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만 번의 걸음, ‘행복’을 배달합니다
4천만 번의 걸음, ‘행복’을 배달합니다
  • 이순민 기자
  • 승인 2011.08.3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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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만 하루 1만3천여 개…명절엔 전쟁
“하나의 직업으로 제대로 대우받았으면”
[삶의현장]우체국 택배

▲ 동서울 우편집중국에 줄지어 서 있는 택배 차량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아차, 싶었다. 상자들이 줄지어 펼쳐져 있고, 그 뒤에도 수레에 한 무더기가 실려 있었다. 허리를 숙인 이들의 손은 기계처럼 좌우로 움직였다.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바다 위 고립된 섬처럼 멍하니 서서 바라봤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제 막 동이 튼 참이었다.

이른 하루의 시작, 동서울 우편집중국에선 강남·강동·광화문·동대문·송파·용산 우체국의 배송지로 갈 택배 물품들이 배달원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큼지막한 상자부터 조그만 비닐봉지까지 각양각색이다.

<참여와혁신>이 찾아간 월요일엔 물량이 적다고 했다. 평상시의 3분의 1이라고 했다. 지나가는 이들의 표정에서도 여유가 묻어났다. 뭔 말인가 싶었다. 과연 이곳에 여유란 가당키나 한가 싶었다. 평소에 빽빽이 쌓이는 건 물론이고, 명절엔 발 디딜 틈 없고 올려다봐도 끝이 없다고 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 추석을 3주 앞둔 때였다.

동서울은 전쟁터다

바닥에 상자들이 하나둘 쌓여간다. 지역별로 나눠지고, 배송 순서별로 줄을 선다. 주소를 언뜻 보고도 손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삑삑, 바코드 찍는 소리도 요란하다. 우체국 택배에 전산시스템이 갖춰지면서 PDA로 정보를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등록된다. 가끔 고성이 오고 간다. 지도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이들도 더러 있다. 부릉부릉, 시동 거는 소리도 들린다.

우체국 택배의 접수는 2가지 방법으로 이뤄진다. 고객들이 직접 우체국에 방문해 물건을 맡기기도 하고, 인터넷에 등록하면 직접 수거해 가기도 한다. 택배물은 우편집중국으로 모인다. 지방 물품은 대전에서 나뉜다. 분류 작업이 끝나면 우체국별로 배달원들이 물건을 싣고 가 고객들에게 배송한다.

강남우체국에서 처리하는 택배물은 하루 1만3천여 개에 이른다. 주로 토요일에 남은 물량을 처리하는 월요일은 한가한 편이다. 주말 접수분이 몰리는 화요일이나 연휴 끝자락에는 정신없다. 추석 같은 명절 땐 전쟁이다. 3만5천~4만 개로 늘어난다. 게다가 의류가 많은 평상시와는 달리 명절엔 과일 등 농산물, 선물세트가 많아 부피나 무게도 평소의 2배가 넘는다. 당연히 배달원의 품도 2배가 넘게 든다.

우체국 택배 사업은 1999년에 시작됐다. 물론 기존에도 소포 사업을 했지만 방문 접수, 빠른 배송, 등기번호 조회 등을 포함한 택배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택배산업이 1992년에 첫 선을 보인 것을 고려하면 출발이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전국 3,559개(2010년)의 연결망을 바탕으로 2001년 388억 원이던 매출액이 2010년 3,054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실시한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도 5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 택배 배달원들이 지역별로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내가 10년 해봐서 아는데

8시 50분, 영동대교는 만원이었다. 아침을 여는 차들로 가득 찼다. 방금 강변북로에서 한바탕 교통 체증을 겪은 터다. “아침마다 차가 많이 막히지만 다리만 건너면 그래도 괜찮다”는 이태희 씨(54)의 미소에 여유가 묻어난다.

택배 배달원 한 사람당 배송하는 물량은 하루 평균 130~140여 건이다. 싣는 데만 30분 넘게 걸린 상자들이 차에 가득 들어찼다. 목적지는 논현동이다. 우체국 택배 초창기 멤버인 이 씨가 이곳을 담당한 지는 7년 정도 됐다. 매일 같은 길을 다니다 보니 토박이가 다 됐다. 건물 관리인이나 집주인들과는 어느새 이웃처럼 지낸다. 이태희 씨가 택배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다.

