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리맥과이어’를 꿈꾼다
한국의 ‘제리맥과이어’를 꿈꾼다
  • 안형진 기자, 배민정 기자
  • 승인 2010.08.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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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투자 최대효율 스포츠 ‘강국’에서 그들이 사는 법
외국어·법률지식·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필요
[젊은리더] 스포츠 에이전트

ⓒ IB스포츠

어떤 것이 됐든 ‘스포츠’의 범주에 들어가는 수많은 운동들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수십 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약속이나 한 듯 빨간 옷을 입혀 거리에 나앉게 하니 말이다.

이전에 다니던 직장의 무서운 사장님은 WBC에서 한국과 일본의 야구 경기가 있었던 그날 오후, 전 직원이 모여 앉아 야구경기 중계를 보는 것을 묵인해 주기도 했다. 하다못해 주말이면 심심치 않게 경험하는 ‘XXX 단합대회’에서도 항상 스포츠는 빠지지 않는다.

물론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스포츠가 가진 ‘땀의 진정성’에 있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또 이른바 ‘스타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선수의 뒤편에서 남몰래 땀 흘리며 그들만의 ‘땀의 진정성’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제리맥과이어(Jerry MaGuire, 1996)’에서 키 작은 미식축구선수 로드의 손을 끝내 놓지 않았던 톰크루즈와 같은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스포츠 에이전트(Sports Agent)라고 부른다.

아직은 생소한 ‘스포츠 에이전트’

EM C&C 김창모 부장

에이전트(Agent)는 사전적으로 대리인·중개상을 일컫는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스포츠 에이전트는 선수를 대신해서 연봉협상이나 광고계약,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법정 대리인을 말한다.

하지만 실상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은 이보다 더 많은 분야의 업무를 포괄하고 있다. 한 선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부터 각종 스포츠 대회의 중계권을 따내는 일, 스포츠 이벤트를 기획하고 제안하며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일까지 다양한 영역의 일이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이름하에 이뤄진다.

현재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며 각종 스포츠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을 맡아하고 있으며 과거 기성용 선수, 김연아 선수의 에이전트였던 <EM C&C>의 김창모 부장은 스포츠 에이전트를 “선수의 대리인이며 선수의 가치를 극대화시켜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선수의 계약과 같은 화려한 부분만 조명될 수 있지만, 사실 좋은 부분부터 그렇지 못한 부분까지 한 사람의 대리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이라며 “경기 외에도 아주 사소한 부분, 예를 들어 선수가 이사를 해야 한다고 하면 한 달 정도 부동산 정보만 알아보고 다닐 정도로 선수의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이 그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스포츠 에이전트사로 국내 최고의 명성을 쌓은 <IB스포츠>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태래 대리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선수와 팬, 기업을 연결해주는 ‘매개자’로 정의했다.

그는 “우리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기업과 선수를 연결시켜 주는 것, 선수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 구축, 언론 및 미디어 관리, 연봉 협상과 같은 일뿐 아니라 월드컵, 올림픽 등 여러 대회의 중계권이나 여러 권리에 대한 사용권을 해외 주체로부터 사와 한국 내 방송사 혹은 기업에 판매하는 일까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얼마 전까지 김연아 선수의 에이전트를 담당했던 IB스포츠에서는 김연아 선수 이미지의 주요 테마로 ‘우아한 카리스마’를 선정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매스컴이나 광고에서 김연아 선수가 보여줬던 모습들을 돌이켜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김태래 대리는 스포츠 에이전트 7년차다. 국내 스포츠 에이전트 산업이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발생해 발전해 온 것을 감안하면 스포츠 에이전트 ‘원년멤버’인 셈이다.
그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하다보면 담당하고 있는 선수와 생기는 유대감이 남다르다”며 “마치 부모가 된 듯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그만한 보람도 없다”며 웃었다.
아직까지 젊은 그가 가진 스포츠 에이전트로서의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지망하는 젊은 친구들을 위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는 것, 둘째는 연예, 대중음악의 영역이 지난 10년 간 그랬던 것처럼 스포츠에도 ‘한류열풍’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골프대회만 해도 동남아 등 해외에서 중계권을 구매하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스포츠 한류의 기회 요소는 지금도 상당히 많습니다.”

