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에도 해야 할 일은 많다
고희에도 해야 할 일은 많다
  • 김관모 기자
  • 승인 2010.09.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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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사회 꿈꿔
비장애인 이사장 선임 논란 속에 “전문성 키워내겠다”
[인터뷰]양경자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6월 7일, 전임 김선규 이사장의 불명예스런 사퇴로 인해 공석이었던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후 공단) 이사장에 양경자 전 국회의원이 선임됐다. 12~13대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이사와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인 양 이사장이 선임되자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의 문제를 당사자가 해결하도록 하는 구조를 깨어버렸으며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양 이사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양 이사장은 13대 국회에서 공단 설립의 근거가 됐고 장애인 고용정책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해 제정에 이르도록 했으며, (사)한국지체장애인협회 고문을 수년 동안 역임했다는 점, 공모를 통해 여타의 이사장 후보들과 같이 응시해 선임됐다는 점을 들어 사퇴할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취임 2달이 지난 양 이사장을 만나 앞으로의 장애인 고용 정책에 대한 비전을 들어봤다.


장애인 이동시설 없으면 준공허가 말아야

고령(70세)인 나이에도 양 이사장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었다. 그녀가 꾸는 꿈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한 사회를 지탱해나가 듯 비장애인과 장애인도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구분되는 세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쳐나가야 할 제도적, 정책적 문제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양 이사장이 만났던 장애인들, 특히 젊은이들은 과거처럼 부끄러워 밖을 못나가거나 시혜적인 혜택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길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양 이사장은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통해 그러한 꿈을 이루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양 이사장은 각 건물마다 장애인 이동 시설을 필히 설치해야 준공허가가 떨어질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 위해 당장이라도 국회 국토해양위에 뛰어가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현재 포스코, NHN 등 많은 기업들이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을 통해 중증장애인 고용에 노력하고 있지만 대기업이 좀더 적극적인 장애인 고용 의지를 표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이들의 능력 문제를 이야기하는 시기는 지났으며 어떻게 이들의 생산성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공단과 정부가 나서서 선진국이 부도덕한 기업 제품을 사지 않는 것처럼 장애인을 우대하는 기업 제품을 널리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고민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정식 절차 거쳐 선임, “지켜봐달라”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높아진 계기는 무엇입니까?

“1986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레이건 대통령이 참석하는 조찬기도회에서 장애인 파라다이스를 봤습니다. 내가 그리고 있는 것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개념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막 어울려서 지내는 모습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런 장면을 보게 됐죠. 당시 행사장 앞에는 미디어 센터도 있었는데 어느 미국 방송국 카메라맨이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휠체어를 타고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위의 스텝들은 그 카메라맨을 도우면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거기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장애인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세련된 모습으로 자유롭게 일을 하는데 누구하나 휠체어를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죠. 당시 한국은 장애인들 대부분이 재가 장애인으로, 시설에 수용된 극소수의 장애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이동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 집에만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장애인이 대우받는 사회는 일단 이동권부터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국회에 가서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 안 되면 준공검사를 내주지 말라고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장애인 단체들은 “공단의 이사장은 장애인의 감수성을 이해하고 장애인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장애인 당사자’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대 이사장들도 대부분 장애인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단체들의 주장이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의 피해 받는 마이너리티로서 장애인들이 느끼는 감정을 장애인 감수성으로 정의한다면 공단 수장에 비장애인의 임명은 정서적인 차원에서 일부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장애인의 감수성을 이해한다는 것과 그러므로 공단 이사장은 ‘장애인 당사자’여야 한다는 말 사이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습니다. 만일 단체가 구성원 즉 이너 서클의 공동이익을 위한 사적인 단체라면 이른바 당사자성이 그 단체의 장을 선출함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사적인 자치단체가 아니라 장애인고용과 관련한 법·제도적 환경을 유리하게 이끌며 기업을 고용의 현장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공공기관입니다. 공단의 주 고객은 장애인이고 기업인이지만 또 한편 정부, 정치인, 언론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모두를 아우를 수 없는 ‘당사자성’을 공공기관 이사장 선출의 전제로 삼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공단 20년 역사에서 최근 약 10년 동안을 장애인 당사자 분들께서 이사장직을 수행하셨습니다. 이는 그분들이 종합적인 면에서 다른 후보자보다 나은 평가를 받으셔서이지 장애인 당사자성이 임용을 결정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관련 분야의 전문성도 그렇습니다. 물론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은 중요하죠. 하지만 CEO로서의 전문성, 즉 폭 넓은 식견과 리더십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하나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제 입장을 말씀드렸지만 저의 임용과 관련해 ‘내가 맞다 당신이 틀렸다’고 칼로 무 자르듯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정해진 공모절차를 밟아 정해진 배점기준에 의한 평가를 거치고 임용권자로부터 임용을 받은 저로서는 여러분들께 좀 지켜봐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꿩 잡는 게 매 아니겠습니까?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생계 유지가 핵심이 아니다

