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흐름 타고 떠오르는 탄소배출권 시장
시대흐름 타고 떠오르는 탄소배출권 시장
  • 최희성 기자
  • 승인 2011.05.3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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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선 2015년 본격 시작…지금부터 준비해야
나부터 ‘저탄소 생활 실천’ 인식 개선 필요
[젊은리더]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사람들

▲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뚜우~ 뚜 뚜우~ 뚜 뚜 뚜 뚜 뚜.
무슨 뜻인지 아리송한 길고 짧은 신호음이 들린다. 새들이 나는 짙푸른 숲을 배경으로 한 대의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이 신호음이 자동차 광고의 효과음이라는 걸 깨닫는다. 아리송하기만 했던 신호음은 그 자동차 이름을 모스 부호로 나타낸 것. 그 자동차는 요즘 한창 인기가 높은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자동차 배기가스 같은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을 겪으면서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각광을 받고 있다. 자동차에서부터 세제에 이르기까지 환경을 덜 파괴하는 방법으로 만들고 사용하는 게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여전히 경제성장만을 고집하는 이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성장도 ‘친환경적’으로 해야 하는 시대다. 정부가 내건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슬로건은 친환경적 경제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친환경의 바람 속에 새롭게 조명 받는 이들이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사람들이다. 관련된 직업도 탄소거래중개인, 탄소시장분석가, 탄소거래권투자운용가 등 여러 가지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생소하지만, 이미 탄소배출권 시장이 형성돼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유럽에선 유망한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제는 ‘친환경’ 시대

지난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는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총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은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협약에 서명했는데, 이 협약은 개최도시의 이름을 따 ‘교토의정서’라고 불리고 있다. 교토의정서는 지난 2005년 2월 16일 공식 발효됐다. 교토의정서가 공식 발효됨에 따라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이 등장하게 됐다.

이 총회에서 기후변화협약 당사국들은 이산화탄소(CO₂) 같은 온실가스를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했고, 이를 감축하기 위해 각국에 온실가스 감축목표량을 할당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38개 선진국들은 1990년을 기준으로 해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 각국에 할당된 감축목표량은 다시 해당국가 내 각 기업들에 재분배된다.

감축목표량을 정하기는 했지만 모든 기업이 목표량을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목표량을 초과해 달성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목표량에 미달하는 기업도 나오기 마련이다. 교토의정서에서는 이 같은 과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한 기업이 목표량을 초과달성한 기업으로부터 초과분을 구입해 해당기업에 배정된 목표량을 채우는 것도 감축목표량을 달성한 것으로 인정키로 했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탄소배출권의 과부족을 거래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배출된 탄소를 감축하는 데 기여하는 것도 온실가스 감축 노력으로 인정된다. 예컨대 황무지를 개척해 나무를 심는 것이 이미 배출된 탄소를 감축하는 프로젝트에 해당된다. 이 같은 프로젝트에 따라 감축되는 양만큼 탄소배출권이 인정되고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감축프로젝트를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 청정개발체제)이라 한다.

지금은 유럽을 중심으로 이 같은 탄소배출권 시장이 형성돼 있다. 탄소배출권이 거래되는 단가는 유럽의 경우 현재 탄소 1톤 당 13유로 정도이다. 하지만 단가는 시장의 시세에 따라 변동이 되기 때문에 ‘딱 얼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세계경제 상황에 따라 호황기에는 탄소배출권 단가가 올라가고, 불황기에는 탄소배출권 단가도 내려가는 추세다. 호황기에는 온실가스 감축 등에 신경을 쓸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교토의정서에서 비롯된 탄소배출권 시장

2002년에 교토의정서를 비준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감축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탄소배출권 시장도 그만큼 활성화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감축과 전혀 관련이 없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앞에서 설명한 CDM을 거래하는 형태로 탄소배출권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아직까지 탄소배출권이 국내에 적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탄소배출권 중개사 같은 새로운 직업은 생소할 뿐더러 준비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한국기후변화대응전략연구소(소장 윤인택, 이하 기후변화연구소)는 다가오는 탄소배출권 시장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기후변화연구소는 탄소배출권 중개 업무를 준비하는 것 외에도, CDM을 개발하거나 탄소배출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또 기업으로 하여금 의무가 부과되지는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기업이미지를 홍보하는 일도 기후변화연구소의 주요한 사업이다. 이 밖에 탄소배출권 시장 활성화에 대비해 탄소배출권 중개사를 양성하는 일도 하고 있다.

2015년이 되면 국내에서도 탄소배출권이 본격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당초 2013년부터 적용하려던 계획이 기업들의 반발로 인해 2015년으로 늦춰진 것이다.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적용해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하는 것을 ‘또 다른 규제’로 인식해 반발하는 것 같다고 기후변화연구소 윤인택 소장은 말한다.

