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배출의 산실, 두중과 현중을 가다
명장 배출의 산실, 두중과 현중을 가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2.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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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 체계적 명장 배출 시스템 VS 현대중공업, 동기부여 강조
개별 회사 넘어 전체 기능인력 롤모델로

▲ 두산중공업에서 제작된 신고리3호기 원자로를 선적하고 있는 모습 ⓒ 두산중공업
‘명장(名匠)’은 최고의 기능인에게 주어지는 가장 영광스런 칭호다. 명장으로 선정됐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또한 기술력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될 만한 품성도 지녀야 오를 수 있는 위치가 명장이다. 그런 만큼 명장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다. 한 분야에서 수십 년씩 기술을 갈고 닦아 그야말로 권위자가 돼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도 챙겨야 한다.

그러니 열정이 없으면 애초부터 갈 수 없는 길일 수도 있다. 기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명장을 꿈꿨을 테지만, 명장에 도달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한 명의 명장이라도 배출한 기업은 덩달아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명장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은 만큼 명장을 배출한 기업도 많지 않다.

▲ 현대중공업 전경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하지만 여기에 소개하는 두산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예외다. 두산중공업에는 현재 명장 11명, 품질명장 22명이 근무하고 있고, 현대중공업에는 명장 10명, 품질명장 13명이 근무하고 있다. 퇴직한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한 명의 명장을 배출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이 두 회사는 거의 매년 명장을 배출하고 있다. 이 두 회사에서 이렇게 많은 명장을 배출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매년 명장 배출하는 회사

지난해만 하더라도 두산중공업은 명장, 품질명장, 서비스품질명장을 각각 1명씩 배출했다. 현대중공업도 이에 질세라 2명의 명장을 배출했다.

두산중공업에서 지난해 배출한 명장은 모두 3명. 비파괴검사 분야에서 명장으로 선정된 박현근 직장, 제조부문 품질명장으로 선정된 원자력공장 장성호 직장, 서비스품질명장으로 선정된 직업훈련 컨소시엄사업단 김병희 직장이 그들이다.

▲ 두산중공업 명장들. 왼쪽부터 박현근, 김기현, 김병희, 추연도, 장성호 명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김병희 직장은 한 개도 어렵다는 명장 칭호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전산응용가공 분야에서 명장으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해 두 번째로 서비스품질명장에 선정됐다. 2008년 명장에 선정된 후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기술교육센터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했던가, 교육 분야에서도 능력을 발휘해 지난해 서비스품질명장에 선정된 것이다.

장성호 직장은 원자로를 제작하는 원자력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원자로 제작에만 몰두하다 보니, 초창기 원자로를 제외하면 두산중공업에서 제작된 거의 모든 원자로가 그의 손을 거쳐 갔다. 최근 모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던 신형 원자로도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장성호 직장은 끊임없는 혁신활동으로 공정을 개선한 끝에 지난해 품질명장으로 선정됐다.

모든 발전기에서 핵심부품을 꼽으라면 로우터(rotor : 회전자. 발전기 등 회전하는 기계에서 회전하는 부분)를 들 수 있다. 어떤 발전기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로우터를 회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발전기에 들어가는 로우터는 그 무게만 해도 수십 톤에 달할 정도다. 이런 로우터의 결함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서는 비파괴검사 기술이 필요하다. 박현근 직장은 초음파를 사용한 비파괴검사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지난해 명장에 선정됐다.

▲ 현대중공업 손병주 명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한편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해 2명의 명장이 배출됐다. 선박건조 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박흥섭 기감과 기계정비 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손병주 기감이 그들이다.

선체건조 기능사, 용접 기능장 등 다수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박흥섭 기감은 선박건조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다. 선박건조와 관련된 3건의 국내·국제 특허도 가지고 있다. 평소 현장의 어려운 작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공정·공법을 개선하려 노력한 결과 지난해 선박건조 분야 명장으로 선정됐다.

