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으로 쓴 4대강의 기록 , 흐르는 강물처럼
발바닥으로 쓴 4대강의 기록 , 흐르는 강물처럼
  • 오도엽 객원기자
  • 승인 2011.04.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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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작가 송기역 쓰고, 사진작가 이상엽 찍다

4대강 르포르타주 《흐르는 강물처럼》이 레디앙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2010년 진행됐던 4대강 답사 프로그램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시작됐다. 이 4대강 답사에는 연 인원 180여 명이 참여했고, 이 가운데 이 책을 쓰고 기록한 시인과 사진작가가 함께 했다. ‘르포를 쓰는 시인’ 송기역은 강의 목소리를 대신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받아쓰기’ 했고, 르포작가이자 사진작가인 이상엽은 2년 만에 황망하게 변한 강의 얼굴을 렌즈에 담았다.  

강의 목소리와 얼굴을 담기 위해 저자들은 손 대신 발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책에 실린 사진은 80여 컷, 담긴 목소리는 40여 명의 것이지만 실리고 담기지 않은 사진과 목소리는 그 배의 것 이상이었다. 호명되지 않은 수많은 지천과 뭇 생명들의 이름은 셀 수 없을 것이다. 발로 쓰고 찍은 저자들의 작업을 ‘풀꽃세상연구소’ 소장이자 생태주의 작가인 최성각은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최소한 이 기록에서만큼은 누구도 감행하지 못한 치열한 현장주의자들이었다. 비범한 이들은 책상 위에서 세계를 조망하겠지만, 보통사람들은 제 발로 가서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그곳 사람들의 목소리와 강과 숲이, 모래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생명 가진 것들의 목소리를 듣는 수밖에 없다. 그런 생체험의 나눔은 현장주의자이기를 포기한 이들로부터는 얻을 수 없다.”

강이라는 거울에 내 욕망을 투영하다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있는 강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습을 저자 송기역은 수경 스님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들의 거울’이라고 전한다. 우리, 우리 시대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 바로 4대강 파괴의 현장이라고. 그리고 강이라는 거울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슨 욕망을 투영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여강 앞 선원에서 수경 스님은 이런 목소리를 들려준다.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4대강 문제를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내용을 점검해보고, 과연 내가 생태 생명의 관점으로 볼 때 양심적으로 잘 살아왔는지 내밀하게 관조해 보시고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정리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4대강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59쪽)

저자 송기역의 말대로 “사람들은 강이라는 거울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하고 주문을 왼다”. 그래서 4대강 파괴의 현장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거울이다. 하지만 도리어 그렇기에 저자들은 4대강을 답사하고 기록했다.

사진을 찍은 이상엽은 죽어 뒤집어진 자라의 모습도,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물고기의 모습도, 강바닥의 모래를 파내 농사를 지을 땅 위에 모래를 퍼 올려놓은 잔인한 모습도, 잘려나간 무수한 나무들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곳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도 기록해 책에 실었다. ‘우리’가 자행하고 있는 우리의 거울이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은 송기역도 이 사회의 욕망을 가감 없이 전한다. ‘4대강 사업’ 이전에도 우리의 산천은 늘 개발이라는 탐욕 앞에 노출되어 있었다. 낙동강의 상류인 내성천에 만들어지고 있는 ‘영주댐’은 고작 10년 전에 ‘송리원댐’이라는 이름으로 건설이 추진된 바 있고, ‘금강 살리기’로 홍역을 앓고 있는 익산의 웅포면은 2006년 골프장 개발로 공동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아있다.

강, 사람, 마을의 이야기

이 책은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무수한 생채기들을 기록하는 한편 강, 강을 지키는 사람, 강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어릴 적부터 늘 곁에 있던 “내 똥오줌을 다 받아준” 내성천이 없어진다는 얘기에 농민은 눈물을 흘린다. 70년 넘게 한 마을에 살아온 노인들은 댐 건설 현장의 조감도에 살던 마을과 집이 파란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져 멍하게 서 있다. 이 노인들에게 갈 곳은 없다. 38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농민의 휴대폰에는 자신이 농사를 지어온 논의 사진이 들어있다. “다시 못 볼 것 같아서”다.

강을 지키겠다는 환경운동가들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 댐에 오르고 유치장에 들어간다. 금강 곁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온 평범한 아저씨는 금강에 하굿둑이 생기며 갈대며 새며 갈게며 모두 죽어버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평범한 아저씨는 강을 살리고 싶다면 강을 그대로 둬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4대강 현장에서 강의 모래를 퍼내는 골재 채취 노동자들은 사업이 끝날 올해 6월쯤이 되면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된다. 더 이상 퍼 올릴 모래가 없기 때문이다. 골재 채취 노동자들이 ‘낙동강 환경감시단’을 만든 것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낙동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자신들의 노동이 강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스님은 “자연만 보면 거칠어지”는 사람이 되었고,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낙동강 1,300리를 걸어 낙동강을 기록했다. 다른 한 스님은 “내가 소신해야 4대강 사업을 해결할 수 있겠다”고 말하고서는 소신공양을 했다.

아이들의 눈에 ‘4대강 살리기’는 아이러니다. 아이는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저렇게 파내면 밑에 있는 물고기들은 어떻게 살아?” 답사에 오른 한 사람에게 강은 어머니를 추억하게 하는 곳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생애 첫 가출 이후 찾은 곳이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4대강 사업이라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파괴와 범죄의 현장이 만들어낸 무수한 생채기들을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이것은 우리들의 거울을 ‘고발’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이 슬프고 잔인한 현장에 더 많은 이들이 ‘공명’할 수 있기를 바라는 공명의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모두가 다 ‘끝났다’고 자포자기하는 순간에도 “4대강 사업, 막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최병성 목사의 목소리, “농민은 농사짓는 게 싸우는 거죠”라는 농민 서규섭의 목소리, “내성천과 나는 둘이 아니다”는 농민 김진창의 목소리, 그리고 강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 아직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