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싶지만 노동자는 아니다?
일하고 싶지만 노동자는 아니다?
  • 이순민 기자
  • 승인 2011.02.27 19:27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익대 집단해고 사태를 통해 본 대학생들의 노동 인식
자신과 노동자는 다르다?…노동에 대한 인식 제고 필요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홍익대 청소ㆍ경비ㆍ시설노동자들의 집단 해고와 이에 반발한 노조원들의 홍익대 본관 점거농성은 많은 사회적 이슈를 양산했다. 이번 홍익대 사태로 대학뿐 아니라 대형 시설물을 관리하는 청소ㆍ경비ㆍ시설ㆍ주차 요원들의 낮은 처우와 고용불안 문제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들과 노동자들 간의 이질감 또한 화제가 됐다.

한때 대학생들은 노동자들의 동지로서, 지원군으로서 노동운동의 사회적 선봉 역할을 자임했었다. 극단적으로는 ‘노동자 우상화’라고 말할 정도로 노동자들에 대한 신망과 신뢰를 보내줬던 과거의 대학생들과 달리 2011년을 살아가는 현실의 대학생들은 학교 현장에서 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지난 2월 20일, 집단해고에 반발해 49일간 본관을 점거농성 중이었던 홍익대 청소ㆍ경비ㆍ시설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측과 전원 고용승계, 임금인상, 전임자 인정 등을 합의하고 농성을 해제했다. 그러나 대학생과 노동자라는 이질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홍익대생, 집단해고 사태를 말하다

집단해고에 반발한 청소 노동자들의 본관 점거농성이 시작되자 홍익대 총학생회는 지난 1월 6일 “학생의 환경을 지켜주셨던 노동자분들이 아닌 외부 세력의 학내 점거 농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유라도 반대하는 입장이며, 학생들의 편의나 학습에 지장을 주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음”이라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또한 시험기간을 이유로 옥외 집회의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홍익대 총학생회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공식적으로 노조에 사과를 하기도 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참여와혁신>은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렸던 지난 2월 15일 오후, 홍익대 캠퍼스를 찾았다. 집단해고 사태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학내로 들어가자 정문을 사이에 두고 떠들썩한 밖과 달리 학교 안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방학 기간이었지만 학생들은 많은 편이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에 대해 묻자 ‘관심 없다’고 반응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내용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다’는 사람이 많았다. 아르바이트를 간다며 바쁜 발걸음을 옮기던 김 모씨(2학년, 22세)는 “노동자들의 권리는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굳이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굳이 내가 뭐라고 할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3자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학교의 이미지 훼손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 모씨(대학원생, 25세)는 “학교가 시끄럽고 지저분해져서 보기 좋지 않다”고 불평했다. 다른 측면이지만 이 방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김 모씨(4학년, 27세)는 “농성이나 현수막 등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관심이 부족하다. 지금의 방법이 옳은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디 홍익대 뿐이랴!

대학교 비정규직 문제는 홍익대만의 얘기는 아니다. 대다수의 대학들이 청소ㆍ경비 등의 업무를 용역업체에 맡기고 있다. 재계약 시점이 될 때마다 갈등이 불거지는 건 이미 보편적 현상이다. 이번 홍익대 문제가 주목 받은 건 총학생회의 대처, 배우 김여진 씨 등 ‘외부세력’의 활동이 화제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한양대 ERICA(안산)캠퍼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양대도 홍익대처럼 청소노동자들을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하고 있었다. 기존 용역업체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학교는 다른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새로운 용역업체는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노조에 가입된 이들을 배제했다. 역시 집단해고된 셈이다. 이후의 전개 양상은 홍익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고 노동자들은 두 달여간 본관 점거 농성을 했다. 음독하는 노동자도 나올 만큼 사태는 격화됐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무관심했다. 총학생회가 나서서 노동자들에게 물과 식료품을 지원하며 학생들의 참여를 호소했지만 힘에 부쳤다. 한양대 학보 ‘한대신문’의 편집국장 안원경 씨(신문방송학과 3학년)는 “총학생회와 ‘한양 서포터즈’등 일부 학생들을 제외한 일반 학생들의 참여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문제는 학내 농성ㆍ파업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이 단순히 무관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학교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대외적인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을 우려한다. 학교의 명성이 자신들의 취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안원경 씨는 말한다. “대학 사회에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가장 작은 사회인 대학에조차 관심이 없습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누가 그들을 탓하랴!

대학생으로서 연 평균 1천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내도 취업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 ‘내’가 노동을 비롯한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학점을 올리고, 외국어를 배운다. 이력서 항목에 있는 어학연수, 인턴, 공모전 입상 경험을 공란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삶의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나날이 ‘업데이트’된다. 불안감은 당장 ‘나의 문제’에 집중하게 만든다. 사회 참여가 취업에 불이익으로 작용할 거라는 부담감도 있다.

사실 노동 문제가 대학생들에게 ‘남’의 일은 아니다. 그들 모두가 ‘예비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노동ㆍ노동자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당한 임금이나 대우를 받아도 인식조차 못하거나 그냥 감수한다. ‘88만원 세대’를 기다리는 건 ‘워킹푸어’가 대부분인 게 현실이지만 ‘나’만은 ‘4천원 인생’을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는 노동에 대한 근본적 시각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선배들이야 자체적인 소모임, 써클 활동 등을 통해 교육이 진행됐다지만 요즘 대학생들이 노동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나 있었는가. 노동과 노동자는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요즘 인천대에선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의 퇴출 문제로 시끄럽다. 하종강 소장이 강의했던 ‘한국사회와 노동문제’는 5년 전 학생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강좌다. 한 학기에 200여 명의 수강생이 듣고, 최상위 강의 평가를 받을 만큼 반응도 좋았다. ‘한국사회와 노동문제’ 강의를 들었던 부총학생회장 최성용 씨(경제학과 4학년)는 “사회에서 알려주지 않고, 미디어에서 보여주지 않는 노동 문제를 명쾌하게 짚어준 수업이었다”며 “노동에 대한 인식과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자격미달을 이유로 학생들과의 협의도 없이 강사를 교체했다.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하종강 소장을 지지하는 노력이 펼쳐지고 있지만 학교는 묵묵부답이다. 초ㆍ중ㆍ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의 교양 강좌에서도 여전히 ‘노동’은 설 자리가 없다. 대학생들 입장에서는 배워본 적도 없는 일에 관심과 참여를 요구받는 건, 억울한 일이다.

대학생들은 일하고 싶어 한다. 달리 말하면 ‘노동하고 싶다’는 바람이기도 하다. 대학생들이 노동에 무관심한 건 ‘일’과 ‘노동’의 개념을 분리해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분리된 상태로는 위험하다. 노동문제의 해결은커녕 구조적인 심화를 낳을 수도 있다. “노동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많은 것들을 풀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못 풀고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고려대 최장집 교수의 지적은 이런 부분에서 귀담아 들을 만하다. ‘청년유니온’ 대학생 모임에서 활동하는 김형근 씨(26)는 “내가 하고 있는, 하려는 일의 가치를 인식하고, 함께 모여 얘기하며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때 ‘사회 변혁의 주체’였던 대학생들은 지금, 사회 변화의 풍랑 속에서 자신의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