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안녕하십니까?
서울은 안녕하십니까?
  • 배민정 기자
  • 승인 2010.08.0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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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에만 치중한 디자인서울…옛 것과 새 것의 공존 필요
‘진짜’ 시민들의 목소리 담는 것이 공공디자인 역할
[E사람] 대학생 디자인그룹 FF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언젠가부터 서울시에 불쑥불쑥 이상한 문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겉모습이 가장 중요한 도시 서울에 잘 오셨습니다’
‘오늘도 직장에서 파김치가 될 당신, 출근길 지옥철에서 비집고 나와 말합니다. 서울이 좋아요’


이런 문구들은 때로는 지하철 역사 벽면에서, 때로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보도블록 위에서 발견됐다. 오세훈 시장이 ‘뉴요커’와 ‘파리지앵’처럼 도시민들이 서울을 자랑스러워하게 만들겠다며 디자인서울 정책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누가 이런 ‘발칙한’ 발언을 쏟아내는 걸까?


주인공은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과 동아리로 출발한 디자인그룹 ‘FF’이다. FF는 민성훈(기획), 장우석(그래픽), 조성도(소셜미디어), 최보연(영상)이 주축 멤버로 활동하고 있지만, 필요와 재미에 따라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인원은 10명 안팎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멤버들은 “시각디자인(visual design)이라는 단어의 뜻대로, 디자인을 통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모여 만들어졌다”고 팀을 소개했다. 또 “FF라는 이름은 특별한 의미 없이 어감이 좋아 선택했다”며 “우리들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재미”라고 밝혔다.

그런 그들이 요즘 가장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서울’, 더 정확히 말하자면 ‘디자인서울’이다.

노점상은 발붙일 수 없는 ‘디자인거리’

ⓒ FF Group

2010 세계디자인 수도. 세계 여행안내서의 대명사 ‘론리플래닛’ 선정 최악의 도시 3위. 모두 서울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도시를 두고 이렇게 상반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FF는 이런 상황에 의문을 품고 서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FF 멤버 최보연 씨는 서울대입구역 앞이 ‘디자인거리’로 지정되면서 노점상들이 쫓겨났던 일을 떠올린다.

“노점상 철거는 자주 이슈가 됐던 문제지만, 제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맨날 다니던 학교 앞이 난리가 났는데, 그게 ‘디자인’ 때문이라는 거예요. 사실 서울시에서 처음 디자인수도, 디자인서울 이런 정책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는 내심 기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디자인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니, 디자인은 이런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최보연 씨는 “여태껏 내가 배운 디자인, 꿈꿔온 디자인이 실제로 사회에 적용되는 모습은 생각과 너무 달랐다”고 한다. 더구나 자신을 가르치던 교수님들이 디자인서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보며 의구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FF 멤버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디자인서울을 추진한 관계부처를 찾아갔다. 그들은 디자인올림픽 디렉터, 경기도 디자인총괄 본부장 등 사업을 진행한 사람들을 만나며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물었다. 그러나 FF가 원하던 답은 얻을 수 없었다.

“디자인거리 하나를 만들어도 관계되는 부처가 한두 개가 아닌데, 소통이 진짜 안 되고 있는 거예요. 그분들도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너무 답답했어요.”

디자인서울 관계자들과 인터뷰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 했던 FF는 계획을 수정해 자신들 스스로 답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칫솔 하나로 보도블록 닦아 글자 만들어

ⓒ FF Group

FF는 먼저 디자인서울 광고의 문구를 바꾸는 캠페인 ‘아이라이크서울’을 진행했다. 예를 들면‘서울이 좋아요’라는 말풍선에 ‘서울은 원래 좋아요’라는 스티커를 붙여, 새것을 세우기에만 급급한 서울시 정책을 비꼬는 식이었다.

