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또 다른 폭력성
우리 안의 또 다른 폭력성
  • 정우성 기자
  • 승인 2011.05.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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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해소는 개인적으로…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변해
휴식시간과 휴게공간 등 필요…임시업무중지제도와 심리상담실 운영해야
[특집 1] 감정을 파는 노동

ⓒ 참여와혁신 포토DB
감정노동이란 정의가 일반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감정노동에 의한 스트레스 혹은 그에 따른 재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할 수밖에 없다. 산업재해의 경우 흔히 결과(피재자)가 나온 후에 대책을 마련하기 마련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정신적 합병증을 구분해 내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측도, 정부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 고용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서비스 산재의 대부분은 오토바이 사고 등과 같은 외적 산재에 해당한다”며 “감정노동에 대한 부분은 아직까지 다뤄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감정노동에 의한 스트레스는 나의 것?

이번 취재과정에서 만난 각 업종별 감정노동자들은 대부분 고객 응대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요? 일 끝나면 아이 숙제 봐줘야하고 쉬는 날에는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있나요. 출퇴근길에 책을 읽는 것이 전부라면 전부죠.”(박숙희, 여, 면세점 근무, 경력 15년차)

“뭐, 담배하나 피고 마는 거죠”(김호근, 남, 항공사 근무, 경력 10년차)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한 감정정리가 안된 상태다보니 집에 와서 집안일로 풀려고 해도 오히려 가족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더 포악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나도 내가 했던 것과 같은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생기는 거죠.”(강수영, 여, 스튜어디스, 경력 13년차)


ⓒ 참여와혁신 포토 DB
이렇게 감정노동으로 인해 생긴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할 경우 만성위장질환,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많은 감정노동자들이 이러한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뿐 아니라 취재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박숙희 씨는 “저처럼 오래 일한 직원들은 고객 응대에 대한 노하우 등이 생겼지만 경력이 짧은 직원들의 경우 ‘사람이 싫다’며 직장을 그만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강수영 씨도 “승무원들의 경우 불면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시차문제 때문인지 감정노동에 의한 스트레스인지 불명확하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릴 수밖에 없고 그것을 못 견디는 승무원의 경우 조용히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고 밝혔다.

ⓒ 전국민간서비스노동조합연맹
내가 못 견디겠으니 내가 나간다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가중되면 될수록 생산성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직장에 대한 혐오감으로 인해 이직률을 높여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고객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항시적으로 내부고객, 즉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만일에 대비하는 예방적 사고 방지가 더 효과적이다. 김호근 씨는 “직원 만족도가 커야 고객들에게도 서비스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회사에 대한 애정도 없고 직장생활이 싫은 사람이 고객에게 제대로 응대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감정노동에 대한 스트레스의 정확한 수치가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 ‘마음의 상처’이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회사가 굳이 먼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한 기업의 인사노무팀장은 “감정노동이란 정의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규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을 하나로 규정하는 행태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전문가들조차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하는 사람 중에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 어디 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노동은 다르다. 감정노동이 고객과의 상호작용이라면 직무스트레스는 직장생활의 포괄적 작용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단지 직장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라는 범주로 보면 포괄적으로 직원복지 문제로 한정해 볼 수 있지만 감정노동은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직무스트레스와 감정노동은 달라

각 회사에 비치된 고객 응대 매뉴얼은 어떨까? 기본적으로 각 매뉴얼들은 공통적으로 고객이 오기 전 대기 자세와 매장에 도착했을 때 눈 인사(eye contact)를 비롯해 밝은 표정과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안 됩니다’,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등의 부정적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고객의 요구에 최선을 다해 응해야 한다. 그리고 매장을 떠날 때까지 배웅하고 인사하는 것까지 세세하게 매뉴얼화 되어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바로 얼굴 표정이다. 표정은 항상 밝은 표정을 유지해야 한다.

이렇듯 각 회사의 고객 응대 매뉴얼은 자세에서부터 얼굴표정, 인사말과 고객 요구 사항에 대처하는 시뮬레이션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지만 정작 ‘JS(진상)고객’에 대한 대응 매뉴얼은 거의 없다. 일부 회사의 매뉴얼에서 나타난 진상 고객 대응 매뉴얼은 대부분 ① 자리를 옮긴다 ② 순차적으로 직급이 높은 사람이 응대한다 ③ 무조건 고객에게 ‘잘못했습니다. 사과드립니다’해야 한다 등의 정도로 나타났다. 또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이러한 매뉴얼조차 비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결국 매뉴얼 자체도 고객 중심으로만 구성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우선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응대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에게도 난처한 상황이나 고객의 억지 주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라는 매뉴얼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 인터뷰를 진행한 서비스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고객 ‘친절’ 매뉴얼만 있다


비단 매뉴얼만 그럴까? 업무환경 또한 마찬가지다. 감정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들이 고객과의 응대 과정에서 발생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휴식시간과 휴게공간이었다.

