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돈만 받는 곳이란 의혹 불식시킬 것”
“정부 돈만 받는 곳이란 의혹 불식시킬 것”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1.04.29 10:25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사관계는 강제성으로 안 돼…한국노총과의 관계 ‘이상무’
갈수록 부드러워지는 이유는?
[인터뷰 1] 문형남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난 3월 4일, 노사발전재단은 새로운 사무총장을 맞이했다. 노동부 관료로 출발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과 한국기술교육대 총장 등을 역임하고 이전까지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문형남 사무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7년, 대립과 투쟁의 기존 노사관계를 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사 공동으로 파트너십 증진과 고용·인적자원개발 사업을 수행하는 민간자율기구로 설립된 노사발전재단은 최근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따라 부설기관이었던 국제노동협력원과 노사공동전직지원센터를 통합해 사업영역을 더욱 확대했다.

노사발전재단의 새로운 3년 이끌 수장

노사발전재단에서 사무총장의 역할은 매우 막중하다. 노사발전재단 대표이사장인 박인상 이사장, 당연직 이사장인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희범 경총 회장 뿐 아니라 이채필 고용노동부 차관을 비롯한 11명의 이사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비상임 임원이라는 점에서 노사발전재단의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역할인 사무총장은 노사발전재단의 실질적 대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리이니만큼 경쟁도 치열했을 터, 지난 2월에는 신임 사무총장 선임과 관련해 한국노총이 “고용노동부가 민간자율기구인 노사발전재단의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 성명까지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2011년 최저임금 확정 과정에서 노동계의 손을 살포시(?) 들어줬던 문형남 최저임금위원장은 이용득 위원장을 비롯한 노동계 이사들의 지지를 받아 사무총장에 선임됐다. 이에 대해 문 총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가 노동계의 애로점을 잘 이해하고 노동계를 잘 알고 있다고 인정해 준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노동계의 지원, 부담될까?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렇지만 노동계의 지원이라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될 모양이다. 노사발전재단의 중요한 파트너인 한국노총이 이용득 위원장 취임 이후 노조법 전면 재개정을 주장하며 대정부 강경투쟁을 선언하고 있어 자칫 노사발전재단의 노사 파트너십 사업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총장은 이러한 예상에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지금 한국노총이 노조법 개정을 들고 나오고 내부적으론 타임오프 해결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중앙 차원에서, 조직적 차원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한국노총의 지역과 단사가 노사 파트너십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노사 파트너십 사업의 경우 내가 알기로는 지역 민주노총에서도 참여를 원하고 있고, 최근에는 노사 파트너십 사업에 참여하는 민주노총 사업장도 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의 대정부 투쟁과 지역에서의 노사 파트너십 사업 참여는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노총도 내셔널센터 차원에서 유연하게 노사문제를 다루지 않겠느냐 이렇게 봅니다.”

이러한 자신감은 노동부 관료에서 산하기관 기관장, 대학 총장, 최임위 위원장 등 점차 자율적 노사관계의 틀로 넘어왔던 문 총장의 과거를 보면 알 수 있다. 법적인 측면을 강조했던 자리에서 점차 대화와 상생, 사회적 관계란 측면이 중요해지는 자리로 옮겨 조직을 운영했던 점은 문 총장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공무원 시절에는 법 집행이 위주였지만 이는 일면적이었습니다. 최임위나 재단은 법보다는 사회 전체의 문화, 의식구조 등을 바탕에 깔고 접근해야 합니다. 법이란 것이 사회를 쫓아가지 못할 때가 있죠. 특히 외국법을 베껴오는 현실은 많은 시행착오를 가져옵니다. 예를 들어 노사협의회법 같은 경우는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다고 볼 수 있죠. 우리의 의식구조를 바탕으로 한 시스템을 만들어 노사관계를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사관계, 법의 잣대로는 안 돼

노사관계라는 것을 법의 잣대가 아닌 그 사회의 문화, 그리고 관계적 측면으로 봐야 한다는 문 총장은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능률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최임위나 재단과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의 역할이 법의 잣대나 규제로만은 절대 채워질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때는 비능률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회에 있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동의를 받아 사회가 굴러가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조금 비능률이 되도 그렇게 같이 사람들을 모아서 살아가는 게 재단이나 최임위가 해야 할 성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노사관계는 칼로 치거나 규제를 하거나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럴까? 기자가 문 총장을 알게 됐던 4년 전부터 현재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문 총장의 얼굴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 얼굴에서 그의 인생이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문 총장은 점점 유연해지고 있다.

