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시대, 조직 경쟁은 시작됐나?
복수노조 시대, 조직 경쟁은 시작됐나?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1.03.3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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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노동계 공히 투명성, 민주성 담보해야
파업만능주의 선명성 경쟁 경계해야
[특집1] 복수노조는 시작됐다

전주버스 파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복수노조 전면시행을 앞두고 있는 2011년 노사관계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이번 파업은 단순하게 보면 일부 수당의 통상임금 산입 문제로 불거졌지만 그 실천적인 형태는 한국노총 전북자동차노조 지도부가 체결한 임단협 합의안에 불만을 품고 탈퇴한 일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하며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사업장 단위에서 복수노조가 생성되는 원인과 함께 향후 복수노조 시대에 노동계나 경영계가 우려하는 바가 현실화 된 것이 전주버스 파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노사간 갈등이냐, 노노간 갈등이냐

전주버스 파업을 두고 한국노총 전북본부와 전북자동차노조는 매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복수노조를 앞두고 전략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를 타깃으로 삼아 전라도 지역에 대한 거점 확보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 때문이다. 안재성 전북자동차노조 위원장은 “통상임금 소송으로 1인당 적게는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선동해놓고는 정작 파업에 들어가서는 그러한 것이 가능하지 않으니까 통상임금 부분은 쏙 빼놓고 노조인정을 들고 나왔다”며 “이것만 봐도 이들(운수노조)의 의도는 분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북자동차노조 소속의 한 지부장은 “전주지역 노사관계가 안정적이어서 (복수노조를)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민주노총이 전라도 지역에 취약하니까 전북지역 버스를 노린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반면 민주노총 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는 이러한 한국노총 전북본부의 주장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문용원 민주버스본부 조직쟁의실장은 “작년 초, 전북고속에서 현 집행부 탄핵에 나선 일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 운수노조로 연락을 해 도와주면서 접촉이 시작됐다”며 “기존 노조 집행부에 대한 불만이 통상임금 노사 합의와 함께 터졌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조합원과 협의도 없이 통상임금 문제를 합의한 전북자동차노조 지도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민주노총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양측의 주장을 살펴보면 한국노총 전북본부는 민주노총이 무리하게 조직화사업을 전개하다 파업이라는 자충수를 두었다는 평가인 반면 민주노총 운수노조는 한국노총이 노사갈등을 희석시키기 위해 노노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부적으로 복합적 문제 많아

그러나 전주 현지에서 취재 결과 이번 파업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통상임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파업 현장에 있던 조합원들과 전주지역 노사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전북자동차노조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있던 상황에서 통상임금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터졌던 것이다.

이전까지 전북자동차노조 소속 현장에서는 각 지부장에 반발하는 세력에 대한 암묵적 탄압이 공공연히 있었다. 파업현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기존 지부장에 반대해 선거에 나서거나 사측을 공공연히 비난하면 유·무형의 탄압이 있었다”며 “대표적인 것이 배차 불이익인데 한 달 24일 만근(단협상에는 기본적으로 1일 2교대가 원칙이나 모든 회사가 격일제로 운영. 12일 근무하면 만근) 이외에 연장수당 등을 받을 수 없도록 배차를 해주지 않는다거나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은 오래된 차량을 배차해 불이익을 주곤 했다”고 말했다.

이런 내부적 문제가 더욱 확산된 것은 전북고속에서 벌어진 조합원 징계 문제였다. 2009년 지부장 선거에서 기존 집행부에 대항해 선거에 출마한 후보 및 선거운동원에 대해 선거 이후 징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북고속지회 조합원들에 따르면 사측은 이전까지 문제 삼지 않았던 경미한 사고 등 과거의 사건을 끌어다 100여 명을 징계대상에 올렸고 실제 20여 명을 징계했다. 이에 일부 조합원들이 지부장 탄핵을 위해 총회 소집을 요청했으나 12표차로 지부장 탄핵에 실패했다. 이에 350여 명의 조합원 중 150여 명이 전북자동차노조를 탈퇴하고 6월 29일 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전북고속지회를 결성했다.

