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맹 활성화 위해 이제 깃발을 흔들겠다”
“연맹 활성화 위해 이제 깃발을 흔들겠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03.3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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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서울호텔 노조위원장 6선의 경력…‘장기집권’엔 이유 있어
경호업체·외식업체 등 조직 확대 위해 노력할 것
[인터뷰 3] 서재수 전국관광서비스노련 위원장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이하 관광서비스노련)은 지난 2월 25일 열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제15대 위원장으로 서재수 후보를 선출했다.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 6선 위원장 출신인 서재수 후보는 14대 집행부 상임부위원장이었던 이제민 후보와 총 선거인 140명 중 14표 차 접전을 벌이며 당선돼 앞으로 3년간 연맹을 이끌게 됐다.

1994년 서른둘의 나이로 단사 위원장에 당선돼 내리 18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서재수 위원장은 “인터뷰만 하면 ‘공산당’이니 ‘독재’니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껄껄 웃었다. 이제 막 인수인계를 끝내고 산별연맹 위원장으로서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들어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장기 집권?…항상 조합원과 함께 해 와

늦었지만 당선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 앞으로 연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 부탁드린다.

“선거운동 기간 연설을 통해서도 많이 얘기했지만 무엇보다도 현장 중심의 연맹 위원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타임오프와 복수노조 문제 관련해 단위 노조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그간 연맹에서 많은 관심을 두지 못했다. 앞으로는 노사분규가 발생하든지, 타임오프와 관련해 문제가 생기든지 하면 총연맹과 연계해서 적극적으로 막아내겠다고 약속한 것이 가장 핵심적이다. 지난 1월 당선된 이용득 집행부의 큰 기조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당선 이후 3월 17일에서야 인수인계가 모두 끝났고 내주부터 본격적으로 연맹의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현장 순회 등으로 매우 바빠질 듯하다.”

‘장기 집권’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웃음). 조합원들이 오랜 시간 지지하는 이유가 뭔가?

“그 질문을 항상 받는다. 단사 위원장 6선을 했다. 그것도 지난 선거에선 98% 지지율로 당선됐다. 남들은 무슨 공산당이냐는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위원장직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항상 조합원들과 함께 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결국 조합원들의 ‘민심’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대표자를 간선제로 선출하는 상황이라면 공산당이니 장기독재니 하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겠지만, 조합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투표에 참여해 선출한 것이니 그 기대에 열심히 부응하고 보답해야겠다.

조합원들은 위원장이 자기와 가까이 있다는 것에서 든든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사실 임금 협상이나 이런 부분은 어느 노조에서 신경을 안 쓰겠나? 항상 조합원들 곁에서 거만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는 것이 철칙이다. 매일 양복을 입는 것도 호텔이라는 사업장에서 날마다 많은 고객들을 만나게 되는 조합원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항간에서는 ‘거만하게 양복만 입고 다닌다’, ‘노동계가 아니라 정치권에 진출할 심산’이라는 식의 음해도 있었지만 어이없는 얘기라 신경을 쓰지 않았다.”

노조 위원장 당선 후 초유의 ‘호텔 파업’ 주동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첫인상은 ‘댄디’한 모습이 호텔리어로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본래 노조 활동에 관심이 많았나?

“호텔 생활을 한 지도 25년이 됐는데, 처음부터 호텔 매니저가 되고 싶었다. 남들에게 ‘너는 겉모습만 봐도 딱 호텔 매니지먼트를 위한 틀’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플라자 호텔에 있다가 르네상스 서울 호텔로 옮겨 와서 매니저의 꿈을 갖고 일을 하게 됐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노조 조직국장으로 활동했다. 노동조합이 뭔지, 노동법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마침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게 됐는데 당시 3대째 노조 위원장이 파업이 예고된 상태에서 회사와 야합을 했다. 당장 내일 아침 아홉시에 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새벽 3시에 회사로부터 몰래 돈을 받고 사인을 한 것이다.

그런 와중이니 당시 750명 정도 되는 조합원들이 다 도망가고 백여 명밖에 안 남은 상황이 됐다. 집행부의 인원들도 그 소식을 듣고 다들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주동이 돼 조합원 이탈을 막아보자고 몇몇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호텔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런데 호텔 내부에는 곳곳에 CCTV가 많이 설치돼 있지 않나. 회사는 CCTV를 통해 내 얼굴을 확인하곤 ‘쟤 도대체 누구냐’며 말이 많았다. 소위 그때부터 찍힌 것이다.

