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한 우리기업, 기초체력을 점검해야 할 때
급성장한 우리기업, 기초체력을 점검해야 할 때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12.05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장성 수익성 동시에 잡아야 세계 일류
이 현 정 (LG 경제연구원 경영연구 그룹 선임 연구원)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꿈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비가 선진화되었다. 더욱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핸드폰 및 디지털 TV 등 전자제품은 일찌감치 전 세계적인 명품으로 발돋움하였고, 이런 추세는 패션 및 화장품 등 보다 소프트한 산업에까지 넓혀지고 있다.
전 세계 여성의 패션 뮤즈로서 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시에나 밀러.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파파라치의 표적이 되는데, 어느 날 그녀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고 필자는 너무나 깜짝 놀라고 또한 동시에 매우 기뻤던 적이 있다.
바로 그 쇼핑백에는 큼직하게 우리나라 화장품 브랜드의 로고가 인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헐리우드의 최고 매력녀로 손꼽히는 여배우도 우리나라의 화장품을 쓰는 것이다.
또한, 시트콤 ‘프렌즈’의 스타 제니퍼 애니스톤이 패션지 보그의 화보를 찍을 때나 아카데미 및 에미상 수상식에 갈 때 오브제의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강진영과 윤한희 부부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 부부는 일찌감치 뉴욕에 진출하여 Y&Kei라는 이름으로 뉴욕 소호에 샵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전자 제품, 자동차와 같은 하드한 산업에서부터 패션 및 화장품에 이르는 소프트한 산업까지 우리 기업은 더 이상 싼 가격으로 승부하는 저가 제품이 아니라 최고의 셀레브레티들이 앞다투어 제품을 사용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기업의 경쟁 상대는 이미 선진국
하지만, 이런 성공에 안주한다면 더 이상의 성장과 더 많은 기업의 글로벌 프리미엄화는 요원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한 이상 우리의 상대는 더 이상 개발도상국의 저가 메이커 생산업체들이 아니라 이미 선진화되어 프리미엄 브랜드로 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업체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의 강호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어 계속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들을 더욱 잘 파악하고 트렌드의 작은 움직임에도 더듬이를 꼿꼿이 세워 앞선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선진 기업들 중에서도 우리와 경쟁 판도에서 자주 접하는 기업인 휴대폰 메이커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최근 경영 전략과 세계 최대의 프리미엄 브랜드 왕국인 LVMH그룹의 경영 전략을 통해 우리 기업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본다.

 

저가·고가시장을 다 잡는 모토로라의 Bi-Polar 전략
2004년 후반 휴대폰 업계에서 가장 놀라웠던 사건은 모토로라의 기사회생과 엄청난 센세이션의 LAZR (레이저)출시였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삼성 및 LG의 추격에 한물간 기업으로 평가를 받았던 모토로라는, 2004년 1월 과감한 경영수완가로 유명한 전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사장 에드워드 잰더를 신임 CEO로 영입하였는데, 잰더 회장은 취임 이후 과감한 Bi-Polar 전략을 쓰기로 언론에 공표했다. 즉 시장의 양극인 최고급 프리미엄 시장과 최저가 시장에서 모두 경쟁력을 확보하여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실제로 현실화되어, 모토로라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레이저로 서유럽 및 미국 시장에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으며, 시장 점유율이 계속해서 급강하하던 아시아 프리미엄 핸드폰 시장인 한국과 일본에서 그 점유율과 인지도를 제고할 수 있었다.
동시에, 동유럽 및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시장에서는 가격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한 저가 핸드폰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적인 경영성과로 모토로라는 다시 삼성을 제치고 세계 핸드폰 시장의 2위 자리를 탈환한다. 실로 성공적인 Bi-Polar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원가경쟁력·생산효율의 막강한 기본체력 노키아
또한, 세계 핸드폰 시장의 절대 강자 노키아도 이와 비슷한 전략을 쓰고 있는데, 노키아는 타 업체 대비 월등한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2005년 상반기 중국 시장에서 전년 동기 출하량 대비 시장 점유율이 76% 증가했으며 동유럽, 중동 및 아프리카 시장에서는 전체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강자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키아가 이러한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신흥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더 높이고자 곧 50달러 미만의 핸드폰을 시장에 출시할 것이라 공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만을 보고 노키아를 저가 핸드폰 메이커라고 판단하면 큰 오산이다. 노키아는 스마트 폰 시장에서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게임폰인 N-Gage 등 하이엔드 멀티미디어 폰 개발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세계 핸드폰 시장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Bi-Polar 전략은 다시 말해 수익성과 성장성을 모두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인 것이다.
즉 이는 저가폰으로 볼륨과 매출액 성장을 견인하고 프리미엄 시장에서 수익성을 꾀하는, 두마리 토끼를 다잡을 수 있는 똑똑한 전략이다.