“지금은 택배 분류 시스템이 자동화됐지만 그땐 모두 수작업으로 했어요. 물건 싣고 출발하면 어느덧 점심 무렵이었어요. 또 지금이야 PDA로 전산화돼서 편하지만 그땐 모든 물품의 등기번호, 정보까지 일일이 써야 했죠.”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처음에 함께 일을 시작한 동료들은 7~8명만이 남았다. 사람들의 드나듦이 잦은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일이 만만치 않다. 잔뼈가 굵다 못해 통뼈 수준인 이 씨야 “저절로 다이어트 되고, 건강해져서 좋다”며 너털웃음을 짓지만, 초보자에겐 ‘노가다’나 다름없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해 뜨기 전부터 해 진 후까지 들고, 내리고, 나르고, 오르는 일들의 무한 반복이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심하다. 우편집중국에서 분류가 끝나고 차에 실은 물건의 분실, 파손은 모두 배달원 책임이기 때문에 긴장을 놓아서도 안 된다.

신분이 안정적이지도 않다. 우체국 택배는 ‘위탁’ 배달원이 맡아서 한다. 우체국 소속 직원이 아니고, 외주 업체와 계약된 ‘개인 사업자’들이다. 급여는 안정적으로 나오지만 민간 택배 업체와 별반 다를 바 없다. 2년마다 이뤄지는 입찰 때 외주 업체가 제시한 단가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

택배 차량도 우체국의 옷을 입었을 뿐이다. 본인 소유 차량이거나 외주업체에 이른바 ‘번호판 값’으로 일정 액수를 내고 빌리는 형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름값, 보험료 등 차를 굴리는 데 들어가는 유지비 60만 원 가량은 매달 꼬박꼬박 이 씨가 물어야 한다.

위탁 배달원 말고도 우체국에 소속된 집배원, 택배원들도 택배 업무를 함께 맡는다. 다만 집배원들은 오토바이로 이동하기 때문에 작고 가벼운 물품을 주로 다루고, 택배원은 수거를 전문적으로 한다.일이 고되지만 이 씨는 새로 사람들이 들어오면 3개월만 참아보라며 달랜다. 그 고비만 넘기면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어서다. 보통 생활고를 겪는 40대가 많이 오는데도 얼마 안 가 그만두고 떠날 때가 많다. ‘좀 더 버티지’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자신의 어제를 돌아보며 드는 생각이다. 10년의 내공이 담긴 진심이다.
▲ 고객에게 택배물을 전달하는 이태희 씨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그들도 애가 탄다

9시 30분, 어느새 몇 개 건물을 돌았다. 꽉 차 있던 짐칸 한쪽이 움푹 파였다. 시동을 켜고 50미터도 못 가서 차가 또 선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짐칸을 열고, 상자를 찾아 꺼내는 일의 반복이다.

빌딩 문을 열고 들어서며 이 씨가 인사를 건네자 관리인이 알은체한다.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사뭇 정겹다. 3층에 올라가니 회사 이름이 다르다. 관리인을 찾아가자 호통부터 날아든다. “그 회사 이사 간 지 10년이 다 돼가. 벌써 죽어서 귀신 됐겄다” 이 씨가 나가니 슬쩍 묻는다. “근데 저 냥반을 왜 취재해? 죄 지었어?”

다시 차로 가서 상자를 한 아름 안아온 그가 옆 건물로 향한다. 전표를 보더니 웃으며 말한다. “이거 다 명품이에요. 잘못되면 큰일 나” 강남인 걸 깜빡 잊고 있었다. 상자 안엔 고가의 물품이, 봉투 안엔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는 경우가 잦다.

그의 허리춤엔 차 열쇠가 긴 줄에 매달려 있다. 열쇠를 차에 꽂아둔 채 내리지 않기 위해서다. 따지고 보면 하루에 100번이 넘도록 시동을 켜고, 끄고, 차에 타고, 내리는 일을 반복한다. 잠깐의 실수에 차를 통째로 도둑맞을 수도 있다. 배달원의 밥줄인 차는 물론이고, 그 안에 실린 물건들까지 모두 사라진다. 분류를 끝내고 가져온 택배물은 모두 배달원 책임이라던 말이 떠올랐다.