파업은 물거품이 되고 너무 억울해서 위원장 탄핵을 주도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회사는 주동자들을 색출해서 하나하나 해고하기 시작했고, 비록 나는 해고되진 않았지만 주동자로 찍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진급도 안 시키고, 지배인이나 상사들이 매일 업무로 스트레스를 주며, 힘들어 다들 기피하는 일들만 골라서 시켰다. 정말 버티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든, 아예 다른 직종의 일로 전업을 생각할 정도로 괴로웠다.”

▲ 96~97년 노동악법 저지투쟁 ⓒ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
그래서 노조 위원장 출마를 결심한 것인가?

“그 얘기도 사연이 길다. 사실 처음에는 출마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말했다시피 다른 호텔 오픈에 맞춰서 직장을 옮기거나 아예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마침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몇몇 조직들이 주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파업 당시 내 모습을 보고 위원장을 해 보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려는 생각까지 했으니 잃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몰래 캠프를 차리고 회사의 눈을 피해 선거를 준비했다. 뭐, 회사는 내가 선거 준비를 한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채고 곧바로 회유를 시작했다. 위원장에 출마하지 않으면 진급도 시켜주고 2년 뒤엔 지배인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 나는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을 했다. 이 회사의 행태를 더 이상 가만두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결국 회사는 노골적으로 선거를 방해하는 전술로 나섰다. 선거 당일 날도 아침 6시에 행사장에 가서 서빙을 해야만 할 정도였다. 다른 후보들은 각 업장을 돌면서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나는 업무가 끝나고 밤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표가 갈리도록 회사가 지명한 후보를 2명이나 내세웠다. 여성 조합원들을 겨냥해 여성 후보를 지명해 내보내는가 하면 바로 직속상사인 부지배인 역시 위원장 후보로 내세운 것이다. 결국 회사와 야합한 현직 위원장을 포함해 3명의 후보와 상대해야 했다.

선거 합동연설회가 열릴 장소에 가보니 조합원들이 앉아 있는 뒤로 회사 간부들이 쭉 서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들고 그 사람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내가 위원장에 당선된다면 우리의 권리를 무시하고 노예처럼 부리는 저 치들을 그냥 두지 않겠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보다 좀 더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외쳤는데, 조합원들은 다들 뒤를 한 번씩 돌아보고 박수로 지지해 줬다. 결국 출마를 결심한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제대로 선거운동 한 번 못한 데다가 회사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84%의 득표로 당선됐다.”

▲ 96~97 노동악법 저지투쟁 중 서재수 위원장의 삭발식 ⓒ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
그게 1994년의 일인가? 이듬해 벌인 파업은 호텔업계에서 유명한 일화라고 들었다.


“11월에 위원장에 당선되고 파업은 1995년 4월이었으니까 본격적인 준비는 불과 4개월밖에 못했다. 아주 비밀스럽게 준비를 했기 때문에 회사는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당시 호텔 뒤에서 자취를 하던 수석부위원장의 방 한 칸에 플래카드며 머리띠, 피켓 등 필요한 물품들을 모두 갖다 놓고 파업상황실을 꾸렸다. 그리고 이대나 고대 등 대학가를 돌면서 노동가요 테이프를 수집해 밤마다 새로 편집했다. 강하고 격정적인 노래로 한 곡이 열 번씩 반복되도록 혼자 일일이 새로 녹음했다. 나름대로 머리도 많이 굴렸다. 호텔 로비를 점거하고 조합원들이 연좌할 때도 남성조합원과 여성조합원이 사이사이에 앉게끔 자리배치를 조정했다. 서로를 보호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다.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4월 19일에 실시해 90%의 찬성으로 가결됐고, 24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27일에는 500여 명 조합원 전원이 1층 로비에 집결해 노동가를 부르며 농성을 벌였는데 당시 매스컴의 취재 열기도 줄을 설 정도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이튿날 대구 가스폭발사고 때문에 서울 강남 한 복판의 호텔에서 로비 점거 농성을 벌인 것은 뉴스에 짧게 보도됐다.

