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의 안전이 ‘상품’?
운전자의 안전이 ‘상품’?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1.05.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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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안전공단, 물량 위주 평가시스템으로 물의
“사전예약제로 가능한 양만 소화해야”

자동차검사 업무를 핵심 사업으로 하고 있는 교통안전공단의 직원들이 검사 물량이 특정일에 편중되면서 문제점이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과중한 업무량으로 검사 인력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물론, 검사 자체의 안전성이나 서비스의 만족도까지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 교통안전공단노조

“일이 몰리는 토요일 근무를 위해 인력을 더 충원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이다. 그러니 사전에 소화 가능한 양을 정확히 분배하자는 차원의 얘기이다.”

교통안전공단노조 정인성 위원장은 이와 같은 노조의 요구가 서비스 질은 물론 조직 전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임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나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돼 있는 공단의 서비스 특성상, 이를 담보로 조직의 ‘성과’에만 매진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교통안전공단, 어떤 일을 하나?

교통안전공단(이사장 정상호, 이하 공단)은 교통사고의 예방 및 교통안전관리의 효율화를 도모하기 위해 교통안전공단법에 의거해 지난 1981년 설립됐다.

공단은 철도·항공 안전심사를 비롯해 자동차 배기가스 정밀검사,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 자동차사고 피해가족 지원, 운수업체 교통안전 진단, 자동차 성능 시험 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국토해양부 산하의 준정부기관이다.

공단의 업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대국민 서비스에 맞닿아 있는 분야가 바로 자동차검사 업무이다.

자동차의 구조나 장치 안전도가 기준 이상으로 적합한지, 배출가스나 소음 등의 환경규제 기준은 충족하고 있는지, 구조변경이나 개조 시에도 역시 안전성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정기적으로 혹은 필요한 경우에 전수검사를 통해 각 차량마다 세밀히 진단하는 것이 공단이 수행하는 자동차검사 업무이다.

전국적으로 민간업체의 지정 정비공장이 1,800여 개소에 달하지만 공단 산하 13개 지사, 57개 검사소에서는 전체 자동차검사 물량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민간업체의 5%에도 미치지 않는 공단의 규모에 비해 대단히 높은 점유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공단의 기술과 노하우,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교통안전공단노조 정인성 위원장은 단정 지었다. 직원들부터가 공단에 대한 자부심과 서비스 정신으로 검사에 임한다는 설명이다.

소비자 만족과 신뢰 얻었지만 업무량은 계속 늘어

하지만 필연적으로 업무 부하와 관련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주5일제 근무가 늘면서 휴일인 토요일을 이용해서 자동차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했다.

공단 노사는 이와 같은 현실 조건을 감안, 지난 2004년 단체협약의 근로조건 항목을 개정해 토요일에도 4시간 근무를 통해 검사 물량을 일부 소화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매년 검사 물량은 꾸준히 증가해 현재 토요일 4시간 동안 소화되는 물량이 평일 수준인 35,000여 대에 달한다고 교통안전공단노조는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검사 업무를 위한 인력 충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조는 현재 580여 명의 검사 인력이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의 2.5배 이상 과중한 업무가 주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의 주장대로라면 토요일 소화 물량은 14,000대 정도가 적당하다.

일이 밀려 있으니 자연 직원들의 근무시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정 위원장은 “각 검사장의 토요일 작업 인력은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점심식사 시간까지 빠듯하게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사실상 6시간 근무를 하는 셈”이라며 “그에 비해 검사 인력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특별히 크지도 않아서 다른 부서의 직원들에 비해 피해의식도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가능한 만큼만 사전예약 받자”

현재 공단 노사는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으며 노조는 이와 같은 ‘물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시행 중인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한 예약제를 강화해 내년 1월부터는 토요일 검사를 적정 수준만 확보하자고 요구했다.

노조의 이와 같은 요구는 “단순히 근로조건을 개선하자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자동차검사의 품질과 서비스의 만족도를 높이는 의미에서 명분이 충분하다”고 정 위원장은 주장했다.

특히 “평일에는 대기 시간이 10여 분에 불과해 문제가 없지만 순번이 밀려 있는 토요일에는 이용자로부터 민원이 폭주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조의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공단측은 물량 문제 해결에 대단히 미온적인 반응이다.

여타의 공공기관과는 달리 공단의 재정자립도는 높은 편이다. 공단의 경영기획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공단 전체 예산에서 정부의 재정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22.8%에 그쳤다”고 밝혔다.

나머지 부분은 다양한 수익 사업을 통해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이 수익 사업에서 특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동차검사 부문이다. 전체 수익의 약 70% 가량을 자동차검사 부문이 벌어들이고 있다.

이처럼 ‘돈 벌이’가 된다는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자동차검사의 물량 문제는 공단의 실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노조의 요구에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정 위원장은 설명하면서, “하지만 이용자들의 안전을 담보로 서비스를 상품화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노조는 오는 7월 이사장이 퇴임하기 전에 이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겠다는 입장이다. 비교적 큰 잡음이 없었던 공단의 노사관계를 감안할 때 자동차검사 물량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