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인디' 뮤지션들에게
배고픈 '인디' 뮤지션들에게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0.11.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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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故 이진원을 애도하며

▲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참여와혁신>의 사무실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습니다. 사무실 식구들끼리 회식자리라든지, 머리가 복잡하고 도무지 일이 잘 안 풀리는 데 동료 기자분들과 눈빛이 마주쳤다든지, 이러저러 이유삼아 가끔 사무실 근처에서 '한잔' 기울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홍대 지하철역 쪽으로 조금 걸어가다보면 '레게치킨'이라는 상호의 술집이 있습니다. 몇 차례 가보자고 제안하긴 했지만 번번이 사람이 너무 많아 다른 집으로 발길을 돌린 적이 있습니다. 아직 한 번도 못 가본 가게니 딱히 '홍보'하려거나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아무튼 다른 분들의 말로는 "분위기도 독특하고, 음식도 괜찮고, 흘러나오는 음악도 훌륭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검색을 해 봤더니 나름대로 유명한 장소였더군요. 가게 사장님이 인디밴드 '머스탱스'의 드러머 류광희랍니다. 머스탱스는 앨범도 두 장이나 낸 그룹입니다.

인사동 쌈짓길 지하에는 '살롱 드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술집이 있습니다. 이곳 역시 좀 오래된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이 운영합니다. 밴드의 열렬한 팬인 지인의 소개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이석원이 음악을 하게 된 동기라든지, 음악한다며 고생한 얘기는 참 '가관'인데 언니네 이발관 홈페이지 www.shakeyourbodymoveyourbody.com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주소가 참...

한 음반제작자가 생활고를 겪다 치킨집을 차렸다고 합니다. 평소 절친한 '넥스트'의 기타리스트 김세황이 가게를 찾아왔는데, 그날따라 배달이 너무 많아 바쁜 나머지 김세황에게 "미안한데 배달 하나만 해주라"하고 부탁했답니다.

김세황이 순순히 그러마고 승낙하고 치킨을 시킨 집을 찾아가 현관 벨을 눌렀습니다. 안에서 나온 것은 10여 가지 악기를 프로급으로 다룬다는 '천재 뮤지션' 정재일이었습니다. 치킨을 들고 있는 '한국 최고의 속주 기타'를 보고 정재일은 "세황이형..."하고 말을 잇지 못했답니다.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故이진원의 생전 라이브 무대. '스끼다시 내 인생'을 부르기 전 멘트를 하고 있다. ⓒ YouTube.com

위에 언급한 사례들은 그래도 '먹고 살만한' 수준일 것입니다. 엊그제 뉴스에서 부고를 읽었는데, 1인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대단한 팬 수준은 아니지만 인디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매우 애석한 소식이었습니다. 조금 더 기사들을 뒤적여보니 씁쓸한 얘기도 전해지더군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 업체에서 고인에게 음원 사용료로 '도토리'를 지급했다는군요.

'숙명'이란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하긴 하지만, 인디 뮤지션들에게 가난은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업 자본이 아닌 독립 자본으로 음악 생활을 꾸려나가기에 그래서 '인디' 아니겠습니까?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인디' 뮤지션은 존재적으로 더 이상 인디 뮤지션이 아니잖습니까? 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문화의 상징이었던 너무나 유명한 밴드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 역시 자신의 음악이 더이상 '대안(Alternative)'이 아닌 주류가 된 현실에 좌절과 우울을 느끼고 자살을 택했습니다.

취미로 직장인 밴드 활동을 하는 후배에게 인디 뮤지션이 진짜 그렇게 가난한지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생활은 유지되지 않겠어?"라는 물음에 "턱도 없지"라고 답합니다.

사실 후배의 밴드는 지금 거의 공중분해된 상태입니다. 공연 무대에 서게 되면서 점차 그 흥분과 감동에 심취하게 된 몇몇 멤버가 전업 활동을 선언하면서 다니던 직장도 팽개치게 됐고 '숙명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면서 취미로 활동하던 다른 멤버들과 불화를 겪게 된 것이 이유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번역이나 창작 인세가 참 생각보다 적구나'하고 느낀 적이 많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책이 순조롭게 팔린다면야 생계에 보탬이 되겠지만, 기울인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어딘지 좀 박하단 느낌이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창의적인 정신 노동'을 하는 것이 의미있고, 어딘지 품격이 높아보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가만 보면 참 '가치'없습니다. 정정할까요? 정신 노동의 보상을 많이 받는 쪽과 적게 받는 쪽의 간극이 너무 크게 벌어집니다. 많이 보상 받는다고 꼭 품질이 더 좋은 것은 아닌데 말이지요.

사실 정신 노동의 품질을 계량화해서 등급을 나눈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습니다. 단순히 대중들의 선호만 가지고 품위를 나눠버린다면 '저주받은 걸작'들 조차 앞으로 보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제 일상은 갈수록 퍽퍽해지겠지요.

배고픈 예술인이 어디 인디 뮤지션들 뿐이겠습니까? '도토리'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면서 단지 '좋아서' 음악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둘이겠습니까? 그분들께 조용한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당신들의 음악에 오늘도 저는 잠시 즐거워합니다.

마지막으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쓰끼다시 내 인생'의 가사를 소개해 드립니다.

졸업하고 처음 나간 동창회
똑똑하던 반장놈은 서울대를 나온 오입쟁이가 됐고
예쁘던 내 짝궁은 돈에 팔려
대머리 아저씨랑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뭐 잘났나?

이사와서 처음 나간 반상회
영이엄마 순이엄마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게 지겨워
반상회비 던져주고 나오는데 좀 조용히 살라네
그것도 노래라고 하나요?
그래 내가 뭐 잘났나?

취직하고 처음 갔던 야유회
맘에 두던 미스리를 배불뚝이 부장 치근덕거려 죽겠네
매일 낮 점심시간 둘이 만나 쿵덕쿵
그 짓거리 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하지만 나는 뭐 잘났나?

스매끼리 찾아라
임성훈 등장했다 아침이다 이다도시 시끄러워
스끼다시 내 인생
언제쯤 사시미가 될 수 있을까?

스끼다시 내 인생
스포츠신문 같은 나의 노래
마을버스처럼 달려라
스끼다시 내 인생

 

박종훈의 테아트룸(Theatrum) 

테아트룸(Theatrum)은 라틴어로 극장을 의미한다. '극장'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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