조합 가입을 못해 불이익을 받았던 직원들도 있었다. 호남고속지회의 경우 이번 파업에 정비사 18명 전원이 동참했다. 이들은 이제까지 조합원 자격이 없었다. 호남고속지회 소속 한 정비사는 “회사에서 정비사는 사장의 개인비서였다. 수시로 불러서 개인 잡무를 시키거나 사장 집 하수도도 고친 적이 있을 정도로 하인 부리듯 했다”며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노조가입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노조가 우리를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외면했던 것이다. 그런 억울함 때문에 정비사 18명 전원이 호남고속지회에 가입했고 현재 전원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회사의 처우와 노동조합 지도부의 독선에 내심 불만이 쌓여가던 중 통상임금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2010년 단협에서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노사 합의가 지도부에 의해 이루어지자 불만은 봇물 터지듯 분출됐고 상급단체를 변경하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버스본부 소속 전주지역 7개 지회의 파업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한국노총에 대한 거친 욕설과 비방, 협박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골이 깊어졌다는 반증이다.

ⓒ 전북고속지회
파업 만능주의, 출구가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민주노총의 파업전술이 결과적으로 옳았느냐다. 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와 7개 지회가 파업이란 전술을 사용하게 된 것은 복수노조 설립 후 사측에서 교섭에는 응하지 않고 해고 등 징계를 통해 노조 와해 전술을 구사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파업 지도부는 주장한다. 문용원 조직쟁의실장은 “전주 버스의 경우 조직기반이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파업으로 돌파하기로 했다”며 “노조를 확고히 세우는 것이 지금 당장은 중요하다고 봤다. 일단은 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파업”이라고 말했다.

파업 초기 지도부나 조합원들은 일주일, 혹은 길어야 한 달 정도면 해결될 것이란 판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고용노동부가 7개 지회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한편, 사측도 만약 이번 파업에 대해 민주노총 손을 들어주면 복수노조 시대를 앞두고 지역 전체 노사관계에 미칠 파장이 크기 때문에 쉽게 합의를 할 수는 없어 파업은 장기화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용자 측이 고용노동부 민간교섭협력관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조 인정에 관한 사항에 대해 절대 합의할 수 없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3달 이상 파업을 진행하다보니 막상 파업 조합원들의 생계 문제가 시급해졌다. 파업 현장의 조합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은행이라도 털어야겠다”며 농담을 주고받지만 막상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파업 지도부에서는 임금 채권 10억을 조달할 예정이지만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닌 듯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파업지도부도 출구전략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그나마 민주노총으로서는 다행스러운 게 이런 상황에서도 파업 대오를 이탈하는 숫자가 적고 조직적 단결이 아직 굳건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전주에서도 또다시 파업 뒷마무리, 즉 출구전략에 고심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회자되는 ‘민주노총이 건드리면 전부 장기투쟁사업장이 된다’는 속설이 다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파업 지도부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는가 마는 결국 파업 만능주의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조합원일 수밖에 없다.

노사관계를 연구하는 한 교수는 “투쟁의 선봉에 섰던 민주노총 사업장 중에 민주노총을 안 떠난 사업장이 몇이나 있는가”라며 “파업이 교섭을 위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파업만이 선이고 진리라는 식의 편향된 사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치밀한 준비와 계획 하에 전술이 구체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한 사업장이 몇 개인지 민주노총 지도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떤 곳에서 복수노조 생기나

전주버스 파업을 들여다보면 복수노조가 어떤 사업장에서 생길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복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첫째, 조직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복수노조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경영계나 노동계 공히 해당되는 것이다. 사용자는 경영의 투명성과 민주성, 경영실적의 사내구성원과의 공유 및 성과 분배의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 전주버스 파업에서 드러난 것처럼 경영계가 사내구성원의 고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갈라치기 식의 노조 관리로 일관할 경우 문제는 반드시 발생하게 된다.