2명이 타고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3명이 타고 내려왔다. 착불 택배를 받아든 고객에게 현금이 없었던 탓이다. 한 아저씨가 툴툴 대며 상자를 들고 따라 나선다. “뭔 택배가 4,500원이나 해요?” 요금체계를 설명하는 사이 현금지급기에서 인출한 돈이 건네진다. 이렇게 사소하게 1분씩만 지체 돼도 나중에 따지면 한 시간은 족히 넘는다.

구역이 정해진 택배 배달원들에겐 자기만의 이동 경로가 있다. 주정차 공간, 일방통행로, 소요 시간 등을 머리에 그려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가장 효율적인 발자국이 남는다. 퇴근 전에 받아야 한다며, 좀 있으면 집을 비울 거라며 고객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그들의 마음을 알지만 하나하나 맞춰주다 보면 하루 일정이 뒤틀린다. 기다리는 이들만큼이나 전하는 이의 마음도 애가 탄다.

철각이 따로 없다

13,000보였다고 했다. 어느날은 하루에 얼마나 걷나 궁금해서 만보기를 차고 재봤단다. 일주일에 하루씩 쉬며 10년을 일했으니 대략 4천만 걸음이다. 지구는 둥그니까 온 세상 고객들 다 만났을 걸음이다. 매일 13,000번 발이 닿는 곳마다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진다. 얼굴을 보지 못할 때도 있다. 대부분 잠이 덜 깬 짜증 섞인 목소리다. 초인종이 없어서 문을 두드리면 시비를 걸기도 한다. “동냥하러 온 것도 아니고 본인들 물건 주려고 온 건데…”라며 한숨짓는 그의 얼굴에 씁쓸함이 스친다.

▲ 배송을 위해 계단을 오르는 이태희 씨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나는 걸음마다 기억에 남는 사람도 많다. 그는 한 일본 사람을 떠올렸다. 한국말을 곧잘 했다. 갈 때마다 시원한 커피를 건넸다. 목의 갈증만이 아니라 사람의 갈증도 풀리던 순간이다. 주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살갑게 맞아준다. 음료수는 물론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줄 때도 있다.

그와 차를 타고 가며 강남을 마비시켰던 홍수가 생각났다. 누런 흙탕물에 이리저리 치였을 장면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는 자기보다 동료들의 고생이 많았다며 애써 웃었다. 택배 배달원들은 비보다도 눈 올 때가 훨씬 더 힘들다. 어지럽고 미끄러운 땅을 차로, 발로 디뎌야 하는 탓이다.

오후 1시, 영동우체국으로 차를 몬다. 허기진 동료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하나둘 모이는 곳이다. 그는 동료들을 만나는 순간이 가장 좋다. 동서울 우편집중국에서의 아침이 그렇다. 다 같이 모여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안부를 묻는다. 맡고 있는 지역은 달라도 같은 고충을 겪는 그들은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주소가 적혀 포장된 물건들은 단순한 ‘무엇’에 지나지 않는다. 택배 배달원들의 손을 거쳐 분류되고, 배송됐을 때 비로소 누군가의 소중한 ‘내 것’이 된다. 그 안에는 그들의 사랑과 기쁨과 미래가 담겨 있다. 이태희 씨는 기다림의 소중함을 안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왔음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빠르고, 안전하고, 정확하게 물건들을 전하려 애쓴다.

“우체국 택배 배달원만 강남에 70여 명이에요. 민간 업체 포함하고, 전국으로 치면 얼마나 많겠어요. 이제 택배 배달원이 하나의 직업으로 제대로 대우받았으면 좋겠어요.”

택배 배달원들은 오늘도 기다림의 끝, 반가움의 시작을 알리는 초인종을 누른다. 띵똥.

▲ 우체국 택배 배송 과정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① 자동화 설비로 처리된 택배물들을 각 지역별 수레에 나누고 있다.
② 강남에 배송될 물품이 담긴 수레를 끌고 오는 이태희 씨.
③ 발착장에 배송 순서대로 상자들이 정리돼 있다.
④ 허리를 구부리고 펴는 일을 반복하며 상자와 씨름하는 적재는 고역이다.
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차는 택배 배달원들의 밥줄이다.
⑥ 한 손으론 상자를 나르고, 다른 손으론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⑦ PDA로 배송 결과를 등록하고 있다.