“공무원 시절에는 칼 같아야 했죠. 국민 세금으로 내 월급을 주는 거니까. 그런데 점차 공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뭐, 여기에는 분명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는 깔려있죠. 대학에서 총장을 4년 하면서 많이 느끼고, 최임위도 해 보고 이러니, 전 구성원들이 마음을 공감하며 살아가고, 일을 해나가는 그런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업 경영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감독하는 공무원들이야 그렇게 하기 어렵겠지만.”

마음을 공감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껴

문 총장의 유연한 마음은 현재와 같은 노정 대립 구도에서도 재단 사업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드러났다. 그렇지만 그가 넘어야 할 산이 이것만은 아니다. 노사발전재단에 대해 노사관계자들 중 일부는 그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이전까지 노사발전재단은 지역 노사 파트너십과 작업장 혁신 지원 등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지원해왔지만 그 성과가 노사관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노사발전재단은 노동부가 주는 돈만 받는 곳 아니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문 총장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총장을 맡고 조직을 점검해보니 잘 안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이라고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우리 사업 전체를 놓고 보면 원래 재단 설립 취지가 노사관계를 선진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노사정이 함께 참여해 전문적인 서비스는 물론 그 확산에 있어서도 노사정 세 주체가 공동으로 풀어나가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노사발전재단이 고용노동부 사업이나 한다는 그런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사업틀을 다시 짜고 있어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변화가 있었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다만 외부의 비판에 대해 문 총장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변화의 지점은 어디인지에 대해 모색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문 총장은 이를 위해서는 재단 구성원의 전문성과 조직 신뢰성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노·사·정 출신이 모두 모여 있는 재단 구성에 대해 “속된 말로 다국적군”이라며 웃었다. 출신별로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 좋겠지만 따로 움직일 경우 조직적 분열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 대해 문 총장은 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전문성의 업그레이드를 요구했다. 또한 지식사회에서는 중간관리자들이 중심이 돼 “재단을 먹여 살려야 한다”며 팀장들에 대한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문 총장의 변화 요구에 팀장급 직원들이 모여 스스로 토론회 등을 개최하고, 재단은 이들 교육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컨설턴트들은 종전의 재단 업무부터 새롭게 합류한 국제노동, 전직지원까지 전 사업 영역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매뉴얼 작성에 나선 상태다. 문 총장은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갖는 재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우리 재단이 다국적군이 아니고 한 나라의 군이 됐으면 합니다. 재단은 가족이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앞으로 직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개발해 재단이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있어 중간 가교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나가겠습니다. 가슴에 확실하게 반짝이는 자부심 달아 주고 가겠습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구성원들에게 반짝이는 자부심 달아주겠다

노사관계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매번 <참여와혁신>은 노사관계 담당자들이나 사회 저명인사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벌써 몇 년 째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뭔가 변해야 한다는 것엔 남녀노소, 보수·진보, 민주노총·한국노총, 노·사·정 모두 동의했다. 문 총장도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노사관계라는 인식이 부족해요. 좀 심하게 비난하면 소위 우리나라 최고의 경영계 리더라는 사람들이 노조만 없으면 노사관계 다 해결 된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노조가 자기들 얼굴인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죠. 그런가하면 노동운동 리더들도 목청 큰 사람들 몇몇이 아직도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노동운동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대학교수를 비롯한 교육자들도 노사관계를 지금도 대립관계라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변화와 같이 사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도 변해야 하건만 아직도 한국의 노사관계는 독재정권, 혹은 80년대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사·정 모두.

“고작 근대화 이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노사관계는 모든 사람들이 사회라는 울타리 내에서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인 역할·기능에 따라 같이 협력해서 살아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사관계라는 것은 결국 삶의 파트너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는 데 이게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잘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전부터 내가 주장하는 것은 초등교육부터 아예 일(job)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뉴스에서도 나왔지만 OECD 중에서 우리나라 가정주부가 경제 상식이 꼴찌라고 합니다. 돈을 쓸 줄은 알지만 그냥 쓴다는 것이죠.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그 안에서 화폐는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것이죠.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에 노사 각 분야의 리더들이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노사관계의 문제를 단지 노·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깔린 의식 전환으로 봐야 한다는 문 총장의 주장은 그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말했듯이 법이나 강제성, 규제 등을 통해 외부에서 노사관계에 힘을 가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확대시킨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민간노동시장, 즉 노사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민간의 노력이 현재와 같은 대립적 노사관계를 끝내고 상생적인 노사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노사발전재단이 있는 것이고 노사관계 발전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문 총장의 주장이자, 바람이다.

날씨도 선선해지고 꽃구경을 가야할 시기에 재단 운영으로 인해 문 총장은 취미인 사진을 찍기 위한 출사도 제대로 못나가고 있다. 그래도 마음은 아직 남아있어 최근에 고급 카메라를 다시 구입했다고 한다. 문 총장의 뷰파인더에 상생하며 발전하는 노사관계가 찍힐 날이 조만간 닥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