성에 따라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창의력을 길러주는 어린이 미술교육의 일환으로 일종의 붐이 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겉표지를 예쁘게 하면 북아트?

이렇듯 북아트의 경계는 계속 모호해지고 있다. 실제 60, 70년대부터 북아티스트들이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미국이나 중세 예술제본에서부터 시작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에서도 북아트의 정확한 개념과 범주가 학술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매체와 아이디어의 도입으로 북아트의 외연은 점점 확장되어왔다. 상상력의 날개를 단 북아트는 순수예술과 실용예술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고 있다.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북아티스트 오혜진은 지난 전시에서 선보인 “설치나 퍼포먼스 작업을 이용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사운드를 가미한 종합예술적인 작품을 구상해 본다든지, 작가의 아이디어에 따라 북아트가 선보일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순수예술적인 요소와 실용예술적인 요소가 고루 중시되는 것이 북아트의 주된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가죽이나 천, 종이 등의 재료를 사용해 아름답게 장정한 수첩이나 다이어리, 앨범 등을 만들어보는 북아트 강좌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북아트 관련 재료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도 생겨났으며, 이들 업체에서 직접 공방을 운영하거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강좌를 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손쉽게 재료를 구하고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북아트 작품을 경험해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일각의 우려도 있다.

북아티스트들은 특히 인터넷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통해서 간단한 소품을 제작해 싸게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 자칫하면 퀄리티가 떨어지는 판매 품목들로 인해 북아트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크게 왜곡될 수도 있을 것이라 우려했다. 이들은 “북아트의 참된 본질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 상업성과 대중화에 주안점을 두게 되면 본의 아니게 북아트의 자유로운 본질에 한계선을 긋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아티스트 김문선은 “미디어의 발전으로 무엇이든 일반화되는 경향이 큰 요즘일수록 ‘나만의 것’을 갖고 싶어하는 대중의 욕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평한다. 더욱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종이나 천 등의 수공 재료들이 주는 아날로그적인 느낌은 따뜻한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아티스트 오혜진도 “내 작품의 중심 주제는 ‘기억’에 관한 것”들이라며 “수강생들과 앞으로 만들어볼 작품에 대해서 의논할 때도 본인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담고 싶어 하는 경향이 크다”고 말한다. 값을 지불하면 빠르고 편하게 얼마든지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세상에,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 언제 어디서든 손바닥 안에서 책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세상에 손수 시간과 품을 들여 자르고 꿰매고, 붙이는 작업은 사람들에게 적잖이 위안을 주는 포근한 수고로움일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라는 인식이 중요

정확히 집계된 적은 없지만, 북아트 박람회의 참여자를 볼 때 국내에는 천명이 넘는 전문 북아티스트가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행사가 주로 서울 지역에서 열리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지방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원을 합하면 추산치를 훨씬 웃도는 규모일 것이라고 북아티스트 김문선은 설명한다.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현재 활동 중인 북아티스트들은 개인 작업을 진행하는 것 이외에 일반인들이나 학교 선생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적 차원에서 전문적으로 북아트를 담당하고 있는 북아티스트들과 교육자로서의 북아티스트들 간의 차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콜렉터가 전무하고 아직 북아트 작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미비한 실정에서 작품의 판매로 인한 수입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강의료’가 이들의 주된 수입원인 셈이다. 향후 북아트 작품을 취급하는 ‘시장’과 안정적인 작품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격대’가 형성된다면 순수하게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업 작가들의 수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북아티스트들은 예상했다.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북아트 교육이 유행하면서 전문 지도사의 수요가 늘고 이를 위해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에 이르는 고급 교육과정을 수료하는 일반 성인 수강생도 많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취미삼아 북아트를 접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중에는 전문 북아티스트로서 개인 공방이나 작업실을 차리고 자신의 작품에 몰두하면서, 강의료를 통해 고정 수익을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개인의 작품 활동과 강의를 병행하는 고충에 대해 북아티스트 김문선은 “북아트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가, 거의 일대일로 가르치다시피 해야 되기 때문에 수강생의 규모를 늘리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무리”라며 “전문적인 작업 과정이나 제작 노하우 등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예술가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삶의 자세에 대한 성찰은 물론 예술의 본질에 관한 질문 역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는 뜻이다.

