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그가 꿈꾼 내일
어제의 그가 꿈꾼 내일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0.11.0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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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립
“내가 하릴 없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그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었으리라.”

살아가면서 벽에 가로막히거나 주저앉게 될 때, 그럴 때마다 떠올리고 되뇌게 되는 경구가 하나 정도는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늘 저 말을 떠올립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 처음 들었던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들었던 것인지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 말의 출처가 궁금해져서 웹 검색이 보편화된 후 몇 차례 검색도 해봤지만 널리 쓰이고는 있으나 그 시작을 밝혀놓은 글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 독자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 중 하나가 바로 수많은 ‘열사’들의 존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열사라는 칭호의 지나친 확대 적용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나라에는 열사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도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스무 몇 해 전 한 집회가 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문익환 목사가 연단에 올라 열사들의 이름을 따라 외쳐보라고 합니다. 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이렇게 목이 터져라 수많은 열사들의 이름을 선창하던 문 목사가 마지막으로 외친 이름은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습니다. 폭소와 환호가 뒤섞였지만 억압하고 군림해온 정치권력과, 자의든 타의든 그 힘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기묘한 조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소중하지 않은 이름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2010년 가을에 특히나 많이 떠올리게 되는 이름이 바로 전태일입니다. 올해로 딱 40년이 됐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스물둘 청년 전태일은 그렇게 떠났습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전태일을 알게 된 후 쭉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학교 교육조차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스물둘 재단사 청년의 성찰의 깊이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육필 일기와 메모들에 담긴 내용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어 하는 세상에 대한 구체적 비전, 그리고 공동체와 약자에 대한 따스한 시선까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청년 전태일은 꿈을 꿨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했고, 그리고 이를 실천하려 했습니다. 깊은 좌절감도 맛봤지만 스스로를 내던지면서 그 꿈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꾸도록 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 속에는 전태일이 꿈꿨던 내일의 일부가 실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한 것들이 더 많습니다. 철학과 연대는 오히려 어제의 그것보다 더 후퇴해 있습니다.

그래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일을 꿈꾸면서 오늘을 살아냅니다. 우리가 꿈꾼 내일이 누군가의 오늘이 될 것이고, 그 누군가들이 또다시 내일을 꿈꿀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