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동지가 ‘내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희생한 후 40년 동안 노동자와 학생은 물론이고 농민, 지식인 등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전태일정신계승을 내걸고 치열한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래서 노동조건이 크게 개선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등 민중운동이 크게 발전했고, 그리고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민주화도 크게 진전됐다.

그러면 전태일동지의 뜻은 이루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비정규직을 포함해 노동자들의 삶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고, 사회 전반적으로 전태일동지의 뜻과는 정반대로 ‘민인에 대한 민인의 투쟁’이 일상화해 각박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전태일동지 추도식에서의 추도사는 한결같이 비정규직 차별을 거론하면서 전태일동지의 뜻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참회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죽음은 ‘인간선언’

그러면 이제 전태일은 지난 시기 전태일정신계승 투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끝나고 이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인물이 되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전태일의 진면목이 발휘되어야 한다.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투쟁하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금전대의 부피만을 생각하는 인간’을 질타하면서 ‘서로가 용해되어 있는 상태’, ‘서로 간에 정을 나누며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사회’, 곧 인간해방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했고, 이런 사회를 이루려면 사회도 개혁돼야 하지만 인간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흔히 전태일에 대해 열악한 노동조건에 분노하여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을 촉구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전태일은 그에 앞서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람이었으며 인간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노동자들에 대한 혹사와 착취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모든 사람이 ‘가치적으로 동등한 인간’이 되어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불태웠던 것이다. 요컨대 그는 인간해방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불태웠던 바, 그래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인간선언’이라고 불렀다.

인간해방 실현을 목표로 해야

그렇다. 오늘 우리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 예컨대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영세상공업의 몰락, 대량실업, 소득양극화, 교실붕괴,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성 상실과 이로 인한 사회의 각박함을 해결하려면 인간해방의 사상에 기초한 이념과 정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전태일은 바로 인간해방의 사상을 제공해 주고 있어 오늘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인간해방의 사회를 이루는 데 필요한 인물이 되고 있다.

어떤 사상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와 용도가 달라진다. 전태일 사상도 지난 시기에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인 사상이 될 수 있었으나 인간해방이 실현될 수 있는 정보문명시대에는 인간해방의 실현에 효과적인 사상이 될 수 있다. 전태일사상이 인간해방을 실현하는 데 효과적인 사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더 없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차별 철폐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한다. 비정규직차별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그러나 임금인상을 최대의 목표로 삼아온 지금까지의 노동운동으로는 비정규직차별을 철폐할 수 없다. 인간해방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노동운동이라야 비정규직차별을 철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고 청년실업, 영세상공업의 몰락 등의 문제도 인간해방의 관점에서 대책을 강구해야 해결될 수 있다.

전태일사상이 바로 인간해방 사상

전 세계가 엄청나게 변하고 있다. 변화의 주된 요인은 과학기술의 첨단적 발달이고, 이것은 정보화로 나타난다. 즉, 세상이 정보화되고 있다. 이 정보화는 신제품과 자동화로 나타나는데, 신제품과 자동화는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와 인간해방의 실현에 요구되는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통신수단의 발달을 가져와 인간해방의 실현에 요구되는 정신적 조건까지 충족시켜주고 있다.

요컨대 전 세계는 지금 인간해방을 실현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과 정신적 조건을 충족해 가고 있는데, 이런 조건에서는 인간해방을 실현해야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만약 그렇지 못하면 세계는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되어 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한 바, 기회가 왔는데 그 기회를 살려내면 도약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현재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로 전락하게 되어 있다. 오늘 전 세계가 대량실업과 소득양극화, 환경파괴, 인간성 상실 등에 직면해서 엄청난 재난을 겪고 있는 것은 인간해방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맞이했는데도 인간해방을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통찰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해방을 실현할 수 있는 전태일사상을 우리사회가 갖고 있다는 것은 더없이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전태일사상을 통해 인간해방을 실현해야 하겠다. 이렇게 해야 오늘 우리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전태일사상이 오늘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