연예인 매니저와 ‘닮은 듯, 다른 듯’

스포츠 에이전트의 업무 영역은 얼핏 연예인을 매니지먼트하는 일과 흡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분명한 차이점은 있다.

김창모 부장은 “연예 매니지먼트에 비해 단순하다”고 평했다. 여기서 ‘단순하다’는 개념은 ‘보다 쉽다’는 개념과는 다르다. 연예 매니지먼트의 경우 스타 한 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많지만 스포츠 에이전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자사의 배우를 스타로 만들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상정해보자. 드라마만 하더라도 정극과 시트콤, 사극 등 여러 분야가 존재하고, 심지어 가수로 변신한다든지,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한다든지, 모델로 이미지를 구축할 수도 있다. 때문에 근래의 대형 연예 기획사들은 스타성을 갖춘 유망주인 이른바 ‘연습생’을 찾아내 여러 방면으로 단련시킨다. 반면 스포츠 스타의 경우 대중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잣대가 명확히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선수의 ‘경기력’이다.

김태래 대리는 “연예 매니지먼트의 경우 유망주를 발견해 육성시키는 일까지 포함한다고 한다면 스포츠 에이전트는 그 중 다이아몬드를 찾아내 세공하는 역할이 주라고 할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선수의 객관적인 퍼포먼스(대회 성적)가 뛰어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객관적인 경기력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유망주’라는 이름으로 투자하기에는 위험이 크다는 이야기다.

한국 국민들은 축복 받았다. ‘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스포츠’에 관해서는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적어도 얼마 전부터 방송되고 있는 ‘더 나은 스포츠 환경을 위해’라고 이름 붙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광고를 보면 더욱 그렇다.

초등야구 팀의 수 1000: 99 (일본 : 한국)
남자실업 핸드볼 팀 수 3001:5 (독일 : 한국)
축구 클럽 수 16697 : 100 (이탈리아 : 한국)
국제규격 아이스링크 수 2007 : 17 (미국 : 한국)

대한민국 야구팀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본은 메달 없이 4위에 그쳤다. 남자핸드볼 팀은 올림픽 예선에서 독일에 27:23으로 아쉽게 졌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2무 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한국은 사상 최초 원정 16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했다. 피겨 여왕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선 김연아 선수의 이야기는 새삼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좋겠다. 이렇듯 아시아 동쪽의 작은 나라에서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효율을 만들어낸 선수들이 있다는 사실은 진정 ‘축복’이라 할만하다.

어린 시절 키가 작아 고민이던 박지성 선수의 어머니가 박지성 선수에게 개구리를 고아 먹였다는 일화는, 스페인의 유명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가 유망주였던 아르헨티나의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Lionel Messi)의 성장 호르몬 장애를 치료해 줄 것을 약속한 사실과 비교된다.

이는 ‘한국인의 근성’을 말하는데 좋은 이야기 거리는 될 수 있을 지라도 그만큼 대한민국의 스포츠에 대한 기본 토양은 황무지에 가깝다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때문에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스포츠 에이전트들이 설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넓지 못하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자신이 94학번이라고 밝힌 김창모 부장은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한 뒤 “남들이 다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며 당시 불모지였던 스포츠 에이전트에 뛰어들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가진 것은 ‘열정’뿐이었던 자신이 여기까지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그는 그간 선수를 관리하는 일부터 스포츠 방송사에서 중계권을 관리하는 일, 현재의 스포츠 마케팅에까지 다방면에 경력을 쌓은 실력파이기도 하다.
그는 스포츠 마케팅을 지망하는 유능한 친구들이 많은데도 ‘이 바닥(스포츠 에이전트)’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안타깝다며 스포츠 에이전트가 활성화되기 위한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스포츠에서의 ‘대리인’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해요. 특히 선수들의 부모들은 더욱 그렇지요. 스포츠를 만들어가는 협회나 연맹 차원에서 에이전트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분쟁의 소지도 줄고 에이전트들이 설 땅이 넓어질 수 있으리라고 봐요.”