이에 대해 심종두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대표노무사는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경영계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으로 ① 투명경영 ② 직원들과의 정보공유 ③ 의사소통 채널 확보(노무역량 강화) ④ 갈등을 조장하는 행동이나 정책 배제 ⑤ 경영계 스스로의 법과 원칙 준수 ⑥ 노사 간 신뢰 회복 ⑦ 화합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 개최 등을 꼽았다. 심 대표는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과 인력 배치로 불평불만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회사는 투명경영을 통해 노동조합과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야 하며 동반자라는 인식을 구성원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 또한 조직적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해야 한다. 전주버스 파업 사태의 시발점이 됐던 통상임금 문제 처리 과정을 보면 비록 전북자동차노조 지도부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것이었지만 조합원들의 정서를 외면하고 지도부가 사측과 독단적인 합의를 했음은 분명하다. 전북지역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전북자동차노조가 평소 조합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이번 단협 합의안에 대한 설명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문제가 불거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앞서 한국노총은 전주버스 파업 사태와 같이 기존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생길 수 있는 여지를 줄이기 위해 각 사업장에 ‘복수노조 대비 지침’을 하달했다. 지침에는 “노조 집행부가 조직적으로 불신을 받는 원인으로 △ 결의기구를 무시한 위원장의 독단적인 조직운영 △ 현장여론을 무시한 임단협 직권조인 △ 임단협 진행과정 및 결과에 대한 홍보부족 △ 위원장의 사치스런 생활 △ 위원장 선출방식(간선제) △ 비리연루 △ 사용자측과의 지나친 밀착 등 다양하다”고 밝히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선명성 경쟁의 허와 실


많은 전문가들이 복수노조가 생길 경우 발생할 문제로 노조 간의 선명성 경쟁을 들고 있다. 물론 조직 분란으로 인한 사측의 노무비용 증가나 노조의 조직력 약화도 문제가 되겠지만 노조 간 선명성 경쟁은 노동 현장 자체를 피폐화 시킨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번 전주버스 파업 사태에서도 이러한 부분은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총이 파업이란 방식을 선택하고, 버스 운행에 나선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파업 조합원들에게 폭언과 협박, 심지어 폭행까지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노총 전북본부와 전북자동차노조는 ‘너희가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며 파업 불사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노총 전북본부의 한 관계자는 “만약 우리 조합원들에 대한 폭언과 협박, 운행 방해가 계속된다면 우리라고 파업을 못하고 폭력을 못 쓰겠는가”라며 “민주노총이 먼저 반칙을 저질렀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분명히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선명성 경쟁은 현장 분위기를 최악의 상황을 이끌기도 한다. 전주버스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은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에 대해 극렬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제까지 한 직장에서 형, 동생하며 지냈던 사이가 조직간 분열로 이제 ‘배신자’, ‘xxx’가 돼버렸다. 파업 현장에 있던 조합원들도 이구동성으로 “파업이 끝나 현장에 복귀해도 아마 그들(한국노총 소속 조합원)과 같이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이 끝나도 현장은 계속 파업 중일 것이란 예측이 가능해진다.

반면 선명성 경쟁이 더욱 민주적이고, 조합원 중심의 노조를 만들게 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노동계는 민주노총이 진보, 한국노총이 보수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했으나 이제는 상급단체와 상관없이 각 노조별로 좀 더 많은 조합원을 확보하기 위해 분명한 목소리를 낼 것이며, 이는 이제 살아남을 노조와 그렇지 않을 노조를 구분하는 하나의 잣대로 작용하는 긍정적이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분명한 것은 전주버스 파업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복수노조 전면 허용 시대를 맞이해 초반의 혼란은 노사 모두 분명히 감수해야 할 것이란 점이다. 노사 뿐 아니라 노노 간에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반목으로 조직간 갈라치기에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조직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하고, 현실 조합원의 니즈가 무엇인지 제때 파악하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 밖에 없다. 경영계든 노동계든 자신의 조직을 재평가하고 조직 내부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내 이를 실천적으로 극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복수노조를 준비하는 노사의 마음가짐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