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법, 제2의 비정규직법 되나?
시간제법, 제2의 비정규직법 되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1.08.3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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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불안정 일자리 확산 vs 사, 경직성 심화
일방적 밀어붙이기는 더 큰 사회적 비용 초래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난 6월 24일 고용노동부는 법률안 하나를 입법예고했다. ‘시간제근로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논란 같은 큰 이슈에 묻혀 부각되지는 않고 있지만, 노동계에서는 이 법률안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 걸까?

시간제법, 무슨 내용 담고 있나?

고용노동부는 “최근 우리나라 노동시장 내에서 시간제근로자가 증가 추세에 있으나 전일제근로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놓여 있다”며 “시간제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고 고용안정을 지원함으로써 전체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이 시간제근로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시간제법)을 제안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 등 여타 법률에 산재해 있는 시간제근로자에 대한 규정을 하나로 모으고 보완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시간제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설명이다.

고용노동부가 법률을 통해 규율하려고 하는 시간제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상에 명시된 단시간근로자를 지칭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8호에는 “‘단시간근로자’란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이 그 사업장에서 같은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의 1주 동안의 소정근로시간에 비하여 짧은 근로자를 말한다”고 규정돼 있다. 기존에 기간제법을 통해 규율하고 있는 단시간근로자를 새로이 시간제법으로 규율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간제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다.

우선 근로조건은 같은 종류의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의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한 비율에 따라 결정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시간제근로자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업주가 취업규칙을 작성할 때 시간제근로자에게 적용될 근로조건 등에 관한 사항을 포함토록 하되, 시간제근로자에게 적용할 취업규칙을 별도로 작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간제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것이다.

또 시간제근로자에 대해 소정 근로시간보다 1주간 12시간을 초과해 근로하지 못하게 하고, 소정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 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의 가산 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사업주가 통상근로자를 채용하고자 할 경우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시간제근로자에게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하고, 통상근로자로 전환하기 위한 전환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할 의무도 사업주에게 부과된다.

당해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근무한 통상근로자가 임신·육아 및 가족 간병, 점진적 퇴직, 직무훈련, 질병의 사유로 근로시간의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사업주는 이를 허용해야 하며, 다만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영상의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근로시간 단축 청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마지막으로 사업주에 대한 컨설팅, 간접노무비 등 지원, 시간제근로자에 대한 교육훈련 및 인사관리 개선 지원, 구인·구직 지원 등 시간제근로자 고용지원을 위해 필요한 정부지원의 근거도 마련토록 하고 있다.

이런 조항들을 통해 고용노동부는 시간제근로를 활성화하고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특히 육아의 부담을 지는 여성이나 학업과 근로를 병행하는 청년 등에게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고용노동부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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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는 왜 반대할까?

이 같은 고용노동부의 입법예고가 있은 뒤, 경총은 바로 재검토를 요청했다. 초과근로를 1주 12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연장근로에 대해 가산수당을 지급토록 하면 오히려 시간제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비자발적 시간제근로자들은 굳이 가산수당을 못 받아도 풀타임을 채우고 싶어 하는데, 경영자 입장에서 임금이 과거보다 늘게 되면 이들에게 추가근로를 시키지 않을 것”이고 “이번 법률안에 규정된 연장근로수당은 법정근로시간 이내의 연장근로에 대해서도 가산수당을 지급토록 하는 것이어서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에 대한 보상의 성격으로 주어지는 가산수당의 기본취지에 배치된다”는 것이 경총의 주장이다.

경총은 아울러 “근로자의 자율적 의지에 속한 직무훈련이나 점진적인 퇴직에까지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을 부여한 것은 시간제근로가 활성화된 OECD 국가에서도 이례적인 근로자 권리 보호조항”이라면서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법률안이 고용비용 증가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심화시킬 우려가 높다”고 입장을 밝혔다.

노동계 역시 지난 7월 25일 공동성명을 내고 법률안을 폐기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간제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확산하기 위한 법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차별을 용인하고 있다는 점도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공동성명에는 양대 노총 여성위원회를 비롯해 전국여성노조와 여성단체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단체들은 성명에서 “이 법안은 시간제노동자를 확대하기 위해 근로조건 차별을 공고히 하여 기업들에게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하도록 유인”하고 있으며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는 기업에는 1인당 최대 연 720만 원까지 지원함으로써 시간제노동자의 확산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또 “이 법률안이 일·생활 양립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생활 양립을 검토하려면 근본적이고 전 사회적인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더구나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결정하는 사업주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설명’만 하면 용인해주는 반인권적 발상”이라면서 법률안의 폐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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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법도 못 지키면서

시간제법을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기간제법 등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노사정의 논란과 유사한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법률안에 대해 사용자 측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노동계는 차별을 용인하고 확대한다는 이유로 각각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정부 각 부처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연한 근로시간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래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번 시간제법 입법예고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시간제근로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고용노동부가 기대하는 대로 일자리가 늘어나겠느냐는 데에 있다. 시간제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경총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용자들이 부담을 느껴 오히려 일자리를 줄일 수도 있다. 또 비정규직과 관련한 논란에서 보이듯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 일자리에서 일하는 시간제근로자를 둘러싼 논란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에서는 있는 법도 못 지키면서 새로운 법률만 제정하면 그만이냐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지금도 많은 시간제근로자들이 휴게시간도 없이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이들 시간제근로자들은 자신의 근로조건이 현행 법률에 위배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노무사는 이어 “법을 위반하는 시간제 일자리를 단속해야 하지만 이를 단속할 공무원은 턱없이 부족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간제법을 입법화 한다고 그 법이 얼마나 실효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록 노사정의 입장이 제각각이기는 하지만, 점차 늘어나는 시간제 일자리에 비추어 볼 때 시간제근로자를 규율하는 법률이 필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이번에 입법예고한 것과 같이 어느 한 쪽에서 법부터 만들고 보자는 식으로 덤벼서는 곤란하다.

고용노동부가 그동안 유연근무제나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강조해왔다고는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이에 대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섣부르게 법률안을 입법예고하기보다 그런 우려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노사·노정관계에서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조차 힘들다고 할지라도, 이런 과정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