당시 주요 쟁점이 됐던 것은 봉사료의 기본급화였다. 호텔 직원들은 기본급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열악한 대신 수당 명목으로 받는 봉사료가 많아 전체 임금이 올라갔다. 그런데 이 봉사료는 상여금이나 퇴직금 등을 산정할 때 빠지기 때문에 당시 연맹 차원에서 이를 기본급화하라는 요구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던 차였다. 파업을 통해 결국 평균 봉사료의 90%에 달하는 35만 원 정도를 기본급화 했다.

그밖에도 임원들의 비리라든지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으며, 이후 거의 매년 회사와 충돌을 반복해 왔다. 최근 르네상스호텔의 노사관계는 대단히 원만하다. 노조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간부들은 물론이고 외국계 본사에서도 함부로 만만히 대하지 못 한다. 거의 노사관계를 ‘평정’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힘을 과시하기 위해 무분별한 요구를 하진 않는다. 사업장의 매출 증진과 원활한 경영을 위해서 노조에서도 관심을 갖고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

미조직 사업장 중심 ‘조직 확대’ 주력할 것

이제 산별연맹 위원장으로서 3년 임기 동안 관광서비스노련을 이끌고 나가게 됐다. 올해 연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업은 무엇이 있나?

“연맹 위원장이 되고 나서 우선적으로 미조직된 사업장을 중심으로 조직 확대 사업을 계획 중이다. 과거에는 조직 명칭이 전국관광노동조합연맹이었기 때문에 조직 대상이 호텔, 여행사, 콘도 등의 사업장 위주였다. 그러다 지난 2005년 조직 확대를 위해 ‘서비스’ 부문을 포함시켜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으로 개칭했다.

서비스 직종이라는 것은 관광업종에 비해 훨씬 더 광범위하다. 그러나 연맹 이름은 바뀌었지만 실제로 조직의 규모가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직이 자꾸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조직을 만나고 있다. 예를 들면 경호업체나 외식업체라든지, 아직 상급단체를 정하지 않은 신생 조직들 위주로 접근 중이다. 올해 안으로 많은 조직들이 연맹에 가입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조직화를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조직이 자꾸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연맹의 존폐 여부와도 관련 있는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다. 조직이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해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도 없고, 그러면서 연맹이 차츰 유명무실해지는 이런 상황에서 조합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은 아주 알기 쉬운 최우선의 요구인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금 연맹 산하 조합원 수가 만 천여 명인데, 과거에는 훨씬 더 많았다. 이게 점점 줄어온 것이다. 롯데호텔, 그랜드힐튼호텔, 강원랜드와 같은 사업장의 경우 과거에는 연맹 산하의 조직이었다. 그런데 상급단체를 변경했다가 재차 민주노총을 탈퇴한 롯데호텔이나 그랜드힐튼호텔 같은 경우도 조직화를 위한 접촉이 지금까지 없었다.

또 문화관광부나 한국관광공사 등 우리 연맹과 관계가 밀접할 것으로 보이는 정부부처나 기관들과 지금까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런 부분은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동안 연맹이 활동을 좀 게을리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곳과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 다리를 놓는 일도 부지런히 진행 중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문화관광부나 한국관광공사에서도 대단히 연맹을 소홀히 생각한 것도 있다. 호텔, 여행사, 콘도, 골프장, 외식업체 등 관광부문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연맹에 속해 있음에도 그쪽에서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안타까웠던 사례를 들어 보면 관광의 날 행사에 두어 번 참석했던 적이 있는데, 전혀 우리 연맹과 연결 고리가 없어 보였다. 행사와 관련해 공문 한 장 연맹으로 띄운 적도 없고, 위원장 좌석 하나 갖춰 놓은 적도 없었다. 그냥 자기들끼리만 참석하고 서로 표창을 주고받으며 행사를 끝내버리더라. 마치 국내 관광산업의 발전은 그들만 잘 해서 이렇게 성장한 것처럼 말이다. 문제가 심각한 거 아닐까?

연맹 내부에서도 문제였고 아무 관심이 없었던 그쪽도 문제였다는 말인데, 어떻게 보면 그동안 아무런 이슈가 없었다는 것 때문에 서로 무심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말이 좀 그렇지만 서로 적이 되더라도 어쨌든 관계를 맺는 게 아닌가? 달콤한 맛을 보든 따끔한 맛을 보든지 했으면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들 앞에서 깃발을 흔들 결의도 충분히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