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치료하지 불법을 치료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치료하지 불법을 치료하는 게 아니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8.30 14:49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문화 인정 … 인식전환 절실
몬드라곤 같은 다문화 공동체 만들고 싶어
[attention! social enterprise 11]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 환자 진료 광경 ⓒ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치거나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또 다른 곳에서는 신분상의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이들 중에서 다수의 이주민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른바 불법체류자들은 신분상의 제약으로 인해 어지간히 다치거나 아파서는 치료를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간단한 병도 상태가 심각해질 때까지 방치하기 일쑤고, 심지어 치료시기를 놓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이주민들에게 치료의 길을 열어주고 있는 곳이 있다. 그것도 전액 무료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바로 그곳이다.

이주민과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민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의 공식 통계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91만여 명의 외국인이 ‘등록’돼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 통계일 뿐, 등록돼 있지 않은 외국인까지 합하면 13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제 이주민들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고, 한국 사회는 이주민들과의 어울림이 중요한 다문화사회가 됐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을 보는 시선은 아직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극화 돼 있기도 하다. 일부 이주민에 대해선 동경의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또 다른 이주민에 대해선 무시를 넘어 멸시의 시선까지 보낸다. 동경과 멸시를 가르는 기준은 피부색이다.

멸시의 시선을 받고 있는 이주민들 중 다수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온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불법체류라는 멍에를 쓴 채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불법체류자는 드러나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런 권리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임금이 체불돼도 하소연할 곳 하나 없고, 사기나 폭행을 당해도 구제받지 못한다. 일하다가 다쳐도 마찬가지다. 사업장이 정상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된 곳이라 하더라도 산재신청을 꺼릴 수밖에 없다. 산재신청을 하면 치료는 받을 수 있겠지만, 치료가 끝나면 본국 송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불법체류자뿐만이 아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합법적인 신분을 가지고 있어도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현실은 이미 다문화사회가 됐지만, 아직도 한국인의 인식 저변에 자리 잡은 단일민족 의식은 흔들림이 없다. 이런 인식으로 인해 이주민을 바라보는 편견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주민들은 대부분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이런 업종일수록 장시간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을 가지고 있기 십상이고, 이주민이기 때문에 낯설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심리적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안고 있기 마련이다. 여기에 더해 각종 질병과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진료비는 턱없이 비싸고 말도 잘 통하지 않을 뿐더러 평일에는 시간을 쪼개 병원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외국인노동자들 ⓒ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더 낮은 곳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헌신하겠다

김해성 목사(50)가 대표로 있는 (사)지구촌사랑나눔은 ‘모든 사람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존엄성을 갖는다’는 기치를 내걸고 설립돼 국내 최대 규모의 이주민 지원 NGO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교육과 인권, 의료의 사각지대가 없는 평등한 세상, 더불어 사는 행복한 다문화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국제학교, 어린이마을, 이주민 쉼터 등과 함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80년대 말 김 목사는 ‘더 낮은 곳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헌신하겠다’는 생각에 경기도 성남으로 향했다. 당시 성남은 서울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김 목사가 보기에 가장 어려운 이들은 노동자였다. ‘노동자와 함께 살겠다’는 것은 지식인의 허위의식일 수 있었다. 그래서 김 목사는 ‘평생 노동자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위장취업을 하기도 했다. 얼마 못 가 위장취업이 들통 나 해고되고는 ‘희망의 전화’를 개설해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엔 임금체불과 사기, 폭행, 산재 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주민들을 상담했지요. 상담을 시작한 후에는 이들의 의료문제가 심각해 주말무료진료소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상담하다 보니 사망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어요. 그렇게 죽어간 이주민들의 장례를 제 손으로 직접 치렀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장례를 치른 중국동포만 3천여 명이 넘습니다. 장례를 치르다가 ‘살려내지는 못하면서 죽은 사람 꽁무니만 따라다녀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더군요. 살려내는 일을 하려면 병원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렇게 구로구 가리봉동에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개원했다. 2004년 7월 22일의 일이다. 개원 이후 지금까지 진료한 이주민 수가 25만 명에 이르고 있다.