다양한 곳에서 강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북아티스트 오혜진 역시 “취미로든 전문적인 작가로든 북아트 작업을 계속 해나갈 수 있도록 계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전공 학과의 필요성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이와 같이 예술과 실용의 경계선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북아트와 관련해 이를 좀 더 체계적으로 연구할 전공 학과의 필요성은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북아티스트 오혜진은 “맛보기 식으로 디자인학과나 출판 관련 학과에서 한두 과목씩 북아트를 소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정식 학과가 개설되는 것이 바람직한 수순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대학의 전공분야가 날로 세분화되고 있는 와중에 북아트도 어엿한 독립 장르의 예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겠냐는 반문이다. 북아티스트들의 설명에 의하면 단순히 모양이나 표지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넘어서 북아트는 책의 내용과 맥락을 함께해야하므로 처음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결과물을 뽑아낼지 꼼꼼히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텍스트가 담고 있는 이야기와 책의 외형을 구성하는 디자인이 유기적인 관계로 어우러지며 완성된 결과물을 읽고, 만지고, 느낄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아트는 디자인적인 감각은 물론 공예인의 솜씨와 예술사, 철학 등의 인문학적 소양 또한 함께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한두 과목의 짧은 수업기간으로는 그 진면모를 다 소화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한 대학에 북아트 관련 학과가 개설된다면 개념과 범주, 역사와 기법에 관한 연구까지 보다 심도 깊은 학술적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성과물을 바탕으로 대중들에게도 ‘흥미 위주의 취미 공작’ 수준이 아닌 ‘자신의 참 모습을 표현하는 의미로서의 예술’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최근의 유행을 반영하듯 시중에는 북아트 관련 서적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서적이 요리 레시피처럼 간단한 과정의 기법을 되풀이해 가볍게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적이고 예술로 충만한, 충실한 개념서가 필요하다고 북아티스트들이 목소리를 모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예술 장르가 정착하는 과정은 매우 지난한 세월을 요구한다. 그리고 하나의 예술 장르를 정착시키는 것은 혼을 불어넣는 젊은 예술가들의 도전이었다. 비디오아트의 최고봉인 고 백남준 선생의 초기 작품을 보고 ‘도대체 뭐하는 짓이지?’하고 의문을 품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어렵지만, 비디오아트란 것이 무엇인지는 대강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북아트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교육에 좋다는 것 하나로 한국사회 북아트 열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정작 예술로서의 북아트는 아직 한참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또한 기자가 만났던 북아티스트 김문선, 오혜진과 같은 젊은 예술가들의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예술 혼이 불꽃처럼 타올라야 제대로 된 예술로서의 북아트가 한국에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도서출판 ‘ㅅ’(시옷)의 대표이자 한국북아티스트협회장을 맡고 있는 북아티스트 김문선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어릴 적부터 동경해오던 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낼 수 있어 즐겁다며 환하게 웃었다. 아티스트로서, 사업체의 대표로서, 협회의 장으로서 느끼는 북아트에 대해서 질문하자 일말의 주저 없이 “모두 다르다”고 대답했다.

시옷의 대표 관점에서는 대량제작이 가능한지, 읽는 사람의 위주에서 어떻게 더 익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주로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개인적인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의 입장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지요. 혼자 작업할 경우에는 어떻게 스스로를 표현하는가에 중점을 두는 반면, 주문 제작이나 상품화하는 경우에는 구매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협회의 경우엔 주로 교육 활동에 그 취지를 두고 설립한 것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고 재밌게 북아트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신경을 쓴다고 한다. 또한 북아트를 지도할 수 있는 좋은 역량의 교사를 양성하고 이들이 향후 작가나 지도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봉재석 jsbong@laborplus.co.kr
동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유학 중 접하게 된 북아트 수업이 아주 흥미로웠다고 북아티스트 오혜진은 추억했다. “회화와 같은 평면 작업을 주로 해오다 접한 북아트의 경험은 영혼에 자유를 불어넣어 주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오혜진은 ‘기억’이라는 주제를 종이와 천을 이용한 북아트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설치 작품을 통해 “책은 작가에게 있어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평면도 입체도 아닌 제 3의 매력적인 공간”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오혜진은 학업을 마치고 작품 활동을 시작할 무렵 상업적인 부분을 고려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몇 년이 흘러 조금 바뀌게 되었는데 “너무 예술성에만 천착하는 것도 대중화에 역효과를 줄 수 있는 것 같다”며 적당한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신당 창작아케이드’의 입주 작가인 오혜진은 비록 활동을 시작한지는 얼마 안 됐지만 본인의 작품 활동은 물론, 북아트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고 싶다며 열의를 불태웠다.

 

북아트에서 말하는 책의 양식에 대한 구분

코덱스북 : 현대의 책과 비슷하게 낱장의 종이들을 한데 모아 한쪽 모서리를 엮어서 표지를 싼 형태이다. 고대 로마의 발명품으로 종래의 두루마리식 책을 대체하게 된다. 북아트 분야에서는 장식 목적으로 책등의 엮음 부분을 외부로 노출시킨 노출바인딩 기법이 흔히 쓰인다.

폴드북 : 병풍의 모양처럼 긴 종이를 차곡차곡 접어 만드는 기법이다.

팬북 : 부채가 펴지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기법이다. 낱장의 종이를 모아서 한쪽 귀퉁이만을 고정시켰기 때문에 부채꼴이나 원형을 그리며 페이지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