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경제 최후 ‘안전판’ 지방은행
지방경제 최후 ‘안전판’ 지방은행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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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이 버린 리스크 모두 떠안지만 지원책 전무
지방은행 공공성, ‘강제’보다 ‘장려’ 방안 만들어야

“국가 균형발전, 지역 특성산업 육성과 같은 지방경제 활성화 대책을 쏟아내면서 정작 중요한 지역금융 문제는 언급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지역금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방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지난 9월 5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과 전국금융산업노조, 사무금융연맹이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토론회 ‘서민금융·지방금융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참석한 토론자와 패널들은 한목소리로 지역금융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의 지방은행 퇴출과 정리에 대한 평가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방의 말라붙은 ‘돈맥’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지적만큼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 지방은행 58%, 시중은행 28%

이런 가운데 지방 경제의 기반인 중소기업에 대한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의 대출 비율 격차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예금보험공사 발표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총 대출규모에서 중소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방은행(총대출 41조6230억원 중 중기대출 24조269억원)이 57.73%인 반면 시중은행 (총대출 483조6865억원 중 중기대출 137조3314억원)은 28.39%에 그쳤다.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2003년 56.68%에서 △2004년 57.56%로 높아진 데 이어 올해에도 꾸준히 증가했다. 반면 시중은행은 △2003년 30.34%에서 △2004년 29.31%로 줄었고 올해에도 감소세가 지속, 지방은행과는 반대 행보를 하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위험이 적은 가계 대출 위주로 ‘안전영업’에 열중하고 있어 내수경기 회복 지연은 물론이고 부동산투기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기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 자산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예금보험공사의 발표 결과는 이런 상식(?)과는 크게 거리가 있다. 올해 6월말까지 지방은행의 중소기업대출 부실채권 비율은 1.56%로 은행권 전체 평균은 1.93%보다 낮은 반면 같은 기간 시중은행의 중기대출 부실채권 비율은 2.45%로 나타난 것. 중소기업대출의 연체율도 지방은행은 1.58%로 은행권 평균인 2.0%에 못 미쳤지만 시중은행은 2.41%로 평균을 웃돌았다.

이처럼 지방은행의 중기대출 부실률이 낮은 것은 지방은행이 지역기업에 대한 정보수집과 신용평가에 있어서 우위를 갖기 때문이다. 대구은행 금융경제연구소 진병용 소장은 “중소기업대출=부실채권 가능성이라는 공식은 지나친 것”이라고 지적하고 “지방은행의 경우 중소기업에 대한 정보수집력과 관계형성 기능이 강해 오히려 중소기업 대출이 우량 대출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방은행은 시중은행 ‘폐기물’ 처리장?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지역금융이 축소되고 전국규모의 금융이 늘어나면서, 금융당국은 전국금융이 지역금융을 자연스럽게 대체할 것이라는 기조 아래 정책을 펼쳐왔다. 지역금융에 대한 별도의 대책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최근 부산은행 경제조사팀 박순양 연구위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금융의 확대가 지역금융의 축소부분을 보완하는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전국금융이 축소한 중소기업대출 부문을 지역금융이 애써 채워주고 있는 형태다.

독자 지방은행이 생존한 부산지역을 먼저 살펴보면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시중은행이 줄인 중기 대출의 자리를 채운 것은 지방은행이다. 특히 2004년 이후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율은 거의 반비례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지표는 지방은행이 중소기업 중심 지역경제의 최후 안전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 지방은행이 없는 울산지역의 경우 부산과는 반대 현상이 뚜렷하다. 시중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는 추세와 지역형 금융기관의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는 추세가 거의 일치하는 것. 지방은행이 존재하지만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금융지주 회사에 편입된 경남지역도 지방은행이 없는 지역과 거의 비슷한 모양새를 나타냈다. <표 참조>

박순양 연구위원은 “시중은행이 중기 대출을 줄인 만큼의 갭을 지방은행이 메워주고 있다”며 “시중은행이 버린 폐기물 처리를 지방은행이 맡고 있는 셈이지만 지방은행에 대한 지원책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박 연구위원은 독자 지방은행이 없는 지역의 경우 자금이 집중적으로 유입됐다가 집중적으로 회수되면서 기업의 연쇄 부도를 불러온 IMF 위기와 같은 상황이 언제든 재연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독자 지방은행 없는 지역 중기대출률도 최저

분석 범위를 전국으로 넓혀, 지방은행이 독자적으로 생존한 1그룹(부산, 대구, 경북, 전북)과 지방은행이 금융지주회사로 편입된 2그룹(울산, 경남, 광주, 전남, 제주), 지방은행이 아예 없는 3그룹(인천, 강원, 대전, 충남, 충북)으로 나눠 살펴보면 지방은행의 역할은 좀 더 뚜렷해진다.

1그룹의 경우 중소기업대출 비율이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고 2그룹이 그 다음 수준을, 지방은행이 아예 없는 그룹은 중소기업 대출 비중도 계속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은행 간의 양극화 현상은 단순히 중소기업의 대출이 어렵다는 문제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중소기업의 자금 불안정성 증대를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실제로 지역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시중은행들이 경기침체와 중소기업대출 잔액의 급증에 따라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기 시작한 2004년에 더욱 심해졌다. 대형시중은행이 대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면 신용평가등급이 낮은 기업에 대한 대출을 회수하고 등급이 높은 기업에 여신을 집중하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신용평가등급이 낮은 기업이 집중된 지방은 ‘금융경색’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소기업대출비율로 상징되는 ‘양’의 문제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금융기반 확보라는 ‘질’적 측면에서도 지방은행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방은행 공공성, 정책적 보완책 시급

그러나 최근 들어 지방 중소기업들의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하고 지방은행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가고 있다.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시중은행과의 무한 경쟁에 그대로 노출된 데다가 외국인 지분율이 50% 이상인 지방은행도 벌써 두 곳이나 된다. 결국 지방은행에 대한 지원책이 없다면 생존을 위해 공공성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지방은행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지방은행의 역할 강화를 위해서는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과 같은 방식으로 공공성을 유지하는 ‘강제책’보다는 공공성이 높은 지방은행에 인센티브를 주는 ‘장려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는 방안 중 하나가 우체국 금융의 활용 방안이다. 우체국의 경우 전국에 분포되어 있지만 수신기능만 있을 뿐 여신기능은 없어 대표적인 지역자금의 유출통로가 되고 있다. 2004년 말 현재 우체국예금 잔액은 32조694억원에 달하는데 이 중 80% 이상을 차지하는 20조6811원이 비수조권에서 조성됐다. 때문에 우체국금융의 수신 중 일정 비율을 해당 지역의 지역형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것도 지역자금의 유출을 막고 활용도를 높이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대구은행 기업여신팀 관계자는 “최근 모 시중은행이 중소기업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우체국과 협약을 맺고 우체국을 통해 은행 입출금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했다”며 “정작 중소기업이 집중되어 있는 지방의 금융기관이 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이라고 제안했다.

과거 지방은행에 대한 인센티브 중 하나로 시행되던 공공기관, 지자체 등의 여유 자금 예치 우선권 등을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은행 중소기업팀 이충희 팀장은 “법원 공탁금이나 공공기관 여유자금 등을 금융기관에 예치할 때 중소기업 대출 기여도를 예치금융기관 선정기준으로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지역금융의 활성화를 위해 지방은행의 ‘마인드 제고’를 촉구하기 전에 금융 및 산업 정책 차원의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