손병주 기감도 이에 못지않다. 올해 8월이면 근속 30년이 되는 손병주 기감은 배관과 기계조립 부문 기능장 자격증을, 중장비 관련 기능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손병주 기감은 현재 현대중공업 보전2부에 근무하고 있다. 보전2부는 현대중공업의 각 부서에서 사용되는 각종 공작기계를 정비하고 유지·보수하는 지원부서. 지난해에는 공작기계 정비기술과 부품을 국산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계정비 분야 명장으로 선정됐다.

두산중공업의 체계적 명장 배출 시스템

두 회사가 이렇듯 경쟁적으로 명장을 배출하고 있는 것은 공히 기능인을 우대하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데에 힘입은 바 크다.

두산중공업이 기술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는 지난해 기술교육에서 명장이 배출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는 곧 최고 품질의 제품으로 연결된다. 두산중공업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원자로를 제작하고 있는 곳이다. 두산중공업에서 제작된 원자로는 국내 원자력발전소는 물론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원자로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은 독일, 스웨덴, 영국, 일본 등 소수의 나라들만 보유하고 있다. 원자로 제작기술을 보유한 나라들 사이에 한국이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두산중공업에서 원자로를 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의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한국을 몇 안 되는 원자로 제작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 로우터에 대한 비파괴검사를 수행하고 있는 박현근 명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두산중공업은 기술을 중시하는 만큼 기술을 교육하는 데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병희 직장이 근무하고 있는 기술교육센터는 두산중공업 기술의 산실로, 직원들의 직무교육과 함께 협력사에 대한 교육도 담당하고 있다. 이 같이 두산중공업이 협력사의 능력개발을 지원하는 직업훈련 교육은 ‘직업훈련 컨소시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고용노동부의 위탁을 받을 정도로 그 우수성을 인정 받고 있다.

지난해 명장으로 선정된 박현근 명장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화를 보면 기술을 중시하고 기능인을 우대하는 두산중공업의 기업문화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한 번은 사장님이 저에게 ‘자네 사무직으로 전직하게’ 하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는 ‘싫습니다’ 했죠. 사장님이 이유를 묻기에 저는 ‘제 분야에서 최고의 기능인이 되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사장님께선 두 말 없이 ‘그럼 최고가 되어 보게’ 하시더군요.”

신입사원이 회사 임원의 이야기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도, 회사의 대표가 신입사원의 대답에 흔쾌히 그러라고 하는 것도,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두산중공업은 지금과 같은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고, 다른 기업과는 달리 해마다 몇 명씩의 명장을 배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동기부여 애쓰는 현대중공업

▲ 현대중공업에서 선박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현대중공업도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두산중공업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에서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드러나는 방식은 두산중공업에서의 그것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두산중공업에서는 각종 교육 등을 통해 체계적인 기술교육과 전수가 강조되고 있는 반면 현대중공업에서는 물론 기술교육 시스템은 갖추고 있으나, 그보다 우수한 기능인이 돼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물론 두산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 모두 기술을 교육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교육시설을 가지고 있다거나, 이러저러한 보상을 통해 동기유발을 하는 점에서는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서로 강조하는 부분이 조금 다르다는 것일 뿐이다. 두산중공업이 체계화된 교육시스템에 좀 더 무게를 둔다면 현대중공업은 동기부여에 좀 더 무게가 쏠린다는 것뿐이다.

현대중공업에서는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한 경우 수당으로 보상을 함으로써 구성원 스스로가 노력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한 기능인들이 모여 구성한 기능장회에는 현재 6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기능장회에 모인 기능인들 중에서 명장이 배출되는 것이다.

