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 사회 이후의 유망직업
과로 사회 이후의 유망직업
  • 참여와혁신
  • 승인 2011.03.30 14:38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의지로 여가 시간 확대될 듯
여가 활용 위한 레져·건강·여행·교육 관련 직업들 인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단축에 나섰다. 지난해 기준으로 2,111시간에 달하는 연간 근로시간을 내년까지 1,950시간으로 줄이기로 한 것. OECD국가 평균이 1,770시간(2007년 기준),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네덜란드가 1,390시간(2007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확실히 과로 사회가 분명하다. 정부는 금년 7월1일부터 2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40시간제가 도입되는 것에 발맞춰 근로시간단축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각 지방고용노동관서에 근로시간 감독 기동반을 가동할 예정이다.

흔히 한국의 고도성장을 가능케 한 것으로 근로자의 근면성을 꼽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월화수목금금금’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가 산업화 성공의 일등공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 창의력, 혁신이 중시되는 21세기 지식사회에서 과거의 성장등식은 더 이상 성립되기 어렵다. 국외적으로는 중국, 인도 등이 저임금과 근면성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성장보다는 일자리 창출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늘고 길게’ 일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짧고 굵게’ 일하는 방식으로 방향전환이 절실하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여가시간이 늘어나면 삶의 방식, 소비패턴, 여가활용 방식 등이 크게 변모할 것이고 이것은 직업세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건강, 음식, 여행 등 관련 직업이 대세

사람은 먹고 자는 필수적 시간을 제외하고 일, 여가, 학습에 시간을 사용한다. 과로 사회에서는 일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여가나 학습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단적으로 2007년 주5일제 도입이후 직장인의 노는 문화가 퇴근 후의 음주가무에서 걷기, 등산, 자전거 열풍으로 크게 달라졌다. 이를 반영한 것이 예능 TV프로그램 ‘1박2일’의 부상이 아닌가 싶다.

주말 대한민국 도시근교 산은 온통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자전거 인구가 크게 늘어났고 걷기열풍으로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등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의류, 신발 등의 업종이 등산, 걷기, 레져에 적합한 기능성과 패션성을 가미하면서 유망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기능성 소재 및 상품개발자, 필드테스터, 마케팅전문가, 등산가이드, 여행기획가 등의 직업이 부상 중이다.

근로시간을 더 단축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휴가사용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초과근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 상사의 눈치 때문에 휴가사용을 포기하고 퇴근을 미루는 풍토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근무시간 중에는 한눈팔지 않고 집중해서 일하고 오후 6시가 되면 일을 접는 ‘칼퇴근’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퇴근 후 시간활용이 가능해지고 운동인구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좋은 몸매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만탈출을 돕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운동치료사, 개인트레이너, 헬스클럽 매니저 등의 확대가 예상된다. 또한, 인간의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명상, 선(禪), 요가, 국선도, 태극권 등이 더욱 인기를 끌고 지도자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것이다.

여가시간이 늘어나면 친구, 가족, 연인 간의 만남을 더욱 빈번하게 만든다. 만남과 관련된 직업으로서 대표적인 것이 커피전문가인 바리스타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0세 이상 성인 1명이 312잔의 커피를 마실 정도로 커피전문점을 중심으로 한 원두커피 열풍이 거세다. 음식, 술 등도 빠질 수 없을 것이므로 연회전문가, 요리코디네이터, 소믈리에, 브라우마이스터, 조주사, 떡전문가, 퓨전음식개발자 등의 부상도 예상해볼 수 있다. 

상사 눈치 보느라 포기했던 휴가사용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면 해외여행도 확대되겠지만 국내여행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여름 한 철의 바캉스 문화에서 벗어나 연중 수시로 휴가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패턴 또한 주마간산 격의 관광형(sight-seeing)에서 체류형(staying)으로 전환이 예상된다. 국민 5명중 1명이 일 년에 하루이상을 농촌에서 보내는 프랑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다차’라 불리는 체류형 주말농장을 갖고 있는 러시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며칠씩 묵으면서 쉬고 재충전하는 여행문화가 확산되면 체류형 관광지 개발자, 펜션 임대업자, 여행설계자, 리조트 매니저, 국립공원레인저 등에 대한 수요증대가 예상된다. 템플스테이, 휴양림, 농촌민박 등 다양한 체류형태가 확대되고, 교외지역에 저렴한 별장수요 역시 증대할 것이다. 이 경우 부동산중개인, 부지개발자, 주택설계자, 친환경목수, 한옥전문가 등의 직업이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생 학습 위한 직업들도 인기

여가의 확대는 놀이와 더불어 학습수요의 증대로 이어진다. 잘 놀기 위해서, 혹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공부한다. 예를 들면 지금 평생학습센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좌는 커피전문가를 양성하는 ‘바리스타과정’이다. 그중에는 까페에서 일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원두커피를 제대로 즐기려는 인구가 상당수다. 커피를 만들고 수강생을 가르치느라 이래저래 바리스타는 인기다.

역사, 문학, 철학 등 인문학 강좌에 사람이 몰리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미국 애플사의 스티브잡스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듯이 CEO들은 앞 다퉈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데 열중이다. 각종 조찬모임에서도 인문학 강의는 인기다. 사람들은 일뿐만 아니라 잘 놀기 위해서도 인문학을 배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공전의 히트를 친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가 여행에서도 관통되었기 때문이다. 문화해설사, 역사저술가, 답사가이드, 여행기획자 등의 부상이 예상된다.

과거에는 20대 중반에 학교를 졸업한 후 회사에 취업하면 공부와는 담쌓고 살아도 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기술이 급변하고 시장이 수시로 요동치기 때문에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새로운 장비, 기계, 제품, 소프트웨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공정개선, 효율성 향상, 신제품 개발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평생직장과 평생직업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평생취업이 희망인 시대가 되고 있다. 지금 20대는 일생동안 7~8개의 직업에 종사하리라는 미래학자들의 전망도 이미 나와 있다.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려면 어쨌든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위한 학습을 해야 한다.

각종 자격증 취득, 직업훈련학교, 전문대학교, 4년제 대학교 등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려는 수요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특히, 학술적, 이론적 공부보다는 직업과 결부된 실천적이고 현실적응력이 높은 분야에 대한 학습수요의 증가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직업훈련상담가, 직업전문가, 진로가이드, 직업훈련교사, 민간자격상담가, 교재개발자, 대학겸임교수 등의 직업이 더욱 부상할 것이다. 훈련수요의 증가는 학위가 없더라도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명인, 달인들이 강단에서 직업훈련전문가로 활동할 기회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