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금속노조 주연테크지회
<67> 금속노조 주연테크지회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0.10.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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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견뎌온 들꽃 같은 노동조합
노조설립 이후 바람 잘 날 없어…190명 조합원 18명으로
노사간 비전 공유하며 상생할 수 있길 고대

ⓒ 주연테크지회

1988년 설립돼 22년의 역사를 갖는 (주)주연테크 컴퓨터(이하 주연테크)는 주로 완성품 데스크탑 PC를 제조, 판매, 수출하는 컴퓨터 하드웨어 기업이다. 그 외에도 노트북 컴퓨터, LCD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 등 컴퓨터 주변기기 역시 취급하고 있다. 주식분석 소프트웨어 업체였던 ‘주식연구소’에서 1992년 주연테크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지난 2007년 창업주인 송시몬 대표가 퇴진하고 현 이우정 대표로 교체됐다.

주연테크는 22년 동안 지난 2008년의 반분기만 적자가 났을 뿐 흑자 행진을 지속해왔다. 1,500억 원 이상의 연매출과 당기순이익 최고 80억 원을 달성하고 있으며 국내 토종 컴퓨터 업체 중 유일하게 코스피에 상장했다. 또한 은행부채나 어음 발행이 전혀 없으며 모범납세기업으로 표창을 받은 재정이 건실한 기업이다.

 

ⓒ 주연테크지회

공장 통폐합 반복…안양 이전 시 노조 본사점거 농성

지난 2006년, 주연테크 생산팀 직원들을 중심으로 금속노조 서울지부 주연테크분회가 설립됐지만 생산공장이 경기도 안양으로 이전함에 따라 2009년 2월, 금속노조 경기지부 주연테크지회(지회장 곽은주)로 새롭게 편제됐다.

1999년 이래 주연테크는 구로에서 양평동으로, 가산동으로, 다시 경기도 안양으로 생산공장을 이전 혹은 통폐합하면서 생산팀의 규모를 축소해 왔다. 특히 2008년 7월에는 금융위기 등으로 반분기 적자를 기록해 370여 명의 전 직원 중 202명을 희망퇴직 등의 방식으로 구조조정했다.

구조조정 당시 가산동 생산 공장의 임대계약이 만료된 상황에서 주연테크는 수도권 외곽으로 공장이전을 공표했으며 통근버스를 미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노조는 사측의 구조조정을 방지하고 공장이전을 저지하겠다는 의도로 대표이사 면담과 부분·전면파업, 본사집회를 진행했다. 노조가 본사사무실에서 5일간 농성을 벌이는 동안 회사는 본사를 폐쇄하고 재택근무를 단행했다. 이때 회사의 각종 자료와 노트북 등 기물을 가지고 나가려는 본사직원과 ‘자료는 두고 몸만 나가라’고 요구한 조합원들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닷새 후 공장이전 문제에 대해 노조가 양보하는 대신 회사는 본사직원 억류·폭행 혐의에 대한 조합원들의 민·형사상 책임을 구두 면제하는 조건으로 노사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안양으로 공장 이전 후 조합원들은 마포경찰서의 조사를 받아야 했고, 당시의 책임을 물어 올해 회사는 지회장과 부지회장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 주연테크지회


노조 설립 이후 매년 극심한 대립 반복

주연테크지회 곽은주 지회장은 “매년 지속적인 흑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생산 현장의 직원들은 매년 최저임금이 인상되기 때문에 임금이 인상되는 수준”이라며 “한해 상여금은 150여만 원이 전부고, 훨씬 더 자금사정이 안 좋은 회사들도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직원 복지도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열악한 환경”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생산 현장에는 냉난방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여름이나 겨울철 작업환경이 매우 안 좋고 직원 식당 같은 시설도 없기 때문에 작업 레일 위에 식판을 올려놓고 점심을 먹는다”고 덧붙였다.

노조 설립 직후 회사는 꾸준히 노조탄압을 위한 강공을 펴 왔다고 지회는 주장한다. 곽 지회장은 “주로 인사발령, 배치전환 등을 통해 조합 탈퇴를 강요하는가 하면 조합원 총회 참여를 방해하거나 조합원을 제외하고 여타 직원들의 임금을 일방적으로 인상하는 등의 방법도 사용한다”고 밝혔다.

노조가 설립된 지난 2006년 주연테크는 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으며, 코스피 상장 이후인 2007년 2월 26일, 송시몬 당시 대표이사는 59억 9,687만 원의 현금배당을 받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설립 6개월 만에 190여 명의 조합원 중 60명이 노조를 탈퇴했다.

ⓒ 주연테크지회

“노조활동 인정 받았으면”

주연테크지회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은 45세로 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을 둔 중년여성이 대다수다. 설립 이후 4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노조와 회사는 대립각을 세워왔으며 계속 반복된 파업과 투쟁으로 조합원들은 매우 지쳐있는 상태이다. 190여 명이었던 조합원은 어느새 18명으로 줄었으며 회사는 임대기간이 거의 만료된 것을 이유로 들어 안양 생산 공장 역시 이전 혹은 폐쇄를 검토 중에 있다. 게다가 지회장과 부지회장은 지난 8월 13일자로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은 상태이다. 곽 지회장은 이처럼 암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조합원들과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 나기 때문에 오히려 결속이 돈독해졌다”며 “규모가 작은 노조나 큰 노조나 해야 할 일은 늘 많기 때문에 죽겠다”고 웃음을 지었다.

주연테크지회가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노조활동을 당당하게 인정받는 것’이다. 곽 지회장은 “회사의 사정이 안 좋다면 임금을 동결하거나 조합원들을 독려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강구하는 등, 노사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조’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회사의 태도이며 쓰러뜨려야할 적으로 간주되다보니 마음의 상처도 크다”고 밝혔다.

주연테크 사내 한 구석에선 아직도 천막농성이 진행 중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비가 내린 콘크리트 바닥에 골판지 박스를 깔고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식판에 밥과 반찬을 가득 담아 농성장으로 가져왔다. “찬바람이 불기 전 천막을 보강해야겠다”는 얘기 등을 주고받으며 모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회사는 어느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직원들 모두의 소유”라고 곽 지회장은 밥알을 씹어 넘기듯 꼭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