명장이 되면 전체 임원진 앞에서 표창을 받는 모습이 사내TV를 통해 방송되고 인터뷰가 방송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딱히 어떤 보상을 받았다는 것보다, 사내 구성원들로 하여금 나도 저 자리에 가야겠다,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 힘쓴 결과 구성원들은 ‘스스로 기술의 현대에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명장 모임에서도 차이나

▲ 작업에 대해 상의하고 있는 손병주 명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두 회사는 명장들의 모임에서도 차이가 난다. 두산중공업 출신 명장들은 명장협의회를 중심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 명장협의회는 명장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명장이 되고 싶다고 해서 첫해에 바로 명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산중공업처럼 체계적인 지원을 하더라도 3~5년이 걸려야 명장 칭호를 획득할 수 있다.

명장협의회는 명장이 되려는 후배들에게 체계적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하거나 격려를 하는 등의 지원을 주요 활동의 하나로 하고 있다. 이런 준비가 두산중공업에서 명장을 많이 배출하는 한 가지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명장이 되려 하는 후배를 발굴해 준비하거나 하는 명장들의 모임은 없다. 두산중공업과는 달리 현대중공업에서는 명장이 되려면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다만 체계적인 모임을 통해서가 아니라, 친분이 있는 선배를 찾아가 조언을 요청하고 도움을 주는 경우는 있다. 그보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오히려 기능장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조언을 하는 선배들이 많은 편이다.

명장협의회가 아닌 기능장회가 활성화돼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현대중공업 기능장회는 지역의 마이스터고교 등과 멘토-멘티 관계를 맺어 기능인력을 양성하는 데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향후 현대중공업은 물론 우리나라의 기술을 이끌어갈 인재의 풀이 되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눈뜬 대·중소기업 상생

▲ 두산중공업 원자력공장 전경 ⓒ 두산중공업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관심이 높아진 부분이 대·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이다. 과거 대기업이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정책이 자리를 잡았고,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는 문제제기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한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하게 됐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하루아침에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기술이 대기업에 집중돼 있고, 중소기업은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그 핵심에 놓여 있다.

두산중공업은 오래 전부터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위해 힘쓰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다. 이미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이 이슈가 되기 전부터 두산중공업은 협력사를 지원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이름으로 나가는 제품이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두산중공업이 모든 것을 제작할 수는 없다. 협력사의 도움은 따라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협력사가 두산중공업에서 요구하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협력사 역시 두산중공업 만큼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런 점에 주목한 두산중공업은 협력사와의 상생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 중 하나로 두산중공업 기술교육센터는 두산중공업 직원뿐만 아니라 협력사에 대해서도 기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명장들은 기술교육센터에서 교육을 하는 강사로서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기술교육센터에 모여서 하는 교육뿐만 아니라 문제가 발생한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하는 교육에도 적극적이다.

현대중공업 역시 협력사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문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 명장들이 강사로 나서는 것 역시 두산중공업과 마찬가지다. 협력사에 대한 교육도 특성에 맞게 체계적인 교육을 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협력사에 대한 기술지원이 아직까지 두산중공업만큼 체계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명장은 기능 인력의 롤모델

▲ 제작 중인 원조로를 설명하고 있는 장성호 명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명장이 배출됐다는 것은,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매년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회사의 기술력이 높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두산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체계적으로 명장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지만, 기술력으로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기업들이다.

이미 수많은 명장을 배출한 두산중공업은 창원 공장 안에 ‘명장의 거리’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명장을 보고 배우려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다. 명장들은 후배들에게 두산중공업의 인재상을 구현하고 있는 롤모델이 되는 셈이다.

현대중공업은 명장의 거리와 같은 가시적인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할 계획은 아직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후배 직원들에게 명장이 롤모델이 된다는 점은 두산중공업과 마찬가지다. 명장을 보고 따라 배우려는 후배들이 많아지면서 노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점도 회사에는 큰 이점이 된다. 명장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동부터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장은 비록 두 회사에서 배출됐지만, 두 회사만의 명장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능인력을 대표하는 롤모델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현대중공업 손병주 기감이 소개한 현대중공업 공장 벽에 씌어 있다는 문구는, 그래서 두고두고 음미해야 할 문구가 아닐까?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고,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