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구치소 생활, 그러나 행복한 위원장
7개월 구치소 생활, 그러나 행복한 위원장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0.09.0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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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시기에도 밝은 표정의 조합원 보며 “미안하고 고맙다”
“아직도 철도 파업은 합법” … 상급심에서 진실 밝혀질 것
[인터뷰]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출소 직후 헬쓱했던 얼굴은 많이 좋아졌다. 지난 7월 2일, 1심 재판에서 작년 11월 파업과 관련해 철도공사의 업무를 방해한 점이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아 7개월 만에 풀려난 철도노조 김기태 위원장을 1년 만에 다시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위원장 취임 직후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합활동은 행복해야 한다”고 말했던 김 위원장에게 1년이란 시간은 행복을 맛보기에는 너무 짧았고, 교섭과 파업의 반복 속에 조합원 1만 명 이상이 징계를 당하는 고통 같은 시간은 너무 길었다. 출소 이후 2달째 전국 현장순회를 진행하고 있는 김 위원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를 들어봤다.


조합원들의 지도부 신뢰는 여전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김 위원장에게 구치소 생활은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2000년,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한 차례 구속됐었던 그였지만 이번 구치소 생활은 참기 힘든 분노로 점철됐었다고 한다.

작년 12월, 철도 파업과 관련해 업무방해죄로 체포영장이 청구됐던 김 위원장은 영등포경찰서에 자진 출두했고 그가 1심 재판을 받는 동안 철도노조 지도부 등 200여 명의 조합원이 해고되고 1만2천여 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받는 등 그야말로 철도노조에게는 악몽 같은 시기가 도래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구치소에서 면회자들을 통해 들었던 김 위원장은 구치소 생활의 어려움보다 “이렇게 막 나가는” 철도공사로 인해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또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중 하나인 단체행동권을 행사한 것이 업무를 방해했다는 ‘죄’가 된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1심 판결이 작년 5, 6, 9월 파업은 합법 파업이라고 인정했지만 11월 파업은 ‘공기업 선진화 분쇄’를 쟁의행위의 주목적으로 했다는 이유로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한 부분에 대해 김 위원장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교섭을 해태한 것은 철도공사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불법 파업이라고 한다면 노동자들의 손발을 다 묶어 놓는 것이라고 주장한 김 위원장은 상급심에서 1심 판결의 부당함이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또한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 김 위원장은 출소 직후 전국을 돌며 조합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작년 파업 이후 체결된 단협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단협 조차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라며 오히려 김 위원장을 격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었다. 김 위원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조합원 징계, 전환배치, 업무체계 개편, 임금 교섭 등 산적한 현안들을 조합원들과 함께 준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괴로워

작년 11월 26일부터 8일간 진행된 파업을 종료한 이후 영등포 경찰서에 자진 출두했었다. 이유가 무엇이었나?

“파업 중간에 대통령이 사측 상황실까지 가서 철도 파업을 불법화시키는 과정이 있었다. 이후 검찰과 경찰의 대응은 강경해졌다. 어쨌든 위원장으로서 고민이 깊었다. 우리 파업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 지을 것이냐 하는 문제도 고민이 있었던 상황에서 대통령이 그렇게 나오니까 고민은 더 깊었다.

오랜 시간 고민했다. 얼마까지 파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내부적 판단이 필요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자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됐던 교섭조차 깡그리 죽어 교섭에 대한 전망이 없었다. 각 지역별, 직종별 상황도 점검하는 등 그런 과정 속에서 어렵게 업무 복귀를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민 끝에 ‘더 이상 하는 것은 실익이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이든 한 달이든 끝장을 볼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렇게 하겠는데 그런 실익이 이 정권하에서는 기본적으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판에 타협이라도 하려는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그런 여지는 전혀 없었다. 이 정권만큼 파업을 적대시하는 정권은 없었다. 공기업에서 왜 파업하냐고 하는데 그러면 파업은 못 먹고 못 사는 사람들이 악다구니 세우는 것이 파업이라고 생각하는가. 헌법에 나와 있는 노동3권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파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진 출두 후 현장에 돌아오기까지 7개월이란 기간이 걸렸다. 구치소에서 조합원들의 해고, 징계 소식을 들었을 텐데 어떤 기분이었나?

“구치소 들어가서 한두 달은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철도공사가 융단폭격식의 사상 유래 없는 징계를 감행한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200명 해고시키고, 지도부는 구속시키고, 거기에 지부 간부까지 중징계 때리고, 일반 조합원 1만2천 명 징계 내리고, 100억 원 압류까지 하니까, 아! 진짜 힘들었다.

어쨌든 철도노조 위원장으로서 부담감이나 중압감이 컸다. 다른 게 힘든 것이 아니고 계속 면회 오면서 들려오는 소식이 징계와 탄압에 관련된 이야기니까 우려도 되지만 이렇게까지 ‘막 가는구나’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다스려지지 않았다.

파업 진행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2007년 노조법이 개정되고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해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해 조금은 파업이 가능한 여지가 열려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법을 지키면서 파업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단지 파업 했다는, 단지 근로제공을 거부했다는 것으로 업무방해죄를 뒤집어씌우고, 파업을 기획·주도했던 집행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단순 참가한 조합원에게 1만2천여 명 전원을 징계하는 것은 선뜻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런 것에 대한 분노가 컸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나는 행복한 위원장

많은 인사들이 면회를 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기억에 남는 면회자가 있는가?

