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투쟁의 현장에 살아있는 전태일
2011년, 투쟁의 현장에 살아있는 전태일
  • 참여와혁신
  • 승인 2011.04.2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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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기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포토DB
#1.

“위원장님, 파업이 장기간 진행되면서 현장의 조합원들이 많이 지치고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채길용 지회장님이랑 27일부터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현장 조합원 속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투쟁을 중단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 속에서 더욱더 힘 있게 파업투쟁을 만들기 위해서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니 걱정은 마십시오.”


지상 40미터가 넘는 한진중공업 17호 타워크레인에서 70일이 가깝도록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던 문철상 부산양산지부장님의 전화다.

부산 영도바람이 몰아칠 때면 타워크레인이 180도, 360도씩 속절없이 돌아가고, 운동조차 할 수 없는 좁은 공간, 먹고, 마시고, 씻고, 입고하는 기본조차 불가능한 조건에서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한진중공업 자본의 정리해고를 중단하라’며 고공농성을 전개했던 두 분의 동지가 땅으로 내려온단다.

문철상, 채길용 두 분의 동지는 가족들을 집에 남겨둔 채, 조합원들은 농성현장에 남겨둔 채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그동안 가족들의 속은 당사자와 마찬가지로 새카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두 동지는 땅에 내려와서도 마음 편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진중공업 영도공장에서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들 속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부산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 위에서는, 지난 1월 3일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여성의 몸으로 혈혈단신 크레인에 올라서 ‘한진중공업 자본은 노동자 자르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외치면서 100일이 넘는 고공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 투쟁을 함께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있다.

#2.

2010년 10월 30일 조합원들과 함께 KEC 1공장 점거농성을 벌이던 김준일 구미지부장이 회사 측과 교섭에 나섰다가 기만적으로 체포작전에 나선 경찰에 항거하며 분신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KEC자본이나 국가권력은 아무런 사과나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타임오프를 빙자한 직장폐쇄였지만 KEC자본의 목표는 민주노조 죽이기에 있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집회, 농성, 단식, 상경투쟁, 금속집회, 민주노총집회, 삼보일배, 노동청 타격투쟁….

치열했던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의 버티기와 정권의 비호 속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구미 KEC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9개월을 넘어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다.

자본은 파업투쟁 하는 노동자들에게 온갖 유혹과 협박을 통해서 불과 1년 전만 해도 함께 노동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노동자들을 현장복귀자와 파업참가자로 철저히 갈라놓았다. 심지어 현장복귀자들에게는 똑같은 양의 ‘노조탈퇴서’까지 작성하도록 몰아가면서, 파업 동참자들의 현장진입은 ‘직장폐쇄’라는 명분으로 가로막고 있다.

#3.

현대자동차 자본은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와 관련하여 지난 3월에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에 공문을 보내와 “4월 1일부터는 타임오프에 따라서 유급전임자 24명 외 전원 무급 처리한다”고 통보했고, 지부의 항의에 대해서나 특별협의회에서, 그리고 회사 측 선전물을 통해서 ‘법대로 해야 한다’고 준법을 외치고 있다. 법대로 전임자 임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우기는 현대자동차 자본에게 이렇게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판결과 파기환송심에서 모조리 불법파견 판정이 나왔는데 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지 않고 있는가?”

현대자동차 자본의 입맛에 따라서 ‘법대로’가 오락가락한다.

“불법파견을 바로잡아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울산 1공장을 세웠던 비정규직 동지들의 점거파업 이후, 집회 무대에서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였던 황인화 동지의 분신투쟁과 전주, 아산, 울산의 공동파업이 이어졌고, 5자 대표 교섭이 진행됐다. 하지만 울산비정규직지회 지도부의 사퇴 이후 교섭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러는 사이에 현대차 사내하청업체들은 비정규직지회 간부와 활동가들을 무더기 해고와 정직으로 회사 밖으로 내몰고, 현대차 자본은 경비대를 앞세워 이들의 현장 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봉쇄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하청 자본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 철폐와 정규직화, 민주노조 사수’를 내걸고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4.

뿐만 아니다. 발레오자본의 일방적인 자본철수와 전원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발레오공조 동지들, 전 조합원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대우자판 동지들, 쌍용자동차 동지들의 정리해고자, 무급휴직자, 징계해고자, 비정규직 전원 복직투쟁, 콜트콜텍 동지들의 투쟁, 상신브레이크 동지들, 발레오만도 동지들, 진방스틸 동지들….

40년 전 전태일 열사는 청계천 피복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풀빵을 나누고, 일을 대신하고, 그들의 권리와 이익, 나아가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염원하며 싸우다 온몸을 불태웠다. 그리고 2011년 4월, 자본가들은 1970년에도 그랬듯이 자본의 이윤을 더욱더 챙기기 위해 노동자들에 대해서 정리해고, 구조조정, 민주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본주의의 속성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다만 자본의 착취와 탄압의 수법이 더욱더 악랄하고, 전 지구적이고, 교묘해졌을 뿐이다.

이러한 자본의 탄압에 맞서서 투쟁하는 노동자, 자기의 모든 것, 목숨마저 불사르며 노동자들의 투쟁을 승리로 만들고자하는 노동자, ‘가족’과 ‘내 것’을 챙기기에 앞서 노동자의 정리해고를 막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루고, 민주노조를 지키고, 그래서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투쟁하는 그분들이 오늘의 전태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많은 전태일 앞에서 늘 부끄럽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전태일 앞에서 덜 부끄러운 삶이 되도록 나를 채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