장애인의 자립적 경제활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 장애인 정책의 핵심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중요성은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양 이사장께서 그동안 고민해 오신 장애인 문제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저보다 더 핵심을 꿰고 계신 것 같습니다(웃음). 맞습니다. 그것이 법에서 밝힌 공단의 설립목적입니다. 덧붙인다면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구현해야지요. 제가 취임사에서 한 얘기인데요. 80년대 후반 광주에서 만난 한 장애인 대학생이 제게 ‘우리는 선배들처럼 구석에 틀어박혀 도장만 파고 있진 않겠다. 정시에 출퇴근 하는 그런 직업을 갖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오늘의 이 자리에까지 저를 오게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도장 파는 기술로 기초생계는 해결이 됐거든요. 하지만 그 친구가 필요로 한 것은 생계유지가 아니라 남들처럼 일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공단이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장애인고용 비률이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현재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여전히 법정기준보다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의 기본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정부 및 지자체는 2009년, 공공기관은 2010년에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2%에서 3%로 상향조정되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각각의 2009년 장애인 고용률이 1.97%, 2.11%란 점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들 부문의 경우 장애인 고용률을 기관평가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매년 탄력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공단도 정부부문이나 각 지자체의 중증장애인 고용을 계속 독려하고 있으며, 이사장인 제가 발 벗고 뛰어들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문제는 민간기업, 그 중에서 대기업입니다. 근로자수 300인 미만 규모의 사업장 고용률이 2.10%인 것에 비해 비슷한 규모로 의무고용부담을 진 1,0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2009년 말 기준 장애인 고용률이 1.52%밖에 안 됩니다. 저는 이 문제를 대기업의 적극적인 고용의식이 부족한 탓으로 보고 있습니다. 장애인 채용이 미진한 이유를 대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적합 인력의 부족’인데요, 이는 ‘채용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서 소극적인 쪽을 선택한 후 나오는 일종의 핑계일 수 있습니다.

공단은 여러 대안을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맞춤형 직업훈련을 통해 삼성전자, 캐논 코리아 등의 유수의 기업에 우수 장애인력을 공급하고 있으며, 총 195개의 기업들과 장애인고용증진협약을 맺어 각 회사의 장애인 적합 직무를 공동 개발, 고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뜻은 있지만 업종의 특성 등의 이유로 장애인 채용이 어려운 회사에게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제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기업이 근로자의 30%이상을 장애인으로, 이중 절반 이상을 중증장애인으로 고용하는 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설립비용 일부를 공단이 지원하며, 이러한 자회사의 장애인 고용을 모회사의 장애인고용에 포함시켜주는 제도로 이미 포스코, NHN등의 대기업이 성공리에 운영 중입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다른 기관과의 정보 공유 통해 체질 개선

공단 이사장에 취임하기 전과 취임 이후 느끼는 공단에 대한 모습은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현재 공단 내부 변화와 발전을 위해 계획하고 계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특히 취임당시 강조하신 경영효률화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동안 기업을 직접 경영했습니다. 취임 이후 두 달 여를 지내보니 경영의 차원에서 민간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좋은 말로 하면 안정적인 경영이고 다른 면에서는 찻잔 속의 정체된 경영입니다. 준정부기관의 특성상 예산, 인사 등 경영의 많은 부분에서 CEO의 재량권이 적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생각해보면 CEO로서 추진력으로 쓸 수 있는 도구의 대부분을 저당 잡힌 셈이니 답답한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희망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하나가 직원들이 단단한 직업적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입니다. 비록 공공기관의 특성상 자신의 생각을 어필하는 적극성은 좀 떨어지지만 윤활유만 조금 부어준다면 지금보다 더 펄떡일 수 있는 생명력을 갖는 조직으로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임기 동안 반드시 실행하고 싶은 사업이나 계획은 무엇입니까?

“협력, 경쟁기관과의 효률적인 네트워크 구축입니다. 공공기관은 경쟁기관이 없다고 하지만 많은 경우에 선의의 경쟁자가 있습니다. 공단의 경우에는 고용노동부 고용센터, 지자체의 일자리 센터, 복지기관 등이 협력, 경쟁기관입니다. 저는 군림하면 고립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대중지성의 시대입니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인터넷에 올려놓자 세계 각지에서 수일 내에 해결책이 올라오더란 기사는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웁니다. 구직 장애인의 경우 접근성의 문제가 중요한데 이 역시 전국 15개 지사밖에 없는 공단이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공단이 오픈해야 합니다. 공단이 강점을 갖고 있는 기업의 장애인 고용정보, 장애인 직업교육, 사례연구 등에 있어 언제든지 경쟁, 협력기관과 자료를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체질 개선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 공단을 위해서도 잘 된 것으로 외부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적합한 성과지표도 개발해야겠습니다. 소명과 용기를 가진 우리 직원들이 많이 도와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