“모든 분들이 고마운 분들이지만 조합원들이 면회 왔을 때 엄청 고맙고 반가웠다. 영주, 순천, 강원도 동해, 부산에서 자기 쉬는 시간 반납하고 서울에 면회 오려고 하루 온전히 다 까먹고 올라와서는 정작 면회시간 10분 동안 5명이 마주 앉아 있으니 나랑 이야기하는 것은 정작 한 두 마디밖에 안 되지만, 그 눈빛에서 걱정스러워하고 힘내시라고 다독여주는 마음 씀씀이가 그대로 전달돼 너무나 고마웠다. 철도노조위원장을 맡은 일이 고난의 삶이 아니라 감사한 삶이구나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다. 조합원들이 그렇게 와주는데 뭔들 못하겠냐. 나는 행복한 위원장이다.”

1심 재판부는 작년 5, 6, 9월 파업은 합법이라 했으나 11월 파업에 대해 불법으로 규정하고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결국 철도공사나 정부의 주장이 그대로 적용됐다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10월까지는 합법이고 11월부터는 불법이라는 재판부의 판단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은 파업 들어가기 전부터 일련의 과정이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판과정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재판 들어가기 전부터 검찰에서 파업의 적법성 여부를 한번 판단했었고 이것이 보도도 됐었다. 합법이라고.

문제는 그 중간에 대통령이 철도파업에 대해서 언급한 이후부터 대국민 담화문 발표되고 그때부터 불법으로 이어졌는데 재판 진행하면서 재판부도 곤혹스러워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대통령이 나선 사건이니까. 대통령이 적당히 타협하지 마라, 엄정히 대처하라고 지시한 사건이기 때문에 재판부 또한 판결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 판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들은 파업 절차나 목적, 수단, 방법에 있어서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지극히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파업을 진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법부가 그러한 판단을 했다는 것이 유감이며 고법, 대법가면 정치적 부분 배제하고 과연 철도파업이 업무방해죄냐라는 것만 가지고 들여다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일단 지금을 잘 버텨내자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쨌든 단협은 체결됐고 조합원 승인도 받은 상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 단협 체결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이라 굴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에 대해 위원장의 생각은 무엇이며 현장 조합원들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사실은 출소 이후 곧바로 현장순회를 간 이유 중 하나가 어쨌든 직접 조합원들 만나서 조합원들의 생각과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야 하반기 남아있는 사업을 조합원들의 조건과 상황에 맞게끔 기조를 잡을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그들이 판단하기에도 지금은 철도 뿐 아니라 이명박 정권하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다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정세판단 속에서 철도노조의 단협 타결내용이 이전보다 근로조건이나 복지, 노조활동 등 모든 부분에서 저하됐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반면 그나마 단협이라도 타결한 것에 대한 안도감도 있다. 단협 해지상태로 계속 갔을 때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었는데 이것을 막았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래서 조합원들 판단은 어쨌든 이명박 정권이라는 만만치 않은 정권에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막은 것은 철도노조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하는 일종의 자긍심이 있는 것 같았다.

단협이라는 것이 영구적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조합원들에게 있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 승리적으로 뭔가를 쟁취하는 그런 시기는 아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런 것은 일정정도 철도노조를 무력화, 초토화하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시기를 잘 넘기고 잘 버텨나가서 잘 극복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징역살고 나온 위원장 앞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조합원들이 대단히 건강한 것이다. 또한 내가 위안 얻고 힘을 얻은 것은 조합원들의 표정이 밝다는 점이다. 철도노조 집행부가 의지가 없어서, 혹은 집행부가 무능력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집행부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는 여전히 큰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조합원들에게 감사하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이번 투쟁이 그렇게 실패한 투쟁, 성과 없이 마무리한 투쟁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당장 어렵고 힘들어서 그렇지만, 09년 철도노조가 했던 투쟁이 역사적으로 재평가 받고 자리매김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또한 철도노동자들이 이후 삶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출소 이후가 더 바빠지겠다. 징계 조합원에 대한 구제 등 벌어진 일들보다 정리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상황인 것 같다.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단협 후속조치로 근무체계 개편이나 올해 임금 교섭을 하반기에 해야 한다. 강제전환배치처럼 상시적인 구조조정도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하반기가 될 듯하다. 최대한 조합원들 설득하고 힘을 모아서 철도노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 줄 생각이다.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하반기 사업계획을 꼼꼼히 챙기면서 준비할 생각이다.”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철도투쟁이 파업투쟁도 있었지만 그전부터 노사 갈등이 오래 지속됐기 때문에 여러 분들이 관심 있게 지켜봐주시고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시고 힘내라고 성원 보내주시고 했다. 파업투쟁이 성공적으로, 성과 있게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권의 모진 탄압이 있었긴 하지만 많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송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투쟁의 과정 속에서 역사는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조만간 철도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연대해서 지금의 모진 시련을 안주삼아 기뻐 부둥켜안고 축제의 시간을 보내는 시간도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고 싸우다 보면 조만간 좋은날이 오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