비록 우리나라가 교토의정서에 따른 감축 의무를 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부는 자체적으로 목표관리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05년 대비 4%(배출전망치 대비 30%) 수준으로 정했다. 이 같은 목표관리제에 따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사업장과 대형건물은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에너지 사용목표를 정해야 한다. 만약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최고 1천만 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윤인택 소장은 이 같은 목표관리제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과징금이 기껏해야 천만 원 정도입니다. 목표관리제를 이행하지 않아도 규제가 강하지 않고, 또 실제 원가에 맞지 않거나 형식적인 어려움 등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규제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정부에서 강력하게 목표관리제를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는 거죠.”

목표관리제 아래서는 말 그대로 목표를 달성했는지 아닌지만 보고 판단한다. 그래서 목표치에서 1톤을 달성하지 못해도 1천만 원의 과징금을 내고, 1천 톤을 달성하지 못해도 과징금은 1천만 원이다.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경우에는 목표치에 미달해도 시장에서 그만큼을 사와서 채우면 되지만, 목표관리제 아래서는 무조건 과징금을 내야 한다. 다른 한편, 목표치를 초과달성해도, 그 초과분을 거래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목표관리제론 미흡 … 배출권 거래 준비해야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탄소배출권 시장이 아직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주로 기업이미지 홍보에 탄소배출권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서두에서 예를 든 광고가 그렇고, 모 화장지 회사에서 진행했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캠페인이 그렇다.

기후변화연구소에서는 ‘탄소중립’이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이 같은 기업의 이미지 홍보를 돕고 있다. 예컨대 연간 1천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자동차회사는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자체 공정을 개선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1백 톤을 줄일 수는 있다. 이럴 때 이 자동차회사가 9백 톤의 탄소배출권을 사오면 탄소배출량은 제로(0)가 되는 것이다. 이를 탄소중립이라고 하는데, 9백 톤의 탄소배출권을 사오는 것은 그만큼의 CDM에 참여하는 것으로 대체된다. 즉 나무를 심거나 숲을 가꾸고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자함으로써, 그 자동차회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다하고 탄소중립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게 되면, 소비자는 물론 투자자들도 그 기업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기업은 이 같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함으로써 좋은 기업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보면 실제로 온실가스가 감축되기 때문에 기업과 사회가 윈-윈 할 수 있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탄소배출권을 판매해 수익을 올린 곳도 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이하 매립지공사)는 올해 상반기에 매립가스자원화 사업을 통해 1차로 39만4,672톤의 탄소배출권을 확보했다. 이는 승용차 17만 대가 1년간 배출하는 온실가스에 해당하는 양이다. 매립지공사는 이렇게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프랑스의 한 에너지회사에 판매해 약 34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매립지공사가 탄소배출권을 실제로 판매하기까지는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쳤다. CDM을 통해 감축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측정하고, 이를 검증하는 데 2년 가까이 걸렸다. 관련 실무를 담당했던 한래봉 차장은 최초의 사례라서 시간이 많이 걸린 것 같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일정 기간 동안 양을 측정하고 그 자료를 토대로 모니터링 보고서를 작성해 검증을 요청합니다. 최초 인증 시에는 빨라도 1년 이상 걸린다는데, 수도권 매립지가 워낙 넓어 검증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린 셈이죠. 또 CDM 사업 분야가 15개가 있는데, 매립지공사에서 검증을 요청했을 땐 이 분야에 대해 검증할 수 있는 기관이 우리나라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기관을 통해 검증했는데 국내 지사에서 검토 보고서를 본부가 있는 독일에 보내면 최종적으로 거기에서 결정을 내리는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이젠 우리나라에도 자격을 갖춘 검증기관이 몇 군데 생겼기 때문에 앞으론 훨씬 기간이 단축될 거예요.”

▲ 윤인택 소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기업-사회, 윈-윈 가능하다

매립지공사의 사례에서 보이듯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탄소배출권 거래가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를 중개할 전문인력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탄소배출권을 사고 팔 때 어디서 어떻게 거래해야 하는지 모른다거나, 시장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래한다면 국내 기업들에게도 손실일 수밖에 없다. 2015년이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탄소배출권 거래가 활성화될 예정이어서,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은 기후변화연구소가 거의 유일하다. 기후변화연구소는 탄소배출권 거래중개사 교육과정을 개설해 관련 인력을 교육 중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중개사는 현재 민간자격증으로 분류돼 있는 상태이며, 이제 1기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탄소배출권 시장은 앞으로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에 따른 전문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성장가능성이 아니라 나부터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 한래봉 차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가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는 것을 보면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윤인택 소장은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면서,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관심과 환경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투발루라는 나라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서 해수면이 상승했고 자기네들이 피해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 문제를 투발루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해요.”

한래봉 차장 역시 나부터 저탄소 생활을 실천하겠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직원들이 퇴근하면 사무실의 불을 끈 채 책상에 스탠드만 켜둔다는 한래봉 차장처럼 생활 속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조금씩 개개인의 노력이 모이면 엄청난 효과를 가질 수 있어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감축이라든가, 저탄소 사회로 가려면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정말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