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불살라야 교섭 성사되는 세상”
“몸 불살라야 교섭 성사되는 세상”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0.11.03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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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 노사, 점거농성 해제하고 교섭 재개
징계 수위 놓고 노사 입장차 여전

▲ 3일 오후 구미 KEC 공장 앞에서 열린 ‘KEC 투쟁승리를 위한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 참석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노동과세계
KEC 노사의 교섭이 재개됐다. 그동안 중단됐던 교섭이 재개되기는 했지만 쟁점사항인 징계 문제와 관련 노사간 입장차가 여전히 커 언제 교섭이 타결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은 3일 오전 KEC 사측 교섭대표인 이신희 생산본부장을 만나 교섭 재개와 점거농성 해제에 합의했다. 이날 양측이 합의한 교섭원칙은 ▲ 점거농성 해제 즉시 본교섭 재개 ▲ 노사간 요청이 있을 시 즉시 교섭 재개 ▲ 징계·손해배상·고소고발 최소화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분신 나흘 만에 본교섭 재개

합의한 대로 KEC지회는 이날 오후 2시30분에 기자회견을 열고 점거농성을 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결정으로 마지막까지 공장에 남아 있던 30여 명의 조합원들이 농성을 풀었다. KEC지회가 점거농성을 해제함에 따라 KEC 노사는 이날 오후 4시에 본교섭을 재개했다.

하지만 금속노조에 따르면 교섭만 재개됐을 뿐 노사간 입장차는 여전한 상황이다. 강지현 금속노조 선전홍보실장은 “교섭원칙으로 징계·손해배상·고소고발을 최소화한다고는 했지만 구체적인 수위는 향후 노사가 논의하기로 했다”면서 “징계 문제에 대한 노사간 입장차는 여전히 커 교섭이 언제 타결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6월 30일 직장폐쇄 이후 교섭을 중단했던 KEC 노사는 국정감사 기간에 교섭을 진행하기도 했으나, 타결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KEC지회는 이와 관련 지회 선전물을 통해 “사측이 국정감사 면피용으로 형식적인 교섭을 한 것일 뿐”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타임오프제도 실시에 따른 유급전임자 수를 놓고 KEC지회가 법이 정한 한도를 넘어 기존 전임자 유지를 주장해 교섭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KEC지회는 이 문제에 대해 “사측이 교섭에 응한다면 사측 주장을 수용해 법적 한도 이내로 전임자를 축소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특별한 쟁점도 없는 상태에서 교섭은 이뤄지지 않고 노사는 파업과 직장폐쇄로 대립한 셈이다. 전임자를 축소할 수 있다는 발표에도 교섭이 이뤄지지 않자 KEC지회는 “사측이 노조를 말살하려 한다”며 공장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금속노조, 11일 총파업

점거농성 10일째였던 지난 10월 30일, 사측의 요청으로 교섭대표 면담에 응했던 김준일 구미지부장이 분신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황은 급진전됐다. 사측 교섭대표를 만나고 나오는 김 지부장을 경찰이 연행하려 하자, 김 지부장은 준비했던 시너를 끼얹고 이에 항의하다 몸에 불을 붙였다.

김 지부장의 분신을 계기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며 중재에 나섰다. 결국 야당의 중재로 노사는 교섭대표 면담을 통해 교섭 재개와 점거농성 해제에 합의한 것이다. 김 지부장이 분신한지 4일 만의 일이다.

이와 관련 강지현 실장은 “공장을 점거하고 몸에 불을 살라야 겨우 정식 교섭이 성사되는 세상”이라며 “본교섭이 극적으로 시작된 3일 사실상의 첫 교섭에서조차 회사는 김 지부장을 향한 공개적인 반성과 사과 한마디 없었다”고 개탄했다.

한편 금속노조는 지난 1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된 대로 이날 오후 확대간부 4시간 파업을 벌였다. 파업에 참가한 확대간부 3천여 명은 이날 오후 구미 KEC 공장 앞에서 ‘KEC 투쟁 승리를 위한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열고 “김 지부장 분신에 대한 진상규명과 경찰청장 퇴진투쟁은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금속노조는 교섭이 진행되더라도 진전이 없으면 중집에서 결정된 대로 오는 7일 전국노동자대회 사전결의대회를 총파업 출정식으로 진행하고, 11일에는 금속노조 전 사업장에서 하루 동안 총파업을 벌일 계획이다.

현재 한강성심병원에서 화상을 치료 중인 김 지부장은 지난 1일 실시된 내시경 검사 결과 기도를 통한 화기환입이 없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병원 측은 1주일 뒤 악화가능성을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