“민원인 응대 과정에서 욕을 먹고 억울해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이것을 풀 공간이 없어요. 동사무소라는 것이 아시겠지만 따로 휴게실을 두고 그렇지 않잖아요. 구청에서도 여직원 휴게실이 전부고, 그나마도 몇 명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결국 밖에서 담배 피다 들어가는 게 휴식의 전부죠.” (이창식, 남, 공무원, 경력 6년차)

“공항의 데스크 근무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휴식시간이 거의 없어요. 휴게실이라고 있지만 컴퓨터 2대, TV 1대 정도가 갖춰진 공간에 긴 의자를 놓고 앉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실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나마 이 휴게실도 시간이 없어서 못 쓰는 거죠.”(정설희, 여, 항공사 근무, 경력 10년차) 


백화점, 면세점, 대형할인마트, 병원, 공항, 동사무소 등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산업 노동자들은 휴게시간이 너무나 그립다. 제조업의 경우 시간당 몇 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지만 서비스 산업의 경우 고객이 계시다면 절대 쉴 수가 없다. 인간 그 자체가 서비스의 전달체가 된다는 점에서 한 명이 쉴 경우 연쇄적으로 나머지 동료들에게 업무가 전가된다는 점 또한 서비스 산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고객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성추행을 당하거나, 욕을 바가지로 퍼 먹어도 마음을 다잡기 위해 쉴 수가 없다.

또 시간은 있어도 장소가 없어서 문제다. 그나마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마트의 경우 휴게실이 점차 늘고 있어 다행이다. 신세계백화점 인사지원팀의 한 관계자는 “직원 복지 측면에서 휴게실을 최대한 아늑하게 꾸미려고 노력하고 있다. 각 지점마다 그에 맞는 인테리어와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대형 백화점을 제외한 매장에서는 아직도 휴게실이 미설치 되어 있거나 있더라도 형식적인 모양만을 갖추고 있는 사례가 많다.

마트에 근무하는 한 여직원은 “한 층에 백명이 넘는 직원이 있지만 휴게실에 발마사지기는 달랑 4개다. 이것도 직원들이 꾸준히 요구한 결과이지만 매일 서 있어서 다리가 아파도 사람이 만원이라 사용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여직원이 다니는 마트는 양반 축에 속한다. 휴게실이 건물에 하나 있는 경우도 많다. 지방 백화점에 근무하는 한 여직원은 “휴게실이 2층에 있는데 1층에 근무하는 사람이 오면 싫어한다. 그래서 휴게 시간에는 복도 의자나 바닥에서 쉰다”고 말했다.

ⓒ 전국민간서비스노동조합연맹
휴식시간과 휴게공간이 필요

그렇다면 이런 서비스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어떠한 대안이 있을까?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지난 2009년 9월, ‘서비스노동자의 감정노동 문제와 대책’ 토론회에서 △ 정해진 휴식시간 확보 △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교대제 실시 △ 업장 내 욕설 및 폭언 방지책 마련 △ 고객에 의한 성희롱 예방 매뉴얼 개발 및 보급 △ 임시업무중지와 심리상담실 운영 △ 휴게시설 확대 및 다양화 △ 작업 환경 개선 △ 정신건강 예방관리 프로그램 운영 △ 안전보건 전담부서 설치 등을 주장했다.

특히 고객 응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언과 폭력, 성희롱 등에 재빠르게 대처해 서비스 노동자들의 정신안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임시업무중지와 심리상담실 운영이 필히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시업무중지는 해당 상황에 처한 직원을 임시적으로 업무에서 배제하고 안정을 취하게 한 후 다시 업무에 복귀시키는 조치다.

심리상담실의 경우 일부 대기업에선 현재 운영하고 있지만 심리상담실이 인사노무팀 사무실과 접해있다든가 인사기록카드에 상담자료가 기재되는 등의 불합리한 사정이 지속되고 있어 서비스 노동자들이 이를 이용하기 꺼려하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적인 심리상담실을 운영한다든가 상담기록이 철저하게 비밀로 운영돼야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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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업무중지와 심리상담실 운영 필요


이와 함께 전국민간서비스연맹 산하 일부 사업장에서는 단협을 통해 감정수당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백화점 화장품 판매업체인 로레알코리아 노사는 감정수당으로 한 달 3만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화장품 판매업체인 엘카코리아, 클라란스코리아 등이 단협을 통해 감정수당을 신설했다. 현재는 이와 함께 파라다이스면세점, 교보핫트랙스 노사가 단협에 감정수당 지급을 합의했다.

그러나 감정수당은 단지 감정노동을 돈으로 환산한 것이라는 점에서 임금만 높이면 되는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민간서비스연맹 정민정 국장은 “이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며 “일단 감정노동에 대한 노사간의 인식 틀을 좁히는 역할을 한 것이고 향후 현장에 필요한 포괄적 업무매뉴얼 채택, 상담서비스 제공, 문화활동 지원, 안전보건위원회 실질화 등 후속 작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노사 간의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감정노동의 실체는 바로 사람과 사람과의 대면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성이다.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다고 판단되는 순간,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영원한 ‘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뷰 중 한 서비스 노동자는 “내가 하던 일을 벗어나 나도 고객의 위치에 서는 순간, 나 자신도 그렇게 변하더라. 하나하나 다 꼬투리가 잡히고 거기에 대해 분명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야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서비스 노동자는 하위의 존재라는 우리 안의 폭력성이 등장했다. 결국 우리 안에 존재하는 상대방에 대한 폭력성, 그것도 약자에 대한 폭력성이 서비스 노동을 힘든 노동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비스는 받는 사람도, 수행하는 사람도 인격적 위치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인식의 전환이 더욱 시급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