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태스킹하는 뇌는 더 똑똑할까?
멀티태스킹하는 뇌는 더 똑똑할까?
  • 참여와혁신
  • 승인 2011.05.3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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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기억력 떨어지는 원인 되기도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

동아사이언스 기자
TV를 보면서 밥을 먹고, 음악을 들으면서 운동한다. 메신저 창을 가득 띄워놓고 문서 작업하며,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페이스북을 살핀다. 요즘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빨라진 컴퓨터와 스마트폰, 각종 전자기기 덕분에 우리는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똑똑해진 걸까? 아쉽게도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멀티태스킹으로 똑똑해지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KBS에서 과학다큐멘터리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억’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사람의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지를 알려준다(KBS 사이언스 대기획 ‘기억’). 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멋진 영상과 함께, 3부에서는 기억력이 줄어들고 있는 158명의 일반인이 주인공이 된 ‘기억력 회복 프로젝트’도 보여준다.

필자도 ‘기억력 회복 프로젝트’에 참가한 158명 중 한 사람이다. 학창시절에는 영화 대사를 줄줄 욀 정도로 기억력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메모하지 않으면 놓치는 정보가 많아졌다. 건망증도 심해져 휴대폰이나 지갑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필자가 이 프로젝트에 문을 두드린 이유는 기억력이 나빠진 이유를 알고, 이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몇 차례의 테스트를 거치는 동안 기억력이 나빠진 원인이 ‘멀티태스킹’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업무 환경이 기억력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흔히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은 뇌 구조가 특별하고 뇌 기능도 뛰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게 스탠포드대학교 뇌인지연구소의 결론이었다.

실험에서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을 하는 사람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을 하는 사람들의 뇌는 심하게 뒤엉켜 있다. 뇌 영상에서도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사람이 어떤 일에 집중할 때 활성화되는 곳이다. 멀티태스킹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필요 없는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이 떨어진다. 어떤 정보라도 가져와서 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집중하지 않는 것도 버릇이 돼 기억력을 약하게 만든다. 늘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상태로 머무는 뇌는 업무의 효율성도 떨어뜨린다.

멀티태스킹으로 정보 걸러내는 능력 떨어져

멀티태스킹이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뇌에 있다. 이 내용은 1956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과 조지 밀러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설명돼 있다. ‘마법의 수 7±2’라는 제목을 가진 이 논문은 ‘우리 뇌가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일곱 덩어리’라고 밝히고 있다. ±2는 개인별로 다섯 덩어리나 아홉 덩어리까지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처음 본 전화번호를 금방 외워 전화를 걸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숫자 하나가 정보 덩어리 하나이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번호를 떠올리는 과정을 ‘작업기억’이라 하는데 이 용량에 한계가 있다. 결국 뇌 기능의 한계 때문에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미국 밴더빌트대학 폴 덕스 교수팀의 연구를 보면 더 자세한 이유가 나온다. 덕스 교수팀은 실험을 통해 멀티태스킹과 뇌의 변화를 알아봤다. 7명의 참가자들은 2주 동안 매일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또는 따로 하고 뇌를 촬영했다. 실험 결과 참여자들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보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때 작업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실험이 계속되자 참가자들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이것은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진 게 아니었다.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다음 일에 집중하는 속도가 빨라진 것이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사람의 뇌는 동시에 여러 일을 하면 의사결정 과정이 방해 받는다. 이 때문에 모든 일의 진행이 느려지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훈련하면 뇌가 방해받는 시간이 짧아지긴 하지만 동시에 두 가지 일을 처리할 수는 없다.

▲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이 항상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뇌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뇌 동시처리 정보는 7±2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의 에티엔 케클랭과 실뱅 샤롱 연구팀은 멀티태스킹하는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했다. 연구진은 19세부터 32세까지의 남녀 각 16명씩의 지원자에게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철자로 두 개의 단어를 만들게 했다. 단어를 제대로 만들면 돈을 지불했다. 대문자와 소문자를 통일시킨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의 전두엽이 활성화됐다. 전두엽은 인간의 목표를 담당하는 부분이다. ‘단어를 맞추고 돈을 받겠다’고 생각한 결과 전기 신호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대문자와 소문자를 섞어서 단어를 만들게 하자 뇌의 모습이 달라졌다. ‘대문자와 소문자를 구별하는 일’이 하나 더 추가됐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동안 좌뇌와 우뇌가 하나의 일을 맡아 따로 진행했다. 또 좌뇌와 우뇌의 활동을 조화시키는 부분도 활성화됐다. 하지만 3가지 일을 동시에 시키자 기억력과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셋 중에 하나는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연구팀은 전두엽이 좌뇌와 우뇌 2개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3가지 이상의 일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최대 2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게 한계라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뇌는 동시에 많은 일을 처리하기 어렵다. 욕심을 부려서 더 많은 일을 하려다 보면 오히려 집중력과 기억력이 나빠져 업무효율이 떨어지게 된다. 혹시 너무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한 번 뒤돌아보자. 만약 그렇다면 뇌가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도록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게 뇌 건강에도, 업무 효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