선수가 부족한 한국, 아직은 걸음마 단계

IB스포츠 김태래 대리

한국에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선수’가 많지 않다. 이는 한국의 스포츠 에이전트들이 아직 많지 않다는 현실, 에이전트들이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유망주보다는 이미 실력이 입증된 몇몇 선수들에게 천착하고 있는 현실과 궤를 같이한다.

이에 대해 김창모 부장은 “우리나라는 일반 국민과의 연결고리를 가진 선수가 특정 선수에게만 한정돼 있다”며 “시장 자체가 좁다보니 새롭게 스포츠 에이전트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대중적인 인기를 가진 선수들이 수십억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뉴스가 매번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스포츠 산업으로는 전체적인 파이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대중적 인기를 가진 세계적 스타들이 기존의 에이전트사를 떠나 독립하는 경우도 있다. <JS리미티드>를 설립한 박지성 선수나, <올댓스포츠>를 설립한 김연아 선수가 그런 예다.

김연아 선수를 떠나보낸 IB스포츠는 최근 종목별 구분이 아닌 업무별 구분으로 세분화 시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전까지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몇몇 인원이 한 종목의 스포츠를 총괄했지만 결국 김연아 선수를 담당했던 인원이 김연아 선수와 함께 독립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김태래 대리는 “아직까지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분야가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다보니 에이전트사가 선수의 몫을 가져간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러한 인식 개선을 위해 에이전트사 역시 선수와의 신뢰 구축을 위한 전문성 향상에 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창모 부장은 “그렇게 새로운 기업을 설립한 경우는 일단 선수의 브랜드 파워를 강점으로 지니고 있는 만큼 스포츠 에이전트 산업 전체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나가는데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해 줬으면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스포츠 에이전트, 당신은 ‘만능’

ⓒ IB스포츠

현실은 이렇듯 녹록치 않지만 스포츠 에이전트는 향후 떠오를 유망직종 중 하나로 손꼽힌다. 스포츠 에이전트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만큼 향후 발전 가능성은 ‘맑음’이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의 스포츠가 세계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고, 그만큼 선수들의 대우나 지위도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으며 기업에서도 스포츠 마케팅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김태래 대리는 “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뿐 아니라 에이전트에 대한 관심 역시 처음 근무하던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며 “예전에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야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기회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김창모 부장 역시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국내에서 열리는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들은 스포츠 에이전트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선수들과 선수들의 부모들도 지속적으로 인식개선이 이뤄지고 있어 향후 상황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듯 발전 가능성이 높은 스포츠 에이전트에게는 기본적으로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요구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인 목소리지만, 이밖에도 광범위한 영역을 가진 업무의 특성상 요구되는 능력은 굉장히 다양하다.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가 돼야 한다.

아직까지 국내 시장에 묶여 활동하기에는 저변이 부족한 상황이라 영어를 비롯해 제2외국어 능력이 유용하다. 또 세계적으로 유명세가 높은 축구 분야의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서는 FIFA에서 공인하는 자격증을 따는 것은 필수다. 일정 이상의 법률지식을 가지거나,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면 선수들의 계약관계에서의 법률분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선수와 선수 가족뿐 아니라 기업, 미디어 등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 구성체들과의 입장 조율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스포츠 에이전트에게 일상적으로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다.

특히 스포츠에 대한 저변확대가 절실한 국내 여건상 이미 갖춰진 현실 속에 묻혀 안정을 꾀하기보다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자신의 업무를 즐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김태래 대리는 “전체 마케팅과 미디어, 기업의 속성을 이해하는 거시적 측면뿐 아니라 브랜드 전략, 광고, 영업 등 자세한 부분까지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관리하다보니 업무가 다양하고 광범위한데다 야근과 출장도 잦은 편”이라며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없다면 버텨내기 힘들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