처음에 친구끼리 스티커 문구를 생각했던 FF는 곧 이것을 시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기회로 전환했다. 현재 그들의 홈페이지(ilikeseoul.org)에는 시민들에게 접수받은 380여 개의 문구가 빼곡하게 올라와 있다. FF 멤버들은 서울의 상징인 해치맨 가면을 쓰고 나타나 ‘디자인하느라 애들은 굶어요’, ‘서울이 좋은지는 우리가 판단할게요’ 등 재기발랄한 문구를 서울시 곳곳에 붙였다. 이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홈페이지에 ‘인증’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점차 이들의 활동이 화제가 되자 서울시에서도 촉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난 6월 23일, 서울지방경찰청은 FF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당장 벌금을 선고하지는 않지만, 이런 활동을 계속하면 공공기물 훼손으로 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캠페인을 접을 수는 없는 일. FF는 공공기물훼손혐의를 받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알릴 수 있는 기발한 묘안을 생각해냈다. 디자인서울 광고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처럼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에서 빼자는 역발상, 바로 거리의 지저분한 곳을 청소해 메시지를 새기는 방법이다.

FF는 이 방법으로 대학로 노면에 ‘서울의 진보 인간성의 퇴보’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이후 서울시청 앞, 서울대 입구, 강남역까지 작업을 이어갔다. 변변한 장비가 없는 이들은 새벽에 거리에 나서 칫솔 하나로 보도블록을 싹싹 닦아냈다. 한 번 할 때마다 네다섯 시간씩 걸리는 중노동이었다. FF는 “누가 시켰다면 절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신선하다’는 시민들의 반응에 즐겁다고 한다.

‘보여주기’ 위한 디자인이 다가 아니야

ⓒ FF Group

FF가 디자인서울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결코 서울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서울에 거주해왔으며, 몇몇은 서울이 고향이기도 하다. FF 멤버 조성도 씨는 “대학로에서 평생을 살았다”며 “며칠 만에 새로운 가게들이 불쑥불쑥 생기는가 하면, 50년 된 카페가 공존하는 것이 대학로의 매력”이라 말한다.

그는 “어렸을 때는 일요일이 되면 대학로에 차량 진입을 막아놔 길거리에서 돗자리를 깔고 김밥을 먹기도 했다”며 추억을 풀어놓는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현 서울시 디자인정책을 향한 불만이 매우 크다.

그는 얼마 전 새로 단장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예로 들며 이곳의 스크린도어에 붙어 있는 문구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찍어온 사진을 내밀었다.

“이 스크린도어에는 ‘혼잡하기 때문에 이 앞에서 줄을 서지 말라’는 식의 글이 붙어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바로 2호선으로 갈아타는 에스컬레이터가 앞에 있기 때문에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거든요. 제 생각엔 이렇게 겉모습을 바꾸는 데 들인 돈과 시간이면, 에스컬레이터 위치를 바꿀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쪽이 더 시민들이 편리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고요. 이런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저 겉모습만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는 거죠."

최보연 씨도 “서울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는 데 인색하다”며 “지저분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상가의 간판이라든지, 시장골목 같은 것들이 오히려 서울의 특색이 될 수 있는데 이것들을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없애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디자인은 어떤 것일까? FF는 뜻밖에 디자인서울의 일환으로 개최한 ‘디자인서울올림픽’의 슬로건을 꼽는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 ‘우리 모두가 디자이너다’, 그런 슬로건이 있잖아요. 저희는 정말 이런 걸 해보고 싶어요. 일방적으로 ‘서울이 좋아요’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디자인 말이죠. 그래서 이번 캠페인을 진행할 때도 시민들과 함께 즐기는 것을 가장 염두에 뒀어요.”

“아이폰 같은 제품은 회사에서 만들어 내놓으면 우리가 마음에 들면 사고, 아니면 아닌 거잖아요. 하지만 버스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택시를 선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공공디자인은 이미 세금으로 선지불한 것이니 시민들과 소통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예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디자이너들의 행동

FF는 ‘아이라이크서울’ 캠페인이 시민들에게 디자인서울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켰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온라인을 통해 짧은 문구를 응모 받다보니 흥미 위주로 흘러간 것이 한계라고도 생각한다.

“저희가 지금까지 한 것은 디자인서울에 대해 사람들의 말문을 트이게 하는 첫 번째 단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좀 더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한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니 이번 캠페인에 참여하셨던 분들께서 많은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들은 서울시 디자인 정책에 대해 할 말이 없어질 때까지 ‘아이라이크서울’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해온 디자인서울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서울이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런 활동이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겠죠?”

그들은 인터뷰가 끝날 때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언젠가 우리가 살아가게 될 미래의 도시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