 

원가 경쟁력은 가장 기본적인 핵심역량
이러한 전략은 특히 우리나라 핸드폰 메이커인 삼성과 LG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데, 프리미엄 시장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어 급성장하고 있는 신흥시장에서 실기(失機)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이 말만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큰 시사점일 것이다. 즉, 성장과 수익성을 모두 잡기 위해서는 ‘원가 경쟁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핵심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노키아가 30달러 수준의 초저가 폰을 만들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는 것도 타 업체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원가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노키아는 수많은 특허 및 플랫폼 계열화라는 매우 효율적인 생산 시스템에 힘입어, 저가 시장에서 독주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 이익률 20%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주로 프리미엄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이 15% 수준인 것을 상기한다면,  노키아의 영업 이익률은 실로 놀랍다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핸드폰 메이커들이 대부분 매출의 상당 부분을 특허 로열티 비용으로 소진하고 있기에 초 저가폰 시장에는 들어가고 싶어도 가격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는데, 이는 기본 체력이 우리 기업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상기시켜준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 체력은 특허 및 원천 기술뿐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 방식과 같은 선진화된 시스템을 모두 통칭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기업들도 기업을 둘러싼 내외부 환경을 고려하여 성장 전략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되, 이와 함께 생산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증대할 것인지의 고민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명품 인지도, 지속적 성장 모두 잡는 LVMH그룹
흔히 사람들은 LVMH그룹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루이뷔통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명품 왕국인 LVMH에서 루이뷔통이라는 브랜드는 패션, 피혁, 알코올, 유통 등 그룹 내 많은 사업군 중에서 한 사업군을 이루는 포트폴리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LVMH는 루이뷔통을 비롯해서 셀린, 겐조, 펜디 등의 패션 명품 등과 크리스찬 디올 등의 화장품 명품 및 세포라, DFS 면세점이라는 유통 명품등을 아우르는 진정한 명품 왕국이다.
LVMH는 위의 포트폴리오가 보여 주듯이 공격적인 인수 합병 전략으로 그룹의 규모를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시사점은 마구잡이 영역확장이나 문어발식 사업전개가 아닌 전체적으로 탈중심화된 조직화, 인수한 업체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보장하여 각 브랜드가 그 브랜드만의 독창적인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고, 나아가 그룹 전체의 시너지를 이룰 수 있는 성장 정책을 썼다는 것이다.
더욱이 주목할 것은, 최근의 LVMH그룹은 루이뷔통이나 크리스찬 디올과 같은 조금은 노후화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염두에 둔 듯, 마크 제이콥스나 베네피트와 같이 보다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는 떠오르는 영스타 브랜드들이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전략을 씀으로써, 그룹의 지속적인 성장과 최고의 명품 인지도 유지라는 두 가지 성공을 모두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톱 브랜드보다 톱을 향해 달리는 브랜드를
이러한 시사점을 생각한다면, 현재 떠오르고 있는 우리의 명품 패션 및 화장품 브랜드들도 비록 이종 산업이지만, 역발상적으로 이종 간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서로간의 시너지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한국 브랜드 파워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LVMH 그룹이 톱을 달리는 브랜드보다 톱을 향해 달리는 브랜드를 키워 성공한 바탕에는 시간과 여유를 두고 성장을 지켜보고 육성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기에, 천재적인 디자인으로 그 영향력이 급성장하고 있는 마크 제이콥스와 같은  젊은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여 루이뷔통의 성공신화를 다시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뉴욕 최고의 디자인 스쿨인 파슨스나 프랫 인스티튜트 및 FTI에는 수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있다. 뉴욕에 진출하여 프리미엄 인지도를 쌓고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 패션인 및 미용 기업들도 LVMH의 육성에 의한 성공 케이스를 보고 재능 있는 한국 디자이너 및 브랜드를 키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모토로라와 노키아의 Bi-Polar 전략을 통해 선진 기업들이 저가 시장과 고가 시장을 모두 장악하며 성장과 수익성을 모두 꾀하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 기업들도 성장이면 성장, 수익성이면 수익성이라는 한 가지 공식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수익성이라는 기본기에 충실한 성장 전략이라는 보다 선진화된 비전과 전략을 사용하여야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음을 느꼈다.
또한, 공격적인 합종연횡으로 최대의 명품왕국이 되었지만 각 브랜드 고유의 문화 유지와 신예 스타 및 브랜드 육성으로 더 큰 성공을 이끄는 LVMH의 성공신화에 비추어, 우리 기업들도 소수의 스타 브랜드의 선진시장 진입 성공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잠재된 수많은 한국의 스타 브랜드 및 명품 브랜드를 육성해서 그 시너지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