“아파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개원한 것이어서, 처음부터 모든 것이 무료였습니다. 진료와 검사는 물론 수술과 입원까지 모두가 무료였지요. 처음 허가된 게 29병상이었는데, 경영사정이 어려워져 15병상으로 줄였다가 지금은 입원실을 운영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내과, 일반외과, 정형외과에 4명의 의사를 두고 있으며, 원장을 포함해 모두 13명의 의료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주말에는 이들 외에 의료봉사인력이 의원에서 이주민을 진료한다. 모든 걸 무료로 제공하자면 재정이 만만찮게 들어간다. 지금까지 모든 재정은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

▲ 수술실로 옮겨지는 환자 ⓒ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퍼주기 식 지원에서 전환할 때

현재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아 운영되고 있는 곳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지만, 이주민을 향한 손길은 거기에 멈추지 않는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자리한 건물 3층에는 이주민쉼터가 마련돼 있다. 여기에서는 오갈 데 없는 이주민들에게 급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옆 건물에는 ‘지구촌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다. 지구촌어린이집은 저소득 다문화가정과 이주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보육과 다문화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기 십상인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이주민 자녀들이 정규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정서지원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지난 3월에는 아예 ‘지구촌국제학교’를 개설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차별 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민의 자녀들은 극빈층으로 분류되는 가정환경 때문에, 혹은 부모의 불법체류 때문에, 아니면 외모와 언어가 달라서 교육으로부터 소외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아이들은 사회적 소외계층으로 빈곤을 대물림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제도권 교육 밖에 방치된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그리고 이 땅에서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구촌국제학교는 초등학교 과정의 정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다문화가정 두 아이가 있었지요. 친척이 있기는 하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선뜻 맡아 기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 두 아이들을 제가 입양해서 아빠가 돼 주기로 했습니다. 큰 아이는 지구촌국제학교 어린이회장에 당선되기도 했어요. 그 아이의 꿈은 오바마 같은 인재가 되는 겁니다. 그 꿈을 지켜주고 싶어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꿈을 펼칠 수 없다는 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 아닐까요?”

대부분 저소득층에 속하는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민가정의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도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구촌사랑나눔은 이런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구촌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또 가정이 해체되거나 부모가 사망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지구촌그룹홈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주민을 위해 모국어상담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며, 이주민방송국 MNTV를 통해서 15개국의 뉴스와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 해외 의료지원 활동 ⓒ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다문화공동체를 꿈꾸다

지구촌사랑나눔이 펼치고 있는 이 같은 다양한 활동 중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은 활동은 아직까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뿐이다.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처음 사회적기업 인증을 신청한 것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기에 비록 수익을 창출하지는 못하지만, 사회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사회적기업 본연의 역할에는 가장 적합한 일이기도 했다.

“이제는 후원과 같은 주변의 지원에 의존해 퍼주기 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적기업의 의미도 살리는 동시에 이주민들이 객체로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지구촌사랑나눔의 방향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생활협동조합 같은 공동체를 만드는 방안입니다.”

예컨대 쉼터를 이용하는 이주민들은 현재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지만, 이들을 단순노무업무 등에 투입해 수익을 낼 수도 있다. 기존에 운영하고 있는 통역센터를 전환해 경찰이나 검찰, 법원 등에서 통역요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다.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건설부문에서도 인테리어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회적기업이 가능하다. 이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문화를 상품화해도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김해성 목사는 이런 내용들을 준비해 올해 안에 5~6가지 아이템을 사업화할 구상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주민들도 단지 혜택을 받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주체로 서는 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궁극적으로는 스페인 바스크지방에 조직돼 있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 같은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김 목사의 꿈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한국인들의 인식 변화다. 오랫동안 ‘단일민족’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던 한국인은 다양한 지구촌 이웃들을 인정하기보다 배타적인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 이웃들이 그야말로 ‘이웃’으로 자리 잡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예전에는 어린이들이 주로 쓰는 크레파스에 ‘살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한국인들에게는 살색이 바로 그 색일 수 있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다양한 피부색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살색이 특정 색깔을 지칭하는 이름이 되면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들에게는 차별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살색’이라는 색 이름을 바꿔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지금은 ‘살구색’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요.”

한국인이 단일민족을 고집하는 한,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 발생했던 테러와 같은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을 듯하다. 이젠 한국인이 세계시민의 중요한 일원이듯 이주민을 한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 아닐까?

지구촌사랑나눔 후원 문의 : (02)863-6622
홈페이지 : http://www.g4w.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